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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감사일기 하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바로 코로나... 

시골 촌구석도 오미크론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구나.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듬성듬성 걸리는 코로나를 피해 갈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작년 연말 정말  혹독한 외로움과 고립의 자가격리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코로나는 늘 멘털을 붕괴하는 상태를 만든다.  

아침까지는 멀쩡하던 아이가 학교에 가고나서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나 보다. 

열이 나서 바로 집으로 귀가조치를 하겠다는 선생님의 전화였다. 아직까지 코로나 확진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기분이 싸한 것이 코로나일 것 같았다. 


일정이 있어서 밖에 나와있기도 했고 상비약이라도 당장 응급으로 필요하니 약국을 들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약국을 들렀지만 살 수 있는 약이 별로 없다. 당장 아이들 해열 시럽제는 다 떨어져서 안 들어온 지 오래라고 한다. 시골 약국이긴 하지만 진짜 매번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약이 이렇게 종류가 없는 게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을 종종 한다. 그 흔한 타이레놀도 늘 유사한 상품만 있지 진품 타이레놀 하나가 제대로 없다. 살짝 짜증이 났다.


당장 급한 마음에 짝퉁 타이레놀과 해열 패치만 사 가지고 집으로 서둘러왔다. 생각보다 아이의 열 상태가 심각했고 열패치부터 붙여주고 폭풍 검색을 했다. 다음 스텝이 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자가진단을 하고 보건소로 가야 할지... 아니면 병원으로 가야 할지... 


시골살이의 가장 큰 단점은 병원과 약국이 근거리에 위치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그래도 진료를 받을 만한 병원이 30분 이상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 그나마 이것도 시내스러운 시골이라 가능한 일이다. 

예전 시골에서는 1시간 30분 이상은 가야 큰 병원을 만날 수 있었다. 


6시 전에 병원이든 보건소든 갈 수 있는 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열이 생각보다 많이 나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이 필요했다. 당장에 신속항원을 할 수 있는 소아과를 알아보고 짐을 챙겼다. 본가 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당장 열이나도 그렇고 상비약조차 지금 집에 세팅되어 있지 않으니 걱정이 앞섰다. 앱이나 배달 서비스를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까지 확진이 되면 정말 곤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6시 전 병원이 끝나기 전에 병원에 도착했고 신속항원 결과 첫째는 코로나 양성, 둘째는 코로나 음성이다. 우선 신랑을 다른 곳으로 격리시키고 우리가 집으로 이동했다. 첫째는 고열로 온몸에 힘이 쭉 빠져있었다. 그나마 해열제 먹은 것이 본가까지 이동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눕히고 정리되지 않은 집을 대충이나마 치웠다. 당장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해치우고 나니 아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나도 온종일 긴장하고 달린 탓인지 피로감에 쓰러졌다.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의 열을 재보았다. 38.9 아직도 열이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아이도 인기척이 있길래 깨워서 해열제를 먹였다. 해열제를 먹이고 나니 아이가 


엄마, 나 혼자 자니까 무서워.
 어제 감사일기 안 했잖아. 
우리 감사일기 하자!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프고 정신없길래 쓰러져 자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정작 힘들고 외로웠을 아이 마음은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하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에 급급했던 어제였구나.... 

루틴으로 하는 감사일기가 아이에게는 중요하고도 힘이 되었나 보다. 

아프고 힘든 가운데 감사일기를 하자는 아들을 보니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찌릿찌릿한다. 


아픈 가운데 병원 갈 수 있었던 것.

엄마의 케어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오늘 할 일을 다하지 못했지만 몸을 위해 충분히 쉴 수 있었던 것.

병원도 약국도 늦지 않게 다 열려있었던 것. 

그리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 

어제 하루도 행복했던 것. 


감사일기를 듣는 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아프고 힘들고 외로웠을 아이가 어제 하루도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누군가는 불평불만과 어려움에 힘들고 괴로웠다고 할 수 도 있는 날을 아이는 그렇게 힘든 중에도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힘들 때 감사의 시선은 더욱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열이 내리지 않아서 오늘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또 오늘 하루도 감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너를 생각하니 엄마는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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