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엔 아이들과 버킷리스트가 제격

아이들은 10일 정도 더 빠른 방학을 맞이한 것 같다. 집에만 있으니 너무 좋다는 아이들에 허허실실 웃음이 난다. 어느새 이번 주도 후루룩 지나가는 것 같다. 의외로 아이들이 집순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나만 힘든 건지도...

마당에는 눈이 내린다. 이렇게 평안히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자가격리가 시작되면서는 우울감이 왈칵 밀려왔다. 2021년이 엉망인 것 같고 어떤 것 하나 이룬 게 없는 것 같고 연말까지 망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었는데 아이들과 지내다 보니 아이들이 더 소중해지고 이런 잔잔한 일상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본 적이 언제 있었나? 싶다.


올해 아이들과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버킷리스트 만들기였다. 벌써 햇수로 3년 차 버킷리스트를 만들다 보니 연말 연초에 버킷을 정리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의 방향성을 찾아가게 되고, 나의 욕망이나 바람도 들여다볼 수 있고,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해보는 용기, 또 인생을 좀 더 재미나게 살 방법도 궁리하게 되는 것 같다. 소소한 재미와 행복이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딴짓을 통한 자기 발견이 꽤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계획 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기대감에 새해를 맞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도 많겠다 연말이겠다 딱 같이 하고 싶은 활동이었다. 오늘의 자가격리 활동은 이걸로 정했다.

버킷리스트 50개 쓰기

아이들과 저녁시간에 옹기종기 모였다.

아이들의 버킷은 허무맹랑을 넘어서서 산으로 가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듣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기도 했고, 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버킷리스트 쓰기에 썼던 것 중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이 아이가 나와하고 싶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버킷 쓰기는 생각보다 의미 있고 재미가 있었다. 아이의 생각을 들으면서 내 버킷도 조금 수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처음 버킷 100개 쓰기를 하면서 든 생각은 100개 채우는 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양이 많기도 했고 쥐어짜야 하는 것도 조금 억지인가?라고 의문을 품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많은가 보다. 아이들에게 100개는 좀 힘들 것 같아서 50개로 도전해보자 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은 2~30개는 후루룩 써 내려갔다. 둘째는 아직 글을 못쓰니까 내가 대신 써주었다.


아이들의 버킷에는 부모가 해결해줘야 하는 버킷들이 있었다. 처음엔 이 버킷을 내가 알게 되었으니 그냥 들어줘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다가 이 버킷을 하기 위해서 그 전제조건이나 상황 속에서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버킷들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버킷을 써보는 것도 점점 스킬이 늘어날 것 같다.


전제 조건으로 2022년이라고는 했지만 아이들은 1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그 와중에 나온 버킷 중에 세계여행 가기가 있었다.


아들: 세계여행 갔다 오기!! 이것도 버킷에 쓸래

엄마: 2022년에?

아들: 어! 20살엔 엄마랑 길게 세계여행을 가고 내년엔 짧게 가는 거야!!

엄마: 아...... (나도 모르게 자꾸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목구멍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다.)

내년에도 코로나가 정말 사라지긴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떤 한 나라도 아니고 세계여행?(한마디 덧붙이고 말았다)


어 순간 나도 모르게 1년 한 해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 조건을 다시 이야기해줄까? 하다가 무언가 한계를 주는 것보다는 그냥 자유롭게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내년 연말에 버킷리스트 중에서 한 것들에 대한 성취도를 높여주는 현실적인 버킷을 써보면 어떨까? 갈팡질팡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는데 세계여행에서 캐나다 한 달 살기로 방향을 틀었다. 아... 괜히 아이의 생각에 손을 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와 할 때는 어떤 전제조건을 좀 만들면 좋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이래 저래 40개 정도 채우니 내일 또 생각나는 대로 쓰겠다고 한다.

한 번에 50개를 채우기보다 일상에서 조금씩 생각나는 것을 기억했다 쓰도록 남겨두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버킷 100개 쓰기를 할 때 이렇게 남겨놓은 몇 개의 버킷들이 은근 나에게는 사실 큰 재미였기에 좋다고 했다.

아이들의 버킷을 보니 너무 웃음이 나왔다.

첫째의 버킷에는 첫째가 좋아하는 명확한 취향이 확연이 드러났다. 종이 접기와 수영 배우기, 동물을 보고 둥지를 찾아 탐험하고 여행하는 것들이 가득했다. 정말 아들만의 세상이 명확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눈에 띄는 버킷 중 하나가 자가격리 끝나면 매일 안아주고 뽀뽀하기다. 나 역시도 아이들과 늘 하던 스킨십을 못하는 것이 자가격리에서 가장 큰 아쉬움이긴 했다.

두 번째는 평소 간식이나 라면 종류를 거의 먹어본 적 없는 아들의 버킷에는 치토스 먹기와 라면 먹기, 콘프레이크 먹기 같은 버킷이 등장했다. 어렵지 않게 들어줄 수 있지만 스스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건 나의 숙제인 것 같다.

세 번째로는 아이가 종이접기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흥분했다. 자기도 그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목표를 정했다. 올 한 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목표를 정한다는 것이 너무 멋졌다. 늘 학습에 있어서는 엄마가 아무래도 제안하고 이끌어가는 포지션이었는데 버킷을 통해서 아이가 자기 주도력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둘째의 버킷의 1번은 시카고 피자를 먹으러 가고 싶단다. 도시 가면 사줘야겠다. 대부분 갖고 싶고 먹고 싶고 가 많긴 했지만 의외로 둘째의 버킷에는 장소도 하고 싶은 일도 명확했다. 심지어 소풍 갈 때 들고 갈 간식도 지정해서 써달라 했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분명히 말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할 정도다.

역시나 두 번째로 보이는 버킷은 자가격리 끝나면 엄마랑 매일 뽀뽀하기다. 코끝이 찡하다. 혹시 몰라서 자가격리기간에는 뽀뽀도 포옹도 멀리하고 있으니 아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이다. 아이들에게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세 번째는 자연과 동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중 독특했던 것 중 하나는 펠리컨 소리 내보 기란다. 그러고 보니 펠리컨이 무슨 소리를 내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중에 같이 유튜브로 찾아봐야겠다.


아이들의 버킷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아이들의 버킷 메이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른 누군가의 버킷 메이트가 되기 전에 아이의 버킷 메이트 이것 또한 나의 버킷리스트에 담는다.



나는 아이들의 버킷 메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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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버킷 리스트에 모두 있었던 라면 먹기!!로(그게 뭐라고... 버킷에까지 등장할 일이니?)

내일 아이들에게 당장 버킷리스트를 실현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킷 메이트 역하을 내일은 톡톡히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오늘 밤 잠을 청한다.


자가격리엔 아이들과 버킷리스트 쓰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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