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정류장 이름이 나온 노선표는 스샷 했는데, 정작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잘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그냥 동네에 내리게 돼서 내가 여길 왜 내리려 했을까 고민할 틈이 없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서둘러
딤아둔 도착지 중 하나인 도서관을 검색해 본다.
다행히 멀지 않을 곳.
조금 걸어야 하지만 나는 길치이지만 지도를 켜고 걸어도
막다른 길을 굳이 찾아 들어가지만
나름 여행의 참맛이라 생각하며
되돌아 나와 최대한 큰 길을 따라 걷는다.
아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막다른 길은 만나기 힘들다.
동네를 다녀도 골목길 열 길 중 하나 정도만
막다른 길이곤 한데 길치면서 운도 없어서
나는 자주 그 하나를 선택한다.
이런 이유로 로또를 살 때면 번호를 자동 선택에 맡긴다.
길가에는 정말 싼 편인 숙소라서 기억에 남았던
숙소가 눈에 보인다.
모텔도 호텔도 여인숙도 아니게 생긴
그냥 사무실처럼 생겨서 더 신기했는데
위치는 더 신기하다.
내 생각에는 바다도 역도 시장도
무엇 하나 가까이 있는 것이 없고
전망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근처에 편의점도 없다!!
그래도 가격 대비 깔끔하다고 하니
언젠가 도전!!
다시 돌아와 도서관 찾아가는 길.
이번엔 큰 길만 따라서 걸었더니 빙글 돌아서 운동 잘하며 찾을 수 있었다.
풍경이 좋은 카페도 물론 좋지만
나는 적당한 거리감과 은근한 고요함이 좋아서
도서관이 좋다.
여행을 가서 도서관을 찾은 것은 아마 처음 같은데
앞으로는 잠깐이라도 들러보는 것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듬뿍 들었다.
더군다나
이곳 테라스에서는 조금은 멀지만 바다가 보여서
카페 부럽지 않은 분위기였다.
넋 놓고 바라보다가 한곳만 더 들리고 돌아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고 있으니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움직였다.
도서관을 찾아오는 길에 육교에 붙어있던 전망대로 향했다.
오랜만에 홀로 맞이하는 바닷바람,
이십대의 시간이 떠올랐다.
무엇 하나 정해지지 않은 시간에
무엇 하나 정할 수 없는 선택지에
무엇 하나 정해주는 이 없던
자의적이고 타의적이던 혼자의 삶.
그 모든 시간에 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매 순간을 쉬려고 했고
그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밀물에 밀려나듯 떠나야 했다.
그때보다 더 바람이 거세게 느껴지는 것은
단단해진 것 없이 늘어진 마음과
실제로 나잇살로 늘어진 피부 때문인 것 같지만
그냥
그날 유독 더 바람이 실제로 센 날이구나 하며 넘어간다.
철썩이는 파도 위에 이어진 전망대를 한 바퀴 돌며
혹여 떨어질까 꾹 잡은 손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앞쪽을 바라보는 것이 뻘쭘해질 때쯤
뒤를 돌아보니 환장하게도
저 언덕에 전망대를 또 지어놨다.
모든 성인이 낮은 곳에서 바라보라고 말을 하건만
인간은 왜!! 높은 곳에서 바라보려고 하는지..
어리석은 인간들~ 하며 전망대를 피해 언덕을 올라간다.
피해서 오르다 보니 언덕 꼭대기에는 등대가 있었다.
돌고 돌아가는 인생처럼
몇 번을 돌아올라 가다 보니 기울어진 길에서
더는 오를 수 없는 평평한 곳에 도착했다.
정말 운 좋게 10분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막힌 창밖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멈춰있는 배들 사이로
울릉도로 향하는 여객선이 울렁이는 가슴을 안고 그보다 더 높게 울렁이는 파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등대 꼭대기에서 걷는 동그란 한 바퀴는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1분 동안 보이는 모습은
1년 동안 부단히 걸어도
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고도 깊었다.
수많은 걸음이
수없는 시간이
짧은 한 바퀴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
살아가는 모습 같았다.
걸어가는 시간 없이
지나온 걸음 없이
빙 돌고 나면 다 볼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나오고 나면
나의 등대는 어디쯤 만들어지고 있을까
걱정이 된다.
등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길을
걷다 보면 맞는 길인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인지
고민하고 포기하게 된다.
등대가 만들어지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어야 등대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많이 늦게 안 까닭에
가야 할 길이 내 부실한 관절로 버틸 수나 있을지하는
현실적인 고민까지 추가되었다.
더군다나
늘 말하지만 나는 어지간한 길은 못 찾는 길치라서
갈 길이 더 멀기도 하다.
어쩌면
등대가 만들어지기 전에..전에..
등대를 내려와 올라온 길과 다른 길을 따라가다 보니
바람의 언덕이라는 곳이었다.
다들 올라올 때 이 길을 선택하는지
좁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내려가야 하는 나에게는 겁을 주었지만
무릎 사정과는 별개로 골목 중간 한 눈을 팔게 만드는 곳이 자주 있어서
몇 걸음씩 가던 길을 멈추고를 반복하다 보니
더는 내려갈 길이 없는 곳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3시간 정도 남았다.
일단 묵호역을 걸어서 찾아간다.
그러고 나서
가보려고 했던 독립 서점을 지도를 켜고 찾아갔는데..
세상에
처음 버스에 내린 그곳이었다!!
미스터리가 하나 풀렸다.
하지만 기차 시간까지 차 한잔하며 책을 보겠다는 계획은
예상보다 이른 마감시간에
혼자 눈치를 보며 책 구경을 했다.
책방을 나오고도 한 시간 틈이 있어서 이번에야말로 카페를 가자!!
했지만
수요일에 쉬는 곳이 많았다.
당일로 일정을 잡았을 때는 멍하니 카페에서 책 보며 시간보내자가
주 계획이었는데..책도 2권이나 들고 왔는데
후회는 없지만 살짝 아쉬움을 안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살짝 어두워진 저녁에 기차역으로 향했다.
무궁화호의 낭만은 너무 좋았지만,
케이티엑스에 속도는
잠시 낭만을 잊게 만들 만큼 만족스러웠다.
사용은 안 했지만
화장실에 자판기까지..
충전기는 물론이고 기타 등등
문명이란 그 걸음을 따라 걷지 않는 사람에게는
번개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것 같다.
도시라면 카페에 수많은 사람이 자리할 시간에
이곳이라면 대부분 간판이 꺼져있을 시간에
도착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세상은
멈춘 것은 없지만
하나하나 보이는 것도 없었다.
나의 하루는 나의 고민은 나의 불안은
큼지 막하게 지어져 있는 높다란 빌딩 같았지만
더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본다면
손가락만 하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손가락도 다치면 아프다.
팔이 부러진 것만큼 손가락이 부러져도 아프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는 "에게~겨우 그만큼 다친 거야?"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손가락 부상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
나의 고민과 불안은 에게!! 정도로 바라보고
살았으면 한다.
그렇지만
남이 그렇게말한다고 생각하니
좀 서운한 마음도 든다.
남의 상처를 작다고 무시하다니.
흥!!
#마음속 단어를 찾으려는 걸음은 어색함과 불안함 그리고 안도감을 주었다.
수많은 감정들을 담고 사는 하루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감정들로 하루를 채우는 것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