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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Jun 30. 2024

사랑은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것

최은영 <그 여름> 서평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는 이야기의 구조 단순한데 안에 들어있는 상징, 대화, 묘사, 표현이 다 좋았다. 공감도 가는 부분도 많았다. 그건 우리가 주인공처럼 서투른 사랑과 이별 후에 성장했기 때문이다. 두 번 읽었는데 세 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글이다. 밑줄 그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 중 일부의 표현만 인용했다.    





안경  


고친 안경을 쓰고 수이의 얼굴을 봤을 때 이경은 처음 안경을 맞춰 썼던 때를 떠올렸다. 모든 게 또렷하게 보였지만 바닥이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때의 기분을 이경은 수이의 얼굴을 보면서 똑같이 느꼈다.
은지의 모습이 또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경은 안경을 끼지 않았다. 안경을 끼고 은지를 본다면, 그 아름다운 얼굴을 다시 본다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장담할 수가 없어서였다.  


안경으로 사랑에 빠진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 좋았다.

번째는 상대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를 시기에 마주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붕 뜬 것 같이 어지러운 느낌이 드는 것을 안경을 매개로 표현했다.

번째는 수이를 만나는 상태에서 은지에게 호감을 느낄 때이다. 주인공 마음 속의 찜찜함 때문에 상황을 회피하고 싶다는 느낌을 안경을 끼지 않은 것으로 표현했다.

사랑하는 상대를 보는 표현이지만 두 인물을 보는 주인공의 감정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강물  

그곳에서, 시간으로부터 놓여난 것처럼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던 시절이 생각났다. 왜 우리는 그렇게 오래 강물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을까. 서로 가까이 서지도 못한채로.


이경과 수이가 강물을 바라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강물을 보고 수이가 '너무 커서 무섭다.' 라고 표현하며 이경과 수이 밖의 외부 세상을 묘사한다. 성소수자인 그들이 세상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표현들  

자신의 몸이라는 것도, ‘나’라는 의식도, 너와 나의 구분도 그 순간에는 의미를 잃었다. 그럴 때 서로의 몸은 차라리 꽃잎과 물결에 가까웠다. 우리는 마시고 내쉬는 숨 그 자체일 뿐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한없이 상승하면서도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이라고.
둔치의 계단에 앉아서 이경은 서울에서 올라온 뒤로 계속해서 부정하던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수이와 만나면서도 이렇게 외로웠구나. 벽을 보고 말하는 것처럼 막막했구나.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었는데, 더 묻고 싶었는데, 너의 생각과 감정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어.
우린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 되었어. 너도 느끼고 있었겠지.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 모든 게 다 변해버렸잖아. 넌 네 얘기를 나에게 하지 않잖아. 네가 날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너에게 가장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된다.
 -에리히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신생아기에 모체에서 분리되어  독립하게 되는 순간부터 사랑을 욕망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서로가 너무 비슷한 것을 운명처럼 느끼고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열정을 품게된다.

하지만 열정은 언젠가 사그라들고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소설 속 이경처럼 너와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헤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이별을 선택한다.

우린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야한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의 맹점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둘은 하나가 될 수 없고, 너는 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이 아꼬와의 대화를 통해서 소설의 중간에 스포일러처럼 암시되었지만 주인공은 직접 경험하고 처절하게 아파본 전까지 알지 못했다.  



마지막 문장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 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가고 있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


소설이 ‘시작은 사고였다.’로 시작하는 것이 좋았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랑이 그렇듯이 두 인물이 만나야한다는 가정도 의도도 없이 운명적이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기대하면서 봤다. 작가는 이경 수이를 통해 새 이름을 알게되었기에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로 끝맺음 지었다.

내가 아는 만큼 내 세상이 확장된다면, 이경은 수이와의 만남과 이별로 인해 세상이 확장된 경험을 한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수이의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 것으로 슬프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경의 성장을 암시하며 마무리되어 좋았다.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해지며 어른이 되는거라면, 이런 이별은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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