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수) 퇴근길 한 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
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
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
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별것 아닌 선의 中
이십 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힘들 때 스스로 지탱할 수 있게 힘을 준 것 중에 하나는 '걷기'이다. 의약대 편입에 실패 후, 소속이 없어져 버린 것 같아 불안할 때도, 동갑내기 팀원과의 관계로 마음이 힘들 때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걷기는 내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발이 앞으로 걸어가는 힘을 주었다면, 손으로 적어가는 기록은 유사한 상황에서 실수를 줄이는 경험과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럴싸하게 내세울 이력도 대표 프로젝트도 없지만 이렇게 사무실을 떠나기 전 적어나가는 한 줄은 나의 태도를 돌아보며, 나에게 가장 알맞은 일과 삶의 밸런스 지점을 찾아준다.
입으로 읽는 낭독은 눈으로 읽어가며 스쳐 지나갔던, 단어 하나까지 소중하게 담을 수 있게 한다.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낭독은 그날의 나의 마음을 평안하게 안정시켜주는 심신 안정제이다.
내가 나다울 수 있게 지탱해 주는 것들이 자랑할만한 프로젝트나 거창한 결과가 아니었더라. 틈새에 하는 산책, 퇴근길의 기록, 짧은 낭독 같은 별것 아니지만 작은 습관들이 내가 두려움 없이 다음 걸음을 걸어갈 수 있게 한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퇴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