연재 중 집념 24화

선물

by 로지

고민할 필요 없이 우진 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를 만나려는 건 아니다.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기에 어떤 것이든 망가뜨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머릿 속으로만으로 그치고 싶지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조용하고 아무도 없었다.

우진 씨의 차를 본 순간 내 차 트렁크에서 골프채를 꺼냈다.

골프채를 이럴 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힘껏 내리쳤다.

양 쪽 사이드미러와 차량 곳곳을 강하게 내리쳤다.

겨우 그의 자동차를 훼손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진 않다.

일단 우진 씨는 자동차를 매우 아끼는 사람이므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점을 노리고 엄청난 강도로 내리쳤다.

CCTV와 차량의 블랙박스 따윈 아무 상관없다.

우진 씨는 놀라지 않을 거다.


어깨가 뻐근할 정도의 힘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정도 해소가 되긴 한다.

사실 기대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무언가를 망치는 것으로 유치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처럼 아직은 그칠 생각이 없다.

우진 씨가 아끼는 것들을 차례대로 스치듯 생각해 봤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우진 씨에게 문자라도 왔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조용하다.

그의 성격상 이럴 때 곧바로 전화를 하진 않을 거다.

본인이 처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을 테니 따지듯 내게 화를 낼 순 없을 테니까.

속이 시원해진 기분을 느끼면서 침대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한동안 잘 수없었던 날들을 뒤로하고 깊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무렵엔 문자가 와 있었다.

우진 씨다.


'이렇게 해서 너의 마음이 나아진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와 대화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전적으로 우진 씨의 생각이지. 난 아니다.

그를 보고 마주하기 싫다.


시간이 꽤나 지났다.

후련한 마음 때문인가 잘 자고 일어났다.

생수를 한 잔 들이켰을 땐 새벽녘의 나의 공격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진 씨가 보고 있을 때 그런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도 떠오른다.

그게 더 통쾌함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게도 이런 기괴함이 숨겨져 있었는지 놀랍긴 하다.

누구라도 비슷한 처지에 이르면 할 수 있는 행동일 수도 있겠다.

헤어진 연인에게 물리적으로 복수하는 일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제로 내가 그 상황에 빠지게 됐을 때는 어떤 식으로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하게 되어버린다.

이런 감정들을 일찌감치 느끼게 해 준 우진 씨에게 감사라도 해야 하나 많은 걸 깨닫게 된다.


문득 그 여자의 얼굴이 스친다.

언젠가부턴 우진 씨를 떠올리면 그 여자가 함께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게 너무 끔찍하다.

마치 셋이 연애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 둘의 연애사에 내가 끼어들게 되어 두 사람의 서사에 깃들게 된 사람인게 끔찍하다.

혼자서 무슨 자신감으로 그 여자를 상대한 건지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우진 씨도 그 여자도 내가 어지간히 우스웠을 거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게 되면 한없이 스스로가 초라해진다.

자주 이 감정에 빠지지만 헤어 나오는 건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저 혼자서만 착각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만 같아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주지 못한다.


어느 순간 시간이 길게 지나서 지금 이런 상황에 놓여 있던 나를 다른 곳에 놓아줬으면 한다.

그런 바람이 현실로 되길 기대하면서 하루의 끝을 바라본다.


내가 훼손한 우진 씨의 자동차엔 추억이 깃들어있다.

그 차를 타고 간 우리의 첫 여행, 그 차에서 받았던 아름다웠던 커다란 꽃다발, 함께했던 도로를 달렸던 그의 차 안에서의 모든 것이 사라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제일 처음 그 차를 망가뜨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으니까.

그러면서 노트북을 열어 우진 씨가 일하고 있는 병원의 사이트를 들어갔다.

환자로써 그를 평가할 수 있는 병원의 게시판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싶다.

그렇게 다음 계획처럼 생각을 그리고 있을 즈음 주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했어! 내 속이 후련하네. 네가 그랬으니 경찰에 신고도 못했을 거고 지금쯤 카센터에서 속 좀 쓰리겠구나."

오랜만에 보는 주연이의 환한 표정이다.


"맞아. 나도 속 시원했어. 아끼는 걸 망치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많이 마신 나는 주연이의 공감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또 아끼는 걸 망가뜨리고 싶어. 그게 무엇이든."

남아있는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를 건드리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내게 내재되어 있는 악마성이 봉인을 해제된 듯하다.


"얼마든지 해! 하고 싶은 만큼!"

안타까워했던 주연이는 이토록 응원을 해 준다.


"사실 나도 해코지하고 싶었지만 널 생각해서 참는 중이야. 혹여라도 너한테 피해가 갈까 봐."

주연이가 그러고 싶은 걸 참는 중이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나였다면 주연이도 모르게 찾아가고 욕도 꽤나 했을 거다.


술집의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둠이 깊어졌다.

이토록 어둠과 나는 닮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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