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성을 잃고 괴물스런 나만 남은 지금은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최고의 복수는 침묵하며 상관없이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런 것쯤 모르지 않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잠시 감정을 멈춰보기로 했다.
이대로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위험할 뿐이다.
시간에 기대어 원래의 나를 찾아가는 게 목표다.
의식 없이 흘러가는 무의미한 나도 괜찮다.
우진 씨와 그 여자를 상대로 끝없게 괴롭히고자 하는 욕망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일어나서 누구에게로 향하듯 악의적인 표현을 해내고 싶다.
처음엔 시원스러운 기분에 취했지만 남는 건 더 아플 뿐이다.
내가 더 아까운 생각만 들었다.
그들이 어떻든 내게 뭐가 남았든 상관 말아야 한다.
나도 모르게 우진 씨 집 앞에 몇 차례 더 찾아갔다.
밤이 되면 우울해지면서 습관처럼 그를 찾았다.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 그를 찾아 나섰다.
누구를 위한 연애였을까?
그저 우진 씨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함께 했을 뿐.
그 이상을 바란 내가 소란스러웠다.
영원한 것은 어차피 없을 텐데.
다른 이유가 아닌 제삼자의 등장으로 헤어지는 게 억울했나.
그럴 필요가 있나.
생각해 보면 나의 문제가 아닌 게 차라리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대로 그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줄 순 없는지 내게 묻고 싶다.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작아지는 내 모습이 어두운 유리창에 비쳐있을 뿐이다.
햇살이 가득한 일요일 아침.
운동삼아 동네를 뛰기 시작했다.
보이는 건 익숙한 건물들 도로들 모르지만 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
나와는 상관없는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후회스러운 일들은 더 이상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벌써 아픈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폭력적인 분노의 그날의 소리들이 남았다.
그 이상의 것을 만들지 말자.
나를 위해서.
모든 건 그와 나의 인연이 끝났을 뿐
더럽혀지지 않길 바란다.
성숙함을 아는 나이가 된 줄만 알았다.
경험해보지 않은 배신의 기분을 누구도 이해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추한 모습을 합리화하고 싶었다.
아픈 사랑의 서사 하나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첫사랑을 마친 것처럼 아플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는 없다.
우진 씨와의 추억은 한 자락정도만 남아있어도 된다.
아주 작은 것 한 가지만 갖게 된다 해도 상관없었던 날들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하늘은 무심하게 아름답다.
나와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아름답기 한 하늘, 구름, 바람, 햇살 모든 것들이 그대로이듯.
다시 나를 찾아가면 그뿐이다.
언젠가 이런 기억쯤은 웃으면서 추억할지도 모르지 않나.
조금 더 어른이 된다면 그럴 수 있을 거다.
가볍고 재밌는 영화도 찾아보고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책들도 종일 읽었다.
세상은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사소한 일로 나를 잃어가기 싫다.
운동, 산책, 명상 등으로 채워나갔다.
훨씬 더 이로운 감정들이 만들어져 갔다.
아름다운 건 그대로 아름다웠다.
어느 것 하나 변한 게 없이 그저 잊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인연이 잠시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찾아가는 과정일 뿐.
소중한 걸 잃었다고만 생각했지만 소중함을 다시 찾는다로 바뀌어갔다.
가고 싶었던 미술관도 가고 성당에도 갔다.
촛불을 켜서 기도를 하고 보관함에 조심스레 넣어두었다.
나를 위한 기도가 간절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