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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잘하자.

온몸이 오들거린다.

다리 하나 짚을 곳이 없고 손은 후달리기 시작했다.

식은땀도 났고, 밑에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그냥 내려가도 되나요?
밧줄 놓아도 괜찮나요?
떨어지는 것 아닐까요?


10m 상공에서 질러대는 소리라 선생님들은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나 혼자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질문을 던지는 격이였다.


호기롭게 시작한 클라이밍이다.

가족캠프 프로그램 중 한 코스였고, 아이들이 먼저 도전을 했다.

밸트를 메고 올라가기전 아이들에게 힘내라고, 포기하지말고 한번 해보라고

너무 무서우면 언제든 엄마가 받아줄건데 그래도 한번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보라고

나불나불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부모의 욕심을 담은 격려였다.


아담한 체구의 여학생이 먼저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정말 12미터를 척척 손쉽게 올라가는데 놀랍기도 했고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물론 안전 장비나 전문가가 있기도 했지만 겁없이 올라가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 아이도 저렇게 도전하는 모습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스물 스물 올라왔던가 보다.

첫째를 올려 보내고 밑에서 바라보기에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힘내라고 응원을 했다.

그러나 중간 쯤 가서 옆에 있는 친구가 포기하고 내려오자 아들도 옳다구나 하는 마음으로 내려간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좀만 더 힘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잘했다고 로프를 타고 내려온 아들을 안아주었다. 대견함반과 아쉬움반이 섞여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조언을 했지만서도 정작 나는 그 전까지 클라이밍에 도전해 본 적이 없었다.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은 부모님들도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하고 아빠가 일정상 참여하지 못해서 혹시나 아이들이 서운해 할까봐 엄마가 대신 도전해보겠다고 나섰다.


새로운 스포츠 해보는 걸 주저하는 편이 아니고, 전문 강사님이 계시니 좀 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평소에 한번 쯤 도전해 보고 싶은 종목이기도 했고, 아이들 액티비티 키즈카페에도 간간히 있었던 클라이밍 시설이라 살짝 기대가 되었다. 내 키를 넘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팔힘과 다리근육이 필수이긴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내 키를 넘어서 훌쩍 올라가기 시작했다. 중간쯤 왔을 때였다. 발을 디딜려고 아래를 보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사람이 공포를 가장 크게 느끼는 지점이 10m 라고 했던 것 같다. 그쯤이였던 것 같다. 아찔하기도 하고 다리에 오금이 저리기도 하고 손에 힘도 떨어져서 더 매달려있는 것이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도있는 근육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던 탓에 팔이 후들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해보자고 했던 말이 얼마나 의미없는 말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겠다. 내려가자니 밑을 계속 봐야하고 클라이밍 돌을 하나씩 밟아서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였다. 그렇다고 더 위로 올라가자니 두려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10미터에서도 이렇게 손이 떨리는데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의심이 밀려왔다.


아래 선생님들께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해보려 했지만 너무 높아서 들리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분주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냥 로프에 몸을 맡기고 내리면 된다고 안내를 받긴했지만 그 순간 그렇게 뚝 내 몸을 공중에 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차라리 끝까지 올라가면 누군가 도와줄 수 도 있고 혹시 다른 방법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정말 울며 겨자먹기로 무릎을 올려서 클라이밍 돌을 감각으로 찾아 발을 올렸다.

그렇게 2미터를 더 가니 고지였다. 골든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는 도저히 심장이 딸리고 손과 발이 후들거려서 못할 것 같았던 정상을 밟고 올라선 것이다. 골든벨을 울렸다. 도전에 성공했다는 기쁨과 함께  다시 멍해졌다. 아까나 지금이나 내려갈 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성공했다고 어려웠던 부분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두려웠다.


아이들에게 밑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포기하지 말고 해보라고... 근데 막상 해보니 그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으로 느껴졌다.


아이에게 말로만 나불대면서 격려랍시고 했던 이야기가 순간 미안해졌다. 

물론 진심을 담은 격려였고 아이가 그 두려움의 순간을 이겨내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것 아닐까? 그저 그 도전마져도 용기가 필요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감사했다.

 

손흥민의 아버님 손웅정이 쓴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엄마의 욕심을 더한 격려보다 그 경험 자체를 칭찬해주는 시선을 가지는 것이 나에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런 생각도 안떠올랐을 것이다. 그 순간의 두려움을 온전히 겪어보니 아이의 경험자체가 큰 자산이었다. 성공한 경험도, 실패한 경험도, 그리고 클라이밍을 도전한 경험자체가 자산이었다.


10m 지점, 그 순간 정말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남겨놓은 약 2미터를 바라보았다.

손을 얹고 올라가는 횟수로는 2번 혹은 3번의 손뻗음이 성공과 포기를 결정한다.

나는 그 순간 두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포기하거나 vs 또 하나는 올라가거나....


사실 성공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올랐다기보다는 포기할때의 어려움이나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려움이나 두개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성공요인이었던 것 같다. 


이럴바엔 차라리 성공을 위한 노력을 하자!!

포기하면 다음 스텝이 없는데, 성공하면 다른 스텝이 있을거라는 기대였던 것 같다.

결론적으론 클라이밍의 정상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성공하고나니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성공하고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줄어들고 명확해졌다.


성공 후에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12m의 높이에서 내 몸을 로프에 맡기고 멋지게 뛰어내리는 것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은 로프에 몸을 맡기고 내려와야 하는 행동은 똑같았지만 중간에 내려왔다면 미련과 후회가 남아 나를 괴롭혔을 것 같다. 그러나 골든벨을 누르고 나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건 후회가 남지 않았고 최종 선택에 있어서 어떤 미련도 고민도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성공은 다음 스텝을 더욱 명확하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선택과 집중을 훨씬 효율적이게 만들어준다.

내가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였다. 아이들에게 격려랍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 나만 잘하면 아이들은 나를 통해서든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든 또 배우고 느끼겠구나. 나의 경험이 아이의 경험이 될 수 는 없다. 그러나 아이가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중요하겠구나.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에게 어설픈 격려보다는

나나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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