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니 Dec 12. 2020

좌절도 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


  큰 아이는 사회성이 부족하다. 큰 아이는 종종 나의 불안을 부추기는 행동들을 했다. 큰 아이가 친구들과 문제가 생겼던 것은 자기의 물건을 나누지 못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큰 아이는 자기의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자신의 물건을 나누지 않으려고 했다. 당연히 교실에서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넘어오면 화를 내는 행동으로 분쟁이 발생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런 자녀의 행동을 자기 것을 지켜내려고 하는 심리적 결핍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자신의 것을 타인과 나누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 성향으로 볼 것 인지 헷갈렸다.      

결국 최근에 큰 아이가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나누는 것을 잘하게 되는 것을 보고 사랑만 준 것이 문제였겠다 싶었다. 자녀의 상처나 잘못을 위로해주고 공감만 해주면 자녀의 자기중심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자녀의 성장을 위해 좌절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좌절을 적절하게 경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자녀가 또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서 좌절 했을 때 부모의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녀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배울 수 있다.


[논리적접근]

상황 설명하기(“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어?”) ⇰규칙 명확히 하기(“엄마랑 약속한 거 기억나니?”) ⇰자녀 스스로 해결하기(“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보면 자녀를 키우면서 좌절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 게 사실이다. 아장아장 기어 다니며 위험한 물건을 만질 때 “안 돼!”라고 말하면 울상을 짓는 아이가 안쓰러워 비행기놀이를 하며 관심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친구와 분쟁이 있을 때도 훈육 보단 상처받은 아이의 마음을 공감했다. “속상하지? 다음엔 친구와 잘 지내보자!” 정도로 매듭을 지었다. 이것은 자녀의 잘못을 묵인해 주는 것과 같고 자녀의 행동이 옳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무엇이 잘못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자녀의 잘못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분석을 통해 나는 나의 미숙한 부분을 찾아냈다.     

훈육의 되물림

나의 부모는 나에게 잘못한 부분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내가 만약 혼이 났다면 난 혼자 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다.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긴 했으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보긴 힘들었다.  

그래서 부모가 된 나는 자녀에게 잘못한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어내는 과정이 어려웠다. 그저 자녀의 속상한 마음을 공감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치 어린 시절 내가 나 자신을 위로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큰 아이도 나처럼 계속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좌절을 주지 못한 부모

나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자녀에게 좌절을 주는 것이 마음 아팠다. 쉽게 말해 훈육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자녀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사랑만 받고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자녀는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는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야! 뭐든 할 수 있어!”      


  물론 자기 것을 나누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시기가 있다. 그것을 넘어선 나이에도 계속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녀라면 좌절의 경험이 부족한 상태일 수 있다. 부모는 유아기의 전능감(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자녀에게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기 바쁘고 그것이 부모로서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녀는 세상에 나가 실패하고 사랑받지 못할 일만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누가 그런 친구와 놀고 싶겠나!


 자기심리학의 창시자 코헛은 ‘최적의 좌절’이 인간을 성숙시킨다고 했다. 최적의 좌절이란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좌절을 말한다. 즉 양육자가 아이의 욕구를 절제시키거나 금지시킬 때, 아이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좌절을 주는 것이다. 엄격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하게 행동을 제시하면서 서서히 욕망에 제한을 두게 된다. 아이는 분노하는 자신을 위로하고 진정시키는 양육자의 태도를 보면서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달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예를 들면, 양치를 하자고 얘기하는 엄마에게 자녀는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이때 자녀의 요구를 바로 들어주기보다 양치를 하면 읽어주겠다고 얘기할 수 있다. 최적의 좌절은 자녀의 요구를 왜 지금 당장 들어줄 수 없는지 설명하고 욕구를 잠시 참게 한다.      


  결론적으로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부모보다 좌절도 주는 부모가 자녀를 더욱 성장시킨다. 세상은 부모처럼 자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수용해주지 않는다. 자녀에게 최적의 좌절을 주는 것에 동의한다면 자녀가 좌절하는 상황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안 된다는 말을 마음껏 하라는 말은 아니다. 부모의 철학에 맞는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어기려는 자녀에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안 되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부모! 뭔가 얻기 위해 좌절을 견디게 하는 부모! 그것이 좌절도 주는 좋은 부모이다.      

작가의 이전글 강요하지 말고 부탁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