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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포켓몬 쿠폰을 만들자!

1탄: 설마 내 아이는 아닐 줄 알았다.

https://brunch.co.kr/@almo1004/189

사건의 발단은 1탄에서 읽어보실 수 있어요. ^^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가 숨어서라도 게임을 하고 싶은 마음을 엄마가 몰랐다는 사실이 미안했고,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또 미안했다. 미안함과 놀람의 마음이 혼재되어 있었다.


아침엔 당황하기도 하고 아이가 이불속에서 몰래 게임 영상을 봤다는 사실이 괘씸하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로 요즘의 내가 조금 아이들에게 너무 원칙만 내세웠던 시기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농촌유학을 하는 중이기도 하고 아직 학원이나 사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못 찾았기에 방학은 아이들과 나름의 규칙을 세워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이가 할 일을 하기로 한 루틴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걸로 아이와 나는 꽤나 옥신각신 하는 시기였다. 나는 아이에게 네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을 때는 네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 거야라는 원칙을 지키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방학 내내 아이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학교캠프 외에는 다른 일정도 없었다. 엄마랑 약속한 숙제만 하면 나름 프리한 생활이었다. 그런데도 무언가 딱 떨어지는 느낌 없는 방학을 보낸 것이 개인적으로는 참 아쉬운 방학이었다. 할 일이 아이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의 성향 때문에 게임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아이의 특성상 하나에 꽂히면 6시간이고 7시간이고 앉은자리에서 몰두하는 성향이라서 게임에 노출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했다.  몰입과 집중이 좋은 거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독으로 나타날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다.


이런 과정 가운데 아침에 있었던 일은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다. 울먹이던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상황파악에 나섰다. 아이를 보내고 정신 차리고 보니 그렇게 큰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아침에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싶은 마음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아이와 내가 이 과정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이가 하원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역시나...

야!!! 4학년인데 지금까지 게임도 안 하고
게임 영상도 안 보는 애들 정말 없어!
중학생 되면 네가 말하는 건 씨도 안 먹힐걸??
지금까지도 너무 쉽게 키운 거야!
아이가 엄마랑 소통이 되니 지금까지도 참으면서 지내 온걸거다~
진짜 별일 아니야! 현질 하는 애들도 수두룩이야~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도 아닌 안도와 함께 내가 너무 내 기준에서 아이를 바라봤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원칙이라는 틀 안에 아이를 가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대로 다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의 하원 시간이 다가왔고, 어떤 해결책도 방법도 없는 나였다. 그저 아이가 돌아오면 반갑게 다시 맞아주는 것 외에는 나에게 해결책이 없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들어오면서부터 바로 나에게 해결방법이 있다면서 조잘대기 시작했다.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아들이 하루종일 그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문제해결을 위한 아이 나름의 고민이 대견했다.


엄마: 아들, 근데 엄마 궁금한 게 있는 데~
엄마가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줬는데도 왜 숙제미션을 제대로 안 했어? 그걸 하면 원하는 게임도 할 수 있고 엄마에게 혼날일도 없는데? 엄마는 아들이랑 나름 약속을 정하고 시간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게 지켜지지 않았을까? 어떤 부분이 힘들었던 걸까?
아들: 엄마... 나는 토요일까지 기다리는 게 너무 멀고  힘들게 느껴져.


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아들에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고도 먼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일주일 동안 숙제미션과 할 일들을 잘하고 토요일에 할 수 있는 게임시간은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날그날의 미션 수행을 위한 노력에 동기부여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은 보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스타일이었다. 그 먼 여정을 기다리느니 지금 힘든 숙제를 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방학이 그리 흘러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이미 해결책이 있었다.


아들: 엄마, 일요일은 쉬는 날이니까 빼고, 나는 토, 월, 화 미션을 잘 수행하고 중간인 수요일에 한번 게임을 하고 싶어, 그리고 수, 목, 금 미션을 수행하고 또 토요일에 게임을 한번 하고 싶어! 그러면 한번 하는 게임의 시간을 늘리지 않아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그럼 혹시 중간에 미션수행을 못하는 날이 생기면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게임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잖아. 이것도 좀 생각해 봐야겠다.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 아들이 가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건 고민해 보자.
아들: 그리고 엄마, 게임을 하려면 내용을 좀 알고, 공략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유튜브나 이런데 나오는 방법을 좀 익혀야 하거든 그래서 그걸 보는 시간을 평일에 조금 넣으면 어떨까? 그날 미션을 잘 수행하면 유튜브에 나오는 게임설명 영상을 보고 싶어.
엄마: 아, 그럼 그날 미션이 잘 해결되면 짧은 영상을 하나정도 보는 걸로?


오전에 친구랑 전화하면서 이번 상황의 문제점 중 하나가 아이에게 주는 게임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너무 적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 아들의 두 번째 솔루션으로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에게 맞는 방법 조금씩 찾아졌다. 주중에 보이는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미션을 잘 마치면 하루하루 쿠폰을 발행하기로 했다. 게임시간 쿠폰이라 원하는 만큼 모아서 아이가 원하는 시간에 몰아서 쓸 수도 있고, 나눠서 쓸 수도 있도록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엄마: 아들, 엄마 오늘 깜짝 놀랐어. 아들이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아들이 제시한 것들에 엄마가 정말 하나하나 설득당했어^^


솔루션을 가져온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엄마인 내가 뭐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아들이 좋아하는 포켓몬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엄마: 아들! 그럼 우리만의 포켓몬 쿠폰을 만들까? 아들 취향의 포켓몬 쿠폰!!  아들은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좋다면서 메모지에 자신이 좋아하는 포켓몬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위해 만든 포켓몬 쿠폰^^
쿠폰은 코팅이쥬~

아들에게 참 고마웠다. 아침에 한바탕 소동으로 엄마의 마음도 아들의 마음도 쭈그러진 풍선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들이 정말 많이 컸다. 어느새 이렇게 불쑥 커서 엄마 몰래 무언가를 해보기도 하고, 솔루션을 준비해 와서 엄마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아들 덕분에  딸도 얻은 우리만의 포켓몬 쿠폰북!!

여전히 나에게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걱정하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너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쑥쑥 커버렸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간 너무 많은 입을 덴 건 아니었는지,
너무 많은 규칙을 내세워 아이를 옥죈 것은 아닌지,

아이가 크는 만큼 나도 엄마로서 커나간다. 엄마가 아니라면 경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오늘처럼 정말 지나 보면 헛웃음칠 일도 그 순간에는 내가 무너질 것 같은 일도 사실은 그리 큰일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 과정을 통해서 내 안의 틀을 깨고 나오는 시간들이 정말 많아지겠지? 


그때, 꼭 "우리만의 포켓몬 쿠폰"을 떠올려야겠다.  아이가 생각하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도와주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아이의 방식으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그저 엄마가 거들어 줄 수 있는 것. 


엄마는 찾지 못했지만 결국 답은 네가 가지고 왔더라. 

아들... 너는 그렇게 스스로 너의 길을 찾아가고 방법도 찾아가는 그런 아이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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