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강아지: 리치와 초롱(1)
사랑과 상실을 대하는 자세
남편의 인생에는 2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과거에는 리치가 있었고, 지금은 초롱이가 있다.
나는 리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리치는 시댁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강아지였음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어린시절 덕질의 흔적처럼 리치의 흔적은 남편의 일상생활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 집 와이파이 비밀번호와 같이.
길에서 귀여운 요크셔테리어를 만나면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리치 이야기를 해준다. 리치는 남편이 어렸을때 샵을 통해 분양받은 강아지였다. 그때는 동물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고, 지금처럼 반려견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집에 같이 사는 강아지를 반려견 대신 애완견이라고 부르던 시절, 리치는 그 시절 강아지이다.
남편은 항상 리치에게 미안한 듯이 말한다. 리치는 남편이 처음 키웠던 강아지였고, 강아지에게 뭐가 좋은지 잘 몰라서 더 잘해줄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리치는 어머님이 사주는 아무 사료나 가리지 않고 잘 먹었고, 집 밖으로 산책하러 나가지 못했다. 강형욱 선생님이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이라서 남편은 강아지를 산책시켜야 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리치는 어렸을 때부터 산책하러 나가지 않아서 성견이 돼서는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그런 강아지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아는 언니네 강아지는 산책할 줄 모르는 강아지였다. 산책을 시키려고 하면 언니 발에 밟히겠다 싶을 정도로 언니 옆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다른 강아지나 사람에게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그 겁이 많던 강아지를, 언니 무릎에 앉아 있기만 한다고 '무릎 강아지'라고 놀렸다. 그래서 나는 리치를 떠올릴 때 남편의 무릎에 안겨있는 모습으로 떠올린다.
마트에서 산 아무 사료나 먹이고 키웠음에도, 리치는 20년 가까이 살았다고 한다. 리치가 늙어서 건강 상태가 악화되자, 남편의 동생은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본가로 달려왔다. 맞벌이 가정의 외롭던 중학생 막내아들의 친구였던 리치. 친구를 다시 만난 리치는 한 두 달을 더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당시에는 강아지 화장터도 많이 없었다. 남편은 리치의 차가워진 육체를 천으로 싸서 안고, 경북에서 충북까지 직접 운전해 가서 화장해주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상실감이 꽤 오래갔었다고,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초롱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