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설마, 내 아이는 아닐 줄 알았다

툭...

어?...

늦잠자는 아들을 깨우려 이불을 잡아당겼다.

거기에는 신랑이 쓰던 공폰이 나왔다. 별 생각없이 구석에 쳐박아두었다가 몇번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사용했던 적이 있다.

사실... 핸드폰이 떨어졌을때 조차도 별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저 굴러다니다 내가 정리를 안해놓았구나 하고말았다.

그런데 떨어진 핸드폰을 줍다보니 유튜브 영상 리스트가 좌르륵 떠있었다.


그 영상의 100%가 포켓몬이였다. 짧은 쇼츠영상도 있고, 좀 길게 포켓몬을 설명하는 영상도 있고...

직감적으로 이것은 의도적으로 본 영상이지 그냥 굴러다니다 알고리즘이 막 엮어내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갑자기 머리가 하애졌다.

이게 지금 뭘까?? 어떤 상황이지??


사실... 우리집은 게임에 노출될 일이 별로 없다. 나도 우선 게임을 전혀 하지 않고, 아빠도 당연히 게임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둘다 게임을 싫어한다. 그러니 아이가 어쩌면 3학년까지는 따로 노출될 일이 별로 없었다.


문제는 학교였다. 친구들이 학교로  가져오는 핸드폰으로 쉬는 시간이나 스쿨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시간에 모여서 옹기종기 게임을 하는 모양이다. 핸드폰도 없는 아들은 당연히 게임하는 애들 무리에서 뚫어져라 핸드폰을 보는 모습이 안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멘붕이 왔다. 정말... 정말... 단 한번도 일말의 의심을 해본적이 없던 나였다.


더구나 이런 마음이라서 집안의 컴퓨터며 핸드폰에 키즈락을 걸어놓거나 키즈 설정을 따로 안해놓았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불안한 마음들이 활활 타올랐다. 다행히 핸드폰 목록을 보니 전부다 포켓몬에 관한 것이긴 했다.


엄마:아들, 이거 언제본거야? 왜 핸드폰이 네 배게옆에 있는거야?


아들의 얼굴에는 당황함과 무서움과 두려움의 표정이 시간의 순서를 알 수없을 만큼 얼굴 전방위로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눈가득 눈물이 베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 같아서 나역시도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들 언제부터 본거야?

아들: 방학 되고나서 한달정도 지나서... (이 마저도 그날은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한 10일 전정도인가??


엄마: 엄마랑 함께 있었는데 어떻게 본거야?

아들: 엄마가 저녁 늦게 줌으로 수업하거나 수업들으러 갈때 누워서 이불속에서 봤어.

아니면 엄마 일찍 잠들면 잠 안올때 몇개씩 봤어. 여러개는 아니고 ...


농촌유학중인 이곳에서는 온가족이 함께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불속에서 포켓몬 영상을 봤다는 것이 너무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옆에서 자면서도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 황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학의 일상이 왜 깨졌는지... 어렴풋이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원래 일찍자고 일찍일어나는 편이였는데 방학 중순부터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했다. 나름대로 아이가 긴장도 풀어지고 키가 쑥쑥 크고 성장하는 시기라 그런가보다 하고 아침에도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 더 자라고 그러다보니 오전에 하려던 일들이 늘 미뤄지고, 오후까지 계속되는 방학의 일상에 투닥거리며 보낸 시간이였다.


 자려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자극적이고 화려한 영상을 보는데 잠이 잘 올리가 없고, 계속 보고 싶으니까 하나씩 보다보면 한시간은 훌쩍 자는 시간을 넘겼을 것이고, 그러고보니 아침에 일찍 일어날 재간이 없었다. 안그래도 잠이 많은 아이가...


그리고 그날의 일을 완수하고 못해도 더 열심히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나의 할일을 다 하지 않아도 엄마가 자거나 공부할때 핸드폰으로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다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엄마: 아들, 엄마 너무 속상한데... 이거 누구를 떠나서 그 동안 너 자신을 속이고, 엄마를 속였던 거잖아.

아들, 이건 아닌거 같다.

아들: 엄마, 아니..  엉엉엉

아들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고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엄마: 아들, 다른 건 몰라도 너를 속이는 거 안돼. 네 인생인데 당당하게 살아야지 숨어서 이게 뭐하는거야?

엄마가 지금 너무 속상하다. 게임한거, 유튜브한게 잘못했다는게 아니야. 너가 너의 할일을 잘 해내면 충분히 할 수 도 있는 건데 이렇게 속이거나 약속을 어기면서 하는건 아니란다. 엄마가 지금은 마음도 너무 힘들고 놀라기도 했고 저녁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게 좋겠다.


방을 나와서 부엌에 서서 아침 준비를 하는데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더구나 둘째가 사라졌다. 아무리 불러도 집안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매일 챙겨놓는 가방이 사라졌다. 아마 학교를 간 모양이다. 오빠 혼나는 소리에 놀라서 일찍 학교를 간 모양이다. 아침도 먹지 않았고 아직  학교 문도 안 열 시간인데...


아침 나절 내내 정신이 혼미했다.

학교로 달려가보니 문이 열리지 않은 학교 앞에 딸랑구가 기다리고있었다.


엄마: 딸!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학교로 가면 어떻게??

딸: 아.. 나는 늦은 줄알고, 6자에 긴 바늘이 있는데 아직 안챙겨서 늦을까봐 나왔어. 오빠도 혼나고...

엄마: 학교는 8시 30분에 여니까 네가 본건 7시 30분이야. 그래도 늦지 않으려고 노력한거 너무 고마워. 근데 엄마가 걱정했잖아. 다음부터는 꼭 이야기하고 가야해.


다시 딸랑구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바깥바람이 머릿속에 숨통을 트여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와서는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릉 챙겨서 가라고만 하고는 아침인사도 못했다.


첫째의 일은 늘 나에게 첫경험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상황에 대한 파악을 하는데도 한참이 걸리고 파악하고 나서도 처리가 늘 매끄럽지 않다. 그간의 육아경력으로 이제는 이불킥하는 후회는 좀 줄이려고 하지만 여전히  그런 첫경험을 할때는 일의 경중을 가늠하기가 어렵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나서 찹찹한 심정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나 싶은 마음도 들고 아이들 환경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끊고 티비도 끊었는데 막상 아이는 그런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커나가는 것 같아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으로 스며들 것 같아서 달리기를 하러 나섰다. 그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래도 몸을 움직여야만 나쁜기분도 털어낼 수 있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일의 무게가 조금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 그게 뭐 큰 일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또 배신의 감정과 속상한 감정이 몸속을 빙빙 돌고다녔다.


아이가 오기 전까지... 나는 나만의 솔루션을 찾아야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 마음도, 아이 마음도, 그리고 계임이나 영상에 관한 우리의 룰도...


설마, 내 아이가 이럴줄은....





매거진의 이전글 미운털 빼고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