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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부모도, 농촌도 행복한 농촌유학

몇 달 전에 저에게 연락이 왔어요.

농업기술자 협회에서 농촌유학에 관한 칼럼을 써달라고 연락이 오셨더라고요.

반갑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어요.


그냥 일방적인 장점을 이야기 하기보다는 농업기술자 협회이니 만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이 회보를 보실 독자분들은 농촌유학이 진행되는 시골의 농업인들이 주요 독자층이라고 생각하니 서로 간에 협업을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요청을 바탕으로 제가 경험했던 농촌유학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농촌유학을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들,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으려면 이런 부분들에 대한 저만의 단상들을 나름대로 적어볼 수 있는 기회였어요. 회보가 종이책으로만 나와있어서 전문을 아래 함께 적어봤어요. ^^ 소소하지만 이런 기회들이 저에게도 농촌유학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감사했던 시간입니다. 



아이에게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다


“엄마, 나 학교 가면 혼자 계속 멍 때리다 와. 학교 가기 싫어! 진짜 너무 싫어!”


이제 막 학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친구들을 사귀는 기쁨에 푹 빠져야 할 시기에 아이가 한 말은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입학하는 시점에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 학교 기능이 마비되는 일이 잦았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는 시간을 즐거워할 줄 알았다. 그러나 가림막을 한 상태로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 말조차 편히 붙여볼 수 없는 상황이 아이는 혼자 노는 것보다 더 싫고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학습 습관이 몸에 배지 않은 아이가 매시간 한마디 말도 없이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등교에 대한 거부반응은 계속 나타났다. 막막하던 때 독서 모임을 통해 ‘농촌유학’을 알게 되었다. 소개를 받아 처음 방문했던 학교는 산속 깊은 곳 폐교 위기의 작은 학교로, 학생 수가 적어 코로나19 시기에도 온라인이 아닌 대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농촌유학을 좀 더 알아보게 되었다.



농촌유학은 형태가 다양하다. 마을이나 지자체에서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는 곳, 기숙사나 홈스테이 형태로 운영하는 곳, 엄마와 아이만 이주하는 형태, 온 가족이 귀촌하여 이주하는 형태 등 각 가정의 상황에 따라 선택하여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가 농촌의 학교에 잘 맞을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학교의 방향성이나 운영 시스템 등은 부모가 알아볼 수 있지만, 학교를 경험하는 것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학교라는 책임감을 느끼면 농촌유학 생활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지금의 농촌 학교 대부분은 교환교류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서 교류를 원하는 학교에 일정 기간 다녀보며 시스템을 확인하고 적응해 볼 수 있다.



농촌유학으로 깨달은 아이의 표정



교환교류를 신청한 강원도 홍천의 학교에 다녀온 첫날, 아이는 친구들과 마스크만 쓰면 이야기도 편히 할 수 있고, 운동장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쉬는 시간도 30분이나 된다며 흥분했다. 하교 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와도 되느냐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 7시에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자연을 관찰하는 환경과 여유가 생기면서 메뚜기·잠자리를 잡고, 상추가 자라는 것을 보고, 아침마다 떨어진 오디를 수확해 오기도 했다. 계곡을 놀이터 삼아 물놀이하고 물고기 잡기에도 열중했다. 아이가 학교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엄마인 나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반응을 회피하고 도시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다면 아이의 표정 변화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놀라운 변화는 나에게도 일어났다. 타인의 잣대가 알게 모르게 삶에 드리워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는 조급함이 있었다. 농촌유학을 와 그런 환경에서 멀어진 것도 있지만, 삶의 중심과 가치를 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치열하게 몰두하는 만큼 나를 다독이며 치유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생기니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자연 친화적 교육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유학에 동참하고 교육공동체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소망도 생겼다. 한편, 농촌에 살아보니 도시에서는 당연하게 여긴 배달 음식도, 분식 같은 외식을 할 만한 곳도 없다. 새벽 배송도 없고 일반 택배도 하루 정도는 더 걸린다는 느긋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족함이 아이들의 삶의 태도를 만들었다. 장난감을 살만한 곳이 없어 자연물로 즉흥 놀이를 만들고 아이들끼리 놀이와 규칙을 만들어 스스로 창작자가 된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재활용품으로 만든 장난감도 충분히 즐기고 더 소중하게 여긴다. 자연이 가깝다 보니 미디어 접근도 줄었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 물놀이를 더 자주 했고, 춥지만 꽝꽝 언 천연계곡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탔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낀 아이는 생각과 감정이 다양하고 특별할 수밖에 없다. 남들은 해보지 않은 경험이 아이의 무기가 된다. 영하 20도 겨울 추위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야 현관문을 열 수 있고, 하루만 수도를 관리하지 않아도 꽁꽁 얼어서 며칠 동안 세수도 못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러한 불편에 불평불만이었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서 편안한 삶이 원래 내가 가진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불편함은 삶의 감사함이 되었다.


