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댁에만 가면 이상한 여자가 된다. 아니 시어머니한테만 늘 이상한 며느리인가?
세상 착한 며느리는 내 자리가 아니기에, 진작에 내려놓았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시댁만 가면 천하에 나쁜 사람이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는 관심이 없는 며느리 프레임에 씌워서 늘 나는 나쁜 년이다. 사실, 이건 우리 시댁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며느리를 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다. 늘 시댁에서는 나쁜 년이 되는 그런 며느리들의 이야기^^
왜 시댁에서는 며느리를 부려먹을 생각을 하실까?
친정집에선 사위 오면 뭘 해줄까? 고민하는데 왜 시댁에서는 며느리에게 일 안 시킨 것이 그렇게 배 아플 일일까?
아들이랑 영화 보러 가는 건 괜찮은데 며느리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건 왜 안 괜찮을까?
친정집에서는 사위 오면 같이 골프 치러 갈려고 부킹 해놓고, 부킹 안되면 장모님이 가려던 골프 예약도 내어주는데 시댁에서는 아무도 안 놀아주는 며느리 혼자 산책을 하건 영화를 보건 뭐가 그렇게 큰 잘못일까?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무슨 차이길래? 그게 그렇게 못돼 처먹은 일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 시댁은 제사도 없고, 차례를 지내는 일도 없고 성묘 갈 일도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덕분에 명절에 과도한 일이 없는 것은 세상 감사한 일이다. 딱 부모님이랑 우리 식구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정도니 특별히 부담스러울 일이 없다. 사실 명절 업무강도로 보면 명절 스트레스가 없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럼 그냥 감사하게 두면 안될까?
어머님이 경상도 분이시니 고지식하고 가부정적인 면은 감안을 해야겠다. 명절 음식이나 식단도 어머님이 일일히 정해서 준비까지 다 마쳐주시니 당일엔 준비된 재료만 넣어서 끓이거나 준비한다. 그런데 꼭 이런 말을 하신다.
올해는 며느리 좀 부려먹으려고 했는데....
네??
그럼 미리 준비하지 마시고 나랑 같이 준비해도 되는 데 다 준비해 놓고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명절에 부려먹을 생각으로 나를 부르신 건가??
거두절미하고, 명절 당일 다른 손님맞이 일정도 없고, TV가 하루 종일 미스터 트롯으로 도배가 되었다. 어른들은 귀가 잘 안 들리시니 볼륨이 높디높다. 귀가 쟁쟁거리도록 들으니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침을 늦게 먹기도 했고, 과도하게 먹어서 점심 생각도 없었다.
얼마 전 신랑에게 받은 상품권이 있었다. 이것저것 어머님이 신랑에게 보낸 선물이 있어서 유용하게 이용하시라고 큰맘 먹고 시어머님께 상품권을 좀 더 챙겨드릴 계획이었다. 모바일 상품권은 사용 못하시니 지류로 상품권을 바꿔드려야 한다. 가장 가까운 백화점을 찾아보았다. 그리 멀지 않았고 점심 이후에 갔다 오면 되겠다 했다.
마침 백화점에 상품권도 바꾸러 가니 영화관에 들러도 좋겠다 싶었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아이들과 생활하는 곳에 문화시설이 여의치 않아서 못 보았던 영화다. 신랑에게 이 영화 보고 싶은데 같이 가자 했는데 신랑은 이미 회식 때 본 영화이기도 하고 쉬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은 오래간만에 만난 아빠랑 놀고 싶어 했다.
점심식사를 챙기면서 어머님께 잠깐 백화점이랑 영화관 좀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짠하고 상품권 드리고 싶은 마음에 굳이 상품권 바꾸러 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식사 챙기고 나오니 살짝 늦었지만 그래도 광고시간 고려하면 늦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점심 먹고 저녁까지는 사실 다른 일정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신랑은 어제 장거리 운전으로 뻗었고, 시부모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누워계신 상황, 아이들은 아빠랑 놀고 싶어서 엄마는 눈에도 안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딱히 일정도 없고 저녁식사 준비시간에 시 언니네 식구가 오신다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딱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고 싶던 영화도 보고, 어머님께 드릴 상품권도 바꿔서 왔다.
그리고... 나는 상식이 없는 세상 나쁜 며느리가 되었다.
영화 보고 온 2시간, 내가 집에 있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른들 계신데 혼자 나갔다 온게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가 나실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애초에 가지를 말라고 하시던지 상품권 바꾸러 간 건 모르는 상황이라서 그럴 수도 있으시겠지 했다.
그래...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은 늘 이런 오해와 프레임 속에서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백번 그냥 이해하고 어른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거니했다.
그리고 친정으로 왔다. 도착하니 우리 집 식구들은 잘 먹지 않지만 사위가 좋아하는 홍어무침을 따로 챙겨 놓으셨다. 심지어 목포의 맛집에서 주문해서 공수해놓으셨다. 시엄마는 나를 못 부려먹어서 화가 나셨는데 친정엄마는 사위를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해주셨다.
몸이 불편하신 시부모님이시니 여행을 가거나 나들이를 가자고 하지 않는 게 나에게는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지만 혼자 산책 가거나 영화를 본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닐 것 같은데 며느리 혼자 갔다 온 게 그리도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남편이랑 갔다면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 2시간이 그렇게 못마땅할 일일지...
친정에서는 명절에 잡기 힘들다는 골프장 부킹을 벌써 한 달 전부터 잡아놓았다. 엄마가 가실 골프를 신랑에게 기꺼이 양보하면서 갔다 오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프를 치고 왔다. 또 골프 치고 왔으니 힘들었다면서 애썼다한다.
우리 시어머님은 아실까?
우리 친정에서는 당신의 아들을 못 부려먹어서 안달이 나지도 않고,
한달 전부터 사위랑 골프치고 싶은 마음에 골프 예약을 잡고,
인원이 안맞아서 자신의 골프예약을 사위를 내주시고,
온 종일 골프를 치고 와도 잘했다고 애썼다 하신다는 사실을?
그냥 이게 아직도 우리나라 며느리의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내 시어머니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뭐 더없이 좋으신 시어머님들도 많겠지만 아직은 많은 시어머님들이 이러시니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기 싫은 거 아닐까?
딸 같은 며느리 이런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 딸같이 대할 것도 아니면서,
사위 같은 며느리로 대해주면 좋겠다. 며느리 먹고 싶은 음식 공수해서 차려주고, 그간 아이 보느라 못 놀았으니 영화라도 보고 오라고 아니면 노래방이라도 갔다 오라고 ㅋㅋㅋ
나에게는 아들도 딸도 있다. 아이들이 결혼을 한다면 시엄마도 친정엄마도 되는 자리다. 이런 프레임에 대해서 자각한 만큼 내가 그 시점에서는 좀 다른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행복한 명절이 되면 좋겠다.
올 추석도 애쓴 우리 며느리들 만쉐이~~
그리고 시댁스트레스에 명절에 과중한 전을 부치는 업무까지 해낸 며느리님들에게는 존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