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 씨의 연락을 피해 집에만 있는 날이 늘었다.
반응이 없자 우진 씨의 지쳐가는 내용의 메시지들이 늘어갔다.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리려는 노력이 가상했지만 순서는 틀렸다.
먼저 진심 어린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그저 잊으면 그만이지만 더 선명해지는 우리의 관계가, 내 모습이 형편없다.
미처 깨닫지 못할 만큼 그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는 게 믿기 어렵다.
그러다 서서히 그의 전화도 차츰 뜸해지는 어느 날.
참아왔던 밀려드는 그리움으로 그의 집 앞으로 갔다.
주차장으로 진입해 우진 씨의 차가 보일 때쯤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봤다.
다정한 듯 아닌 듯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집으로 향한다.
시간은 밤 12시 30분이다.
이런 늦은 시간에 자연스레 함께 하는 모습이라니.
이런 걸 목격하려고 나선게 아닌데 주책없이 달려온 내가 원망스럽다.
그대로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넘치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대로 물러서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싶다.
나로 인해 두 사람의 사이가 더 굳건해지는 건 원하지 않는다.
나와 헤어진 후 다시 그 여자에게로 돌아가는 우진 씨의 모습이라니.
상상해 본 적이 있지만 이토록 금방 그 여자와 함께 일 줄은 몰랐다.
그 조차도 아무 상관없으면 될 일이지만 지금은 혼란을 넘어선다.
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을 안고 이른 아침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우진 씨와 그 여자에게 어떤 식의 생채기를 내어주고 싶은지 골똘해져 간다.
'할 말이 있어. 저녁에 연락해 줘'
짧은 메시지를 우진 씨에게 남겼다.
바로 퇴근하지 못하고 회사에서 시간을 더 보내며 멍하게 앉아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회사 로비야.'
그가 왔다.
냉랭해진 모습으로 우진 씨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어디든 조용한 곳이 좋겠어."
내 차가운 말투에 우진 씨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복잡한 길을 지나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배고프지 않아?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지."
눈치 없는 그가 아니지만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다.
"그럴 것 없어. 할 얘기만 간단히 하면 되니까.
우진 씨가 나에게 한 번이라도 솔직해져 본 적이 있는지 궁금했어.
나와 헤어지면서 그 여자와 다시 회복되는 것 같던데. 그럼 너무 그 여자의 말이 사실이 되잖아."
이상의 험한 말이 나오려는 걸 참으면서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지은이가 워낙 너에게 달려들고 있으니 진정시켜 주고 싶었어. 만난 건 그런 이유야."
마치 준비되어 있던 대답 같다.
어쩌면 내가 어젯밤 그의 집으로 찾아간 걸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왜 중요할까? 이해가 안 되네. 너무 새삼스럽잖아. 그 여자가 날 건드린 지는 오래니까."
속을 더 긁는 그의 반응에 정신이 흐릿해져 간다.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난 지은일 상대하지 말라고 했고 내 말을 듣지 않은 건 너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지은이를 멈추게 하는 일인데 그게 잘 되지 않았고 지금도 계속 멈추지 않고 있을 뿐이야."
어린아이가 어른을 상대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설명을 하듯 버거운 표정이다.
이런 우진 씨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는다.
"잠깐, 이대로면 대화 못 해. 그만 일어설게"
더 이상 그 여자에게 얽매여 있는 그를 보고 있기 쉽지 않다.
앞만 보며 빠르게 걸을 때 우진 씨가 뛰어와 팔을 잡는다.
"이대로 가지 마. 보고 싶었어. 그냥이라도 더 있으면 안 돼? 어렵게 보는 거잖아."
아이같이 징징대는 그의 얼굴을 다시 봤다.
"그래 보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의 우진 씨는 아니야."
함께 이성을 잃어가기 쉬운 순간이었다.
이럴 땐 그저 본능을 따르는 말들에 꽂히게 마련이니까.
걸으면서 다짐한다.
두 사람을 참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