서로 돌보고 어우러지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농촌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 않아도 우리처럼 농촌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농촌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농촌에 가고 싶어도 살 집이 없으면 방법이 없다. 우리 가족처럼 도시에는 남편이 거주하고 아이들과 엄마만 이주하는 경우 살만한 집을 구하는 것이 큰일이다. 도시의 부동산처럼 정보를 한 번에 알려주는 곳이 많지 않아 집집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전·월세 여부를 물어야 했고, 비어 있다고 해도 성수기 이익을 위해 내놓을 의사가 없는 분도 많았다. 농촌에서 생활해 보니 별장처럼 지어놓고 막상 이용하지 않는 빈집도 많고, 인구가 줄어 운영되지 않는 공공시설물도 허다했다.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폐교도 많았다.


농촌유학을 농촌 활성화의 기회로 보고, 지자체·마을·학교·학부모 모든 주체가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지방 소멸’ 같은 암울한 단어도 점차 오르내리지 않게 될 것이다.


첫째, 지자체는 이용하지 않는 공공시설이나 집에 대해 사전 정보 조사를 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정보를 모아 농촌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방치된 곳들은 거창한 수준이 아닌 실용적이고 안전한 수준으로 리모델링하여야 한다. 당장 기존 시설을 리모델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지역의 펜션이나 별장을 일정 기간 렌트해 주는 형식으로 운영·알선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수요가 생기면 만들겠다는 논리로는 농촌을 활성화하기 어렵다. 농촌유학을 같이 오고 싶어 했던 여섯 가구가 결국 집을 구하지 못해 도시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을 찾아 떠났다.


둘째, 마을 공동체의 인식이 변화하여야 한다. 타 지역 인구 유입이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하고 지역민 본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됨을 지자체가 사전 교육으로 인지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해결 방안도 도출될 것이다.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아닌 지역 내 거주 가능 공간에 대해 지역주민이 나서서 지자체에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학교에서는 농촌유학을 온 아이들이 적응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학교 입장에서도 중요한 일이라고 인식하고 교류의 장을 제공하였으면 한다. 가족 참여 행사 등이 이뤄지면 그 안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적응하며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다.


넷째, 농촌은 도시의 학교처럼 교류가 없어도 상관없는 곳이 아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랴, 지리를 익히고 시설물을 파악하는 등 버거운 일이 많다.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지역주민의 이해와 도움도 필요하다. 지역주민 입장에서는 타지 사람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경계와 텃세는 오해를 낳는다. 학부모도 도시의 생활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지역주민과 친해질 기회를 만들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잘 몰라도 인사하며 안면을 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국, 도시도 농촌도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기에 어우러짐이 있을 때 무엇이든 쉽게 해결된다.


농촌유학으로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접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삶이 악보로 기록된다면 쉼표를 곁들인 풍부한 음표들로 농촌유학 시절이 그려져 있을 것이다. 아이도 나도 우리가 머문 농촌도 행복한 멜로디를 갖게 되길 바란다.



-농업기술회보/2022년 3호 칼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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