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과 좋아하는 일
20대의 나는 일보다 소속을 두고 싶었다. 이곳저곳에 지원하고, 면접을 본 끝에 합격 통지를 받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닌, 그저 그런 선택이었다. 유쾌한 동료들, 경험 많은 선배들이 있는 회사에 소속되어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성적인 나와 달리 표현력이 뛰어난 그들처럼 일을 잘하고 싶어졌다. 오래오래 그들과 일하기 위해 나는 부족한 업무 기술을 보충했다. 세미나, 온라인 강의를 쫓아다니며 역량 계발을 하였고 몇 년 뒤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 좀 하는 애’라는 평판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40살을 앞두고 첫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사무실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시기, 기획자로서 업을 중요시 하던 동기는 프로 기획자의 길을 선택하여 독립했고, 커피를 유독 좋아한 선배는 퇴사 후, 카페를 시작하고 일의 보람을 쫓으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던 시기였다. 나의 일을 돌아보니 데이터 분석, 서비스 기획, 제휴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브랜딩 등 못 하는 일은 없지만 특별하게 잘하는 일이 없었다. 내 일이 아닌 조직이 원하는 일을 해온 결과였다. ‘좋든 싫든 명함은 당신의 현재를 말하고, 이력서는 당신 삶의 역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의 명함은 기획자, 마케터가 아닌 보통의 팀장이고 전문성이 없는 13년 차 직장인의 이력서일 뿐이었다.
나만의 일이 없는 상황은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익숙한 일’ 사이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직장인 누구에게나 오는 슬럼프일 뿐이라며 쉬고 오라는 선배의 조언에 따라 연차를 쓰고 독립한 동기들을 찾아다녔다. 일의 보람과 재미를 찾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했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기를 보면서 나는 좋아하는 일만 선택하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은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돈을 벌지 못 번다는 것을 알고, 무엇보다 글력을 키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 이후 나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 띠 같은 익숙한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견디며 일을 하고 있다. 직장 생활로 번 돈으로 책을 사고 글쓰기를 배우고 연습하며 버티고 있다. 소속이 아닌 이름, 나만의 일을 가질 수 있도록 익숙한 일로 번 돈으로 좋아하는 일을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