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접기만 하는 아들 때문에 환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게임도 아닌데 종이접기 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 아닌가? 맞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런데.. 이게 또 엄마의 입장에서는 속 터질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할 일이 있고 시간도 맞춰야 하는 스케줄을 생각하면 좀 알아서 끊을 줄 알아야 할 텐데 도저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살금살금 달래는 말과 미끼를 던지기는 하지만 아들 성향이 워낙 몰 두형이라 그런지 한번 꽂히면 보이지가 않는다. (천재인가??ㅎㅎ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맘 편하겠지…) 그래 몰입도가 좋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맨날 며칠 지속되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오늘은 주말이라면서 작품을 만들 계획이란다. 워낙에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아이기에 작품을 만들려나보다 하고 말았다. 이것이 나를 더 폭폭 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다행히 토요일이라 좀 여유가 있고 딱히 숙제가 있지 않은 주말이니 양껏 만들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젯밤에 지인들의 카톡방으로부터 받은 102세 김형석 교수님의 기사가 떠올랐다.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자유” 이것이 바로 102세 교수님의 자녀 교육법이었다.
아이의 자유를 사랑하라는 것. 그것이 부모의 할 일이라는 이야기에 내가 조바심에 혹은 습관을 위해서 아이의 시간까지 컨트롤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도 들고 아이의 주도성과 자율성을 너무 존중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안함까지 밀려들었다. 주말 내내 종이 접기에 푹 빠진 아이는 정말 최소한의 것 외에는 종이 접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 아이의 자유를 사랑한 것 같아서 스스로 뿌듯해졌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다. 주말 내내 종이접기를 했는데 월요일인 오늘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또 종이 접기에 몰입이다. 입 밖으로 숙제부터 하라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아니 이미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그러나 아들의 자유시간을 사랑하라는 이야기가 맴돌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오물오물 되새김질하면서 씹어 먹고 있었다. 아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찾아서 하는 기회를 내가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육아는 기다림이라는 이야기가 사실 예전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와 닿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신발 신기를, 밥을 먹기 같은 행동을 기다려주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어릴 때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손도 영글지 않은 작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당연했는데 1학년쯤 되니 웬만큼 그 기준이 높아져서 그런지 행동적으로 늦은 것뿐 아니라 아이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과정의 기다림이 진짜 힘들었다. 생각과 행동의 거리가 이렇게까지 먼 줄… 내가 미처 몰랐다.
우리 아이는 특히 무언가를 할 때 늦되고 사색과 생각이 많은 아이다. 아이의 어릴 적을 생각하면 충분히 빨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의 기준에서 그것도 그 분야를 특히 잘하는 아이들의 기준에서 보게 되니 항상 우리 아이는 늦은 것 같다. 거기에 급한 내 성격에도 아들의 그 생각의 전환에서 행동으로 옮겨지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이 수행을 쌓는 과정처럼 힘들다.
이래도 저래도 오늘은 그저 아들이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마음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할 일뿐 아니라 학원 시간도 잊어버려서 허둥대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참 힘들었다.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스케줄러 역할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의 굳은 결심들은 단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저녁 시간 즈음에 터져버렸다. 잔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오늘 하고 싶은 말들을 씹어 넘긴 줄 알았는데… 씹어 넘기지 못하고 온종일 입에 담아두고 있었던 듯 폭포같이 쏟아졌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쏟아 내버렸다. 하루 종일 기다리고 참았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느낌에 허무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더구나 어린아이에게 참 못났다는 생각도 들고 아이 한 명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지렁이 엄마…
나는 아이가 나를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믿고 까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참 넓은 그릇을 가진 것 같다. 엄마의 화냄에도 또 쪼르륵 달려와 안아주고, 화난 엄마에게 당당히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걸 보면 참 감사하고 고맙다. 아이가 엄마의 잔소리를 받아주는 기간도 지금 뿐인데 고 사이를 틈타 엄마가 아이에게 심술을 잔뜩 부리는 모양새다.
그리 한바탕 잔소리 폭포를 맞은 아이는 자리에 앉아서 꾸역꾸역 수학문제지 몇 장을 풀어냈다. 저렇게 앉아서 하기만 하면 10분이면 끝낼 일을 이렇게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오늘의 파이팅(?)을 마치고 아이들과 자기 전 루틴을 하러 들어갔다. 책도 읽어주고 감싸 일기도 나누고… 이렇게 감정에 휘둘린 날은 사실 내가 감사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감정의 소용돌이 잔해가 가슴에 남아있어서 쉽지 않다.
책을 읽고 나서 잠자리 들기 전 아들은 엄마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한다. 선물이라면서 나에게 종이 접기로 만든 작품을 선물했다. 바로 “산타할아버지가 오신 크리스마스이브”라는 근사한 제목의 종이접기 작품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며칠 동안 무언의 압박과 눈치 보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 종이접기 작품이었다. 물론 종이접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 고사리 손으로 접기 힘든 종이 하나하나를 만들어서 그리 눈치를 주던 엄마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다 한다. 엄마와 함께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드렸던 쿠키를 떠올리면서 만든 것이라면서…
에라이 못난 애미야!!! 아이들은 언제나 옳다. 아이가 생각이 전환되는 그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 그것이 육아의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전히 아이의 행동과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들에겐 항상 너만의 계획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매번 엄마의 좁은 식견과 조바심에 닦달과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는 모자란 엄마다. 엄마의 작은 그릇이 항상 우리 아이를 담기에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