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의 일이자 삶인 육아에 대해서 글 하나 쓰는 게 오늘따라 참 생소하게 느껴진다.
매일 조금씩 나의 일상과 아이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SNS로 육아일기를 대체해왔다.
그러나 sns의 기록은 나의 짧은 기억에 대한 단상들을 잊지 않고 혹은 찾아볼 필요가 있을 때 추억팔이용 역할을 더 많이 담당하고 있다.
2018년 7,8월 나에겐 인생 최대의 길고 긴 여름이었다. 큰아이가 6월쯤 어린이집 중단 선언을 했고 유치원이나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기에 방학이며 휴가가 중간에 끼어서 마땅치 않았다.
그래 큰 아이가 다니기 싫다는데 이참에 좀 신나게 놀자 싶어 나는 가지 말라고 호기롭게 말했지만.... 이렇게 큰 어려움이 될 줄을 그때는 몰랐었다.
너무 더운 여름에 집에 아이들과 있기보다는 하루하루 알차게 보내고 싶어 열심 육아에 돌입했다.
일주일 내내 수영장과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녔고 할 수 있는 체험과 경험을 마음껏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되었고 하루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특히나 우리 아이들의 특징은 과도하게 좋은 체력과 잠과의 결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벌인다는 것이었다.
첫째 특유의 집요함과 예민한 감수성은 나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했고 둘째의 막무가내적인 성격과 말이 씨도 안 먹히는 상황은 나의 육체를 바닥으로 만들었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성적이고 관대하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한 상황들은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나 왜 이러는 거야? 남들은 육아하면서 행복하다는데 나만 이렇게 지치고 힘들고 미치겠나? 싶은 생각에 나의 모자란 모성애를 반성해 보다가도 이런 상황에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은 남편에게 그 화살의 촉을 날리며 누군가의 탓으로 만들고 싶기도 했다. (물론 남편의 실수가 있던 차라 때마침 적당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속상해서 큰아들을 씻기면서 나에 부족함을 토로했던 모양이다. 6살 아들이 와서 나에게 속상해하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미운 이야기를 해.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우리 밥해주고, 돌아다니고 얼마나 바쁜데 아빠가 일찍 와서 씻겨야지 진짜 속도 모르고... 근데 엄마, 아빠는 엄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잊어버렸나 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데...
근데 엄마, 엄마도 아빠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잊어버렸어? 아니지? 엄마도 진짜 좋고 아빠도 얼마나 좋은데.... 둘이 잘 모르나 봐 그렇지? “
아들한테 할 이야기 못할 이야기 구분도 못하나 싶어 남편에게 화가 나면서도 아들 이야기에 부끄러웠다. 한편 갑자기 쑥 커버린 것 같은 아들을 마주 대하고 있으니 내가 육아를 하긴 하고 있구나,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라는 아이를 대하고 있다는 생각에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 신랑을 만났을 때 우리가 참 좋은 사람이었던 때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육아에 메인 하루하루가 지치고 답답할 때가 많다. 아이 둘과 지지고 볶고 사는 게 내 인생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이게 뭐하나 싶은 생각에 울컥하고 마음에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3살, 6살, 손이 많이 가는 시기의 육아현장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다 보니 육아를 떠올렸을 때 아름답고 숭고하고 막 그런 이미지보단 고군분투하며 외로움과 혹은 부담감에 어깨를 펴지 못하는 내가 오버랩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아빠는 엄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잊어버린 거 아니야?”라는 6살 아들의 물음에 눈물이 핑 돈다. 적어도 아들에게만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행복하다. 그리고 나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되돌려주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아이들 덕분에 아직 너무 부족한 내가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는 듯 나를 키우는 육아일기를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