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엄마가 잊을까봐 미리 보내는 편지.
글쓰기 폴더에서 발견한 한 장의 편지
주저리 주저리.. 생각나는 것들을 마구 적어 놓기도 하고 속풀이 글을 쓰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당부를 적기도 했던....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럴까 봐 써놓았구나 싶다.
딸, 언젠가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너에게 안정적인 길을 가라고 당부하고 싶을까 봐 미리 걱정되어 써놓았던 편지야!! 세상의 잣대로 재단당하지 말고, 너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가.....
딸아, 이 새벽에 너에게 편지를 쓰려고 가만히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파란 하늘 아래, 넓은 공원이 자기 앞마당인 냥 뛰어다니던 한낮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언제 이렇게 많이 쑥 컸지? 너와 함께 했던 23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듯하다.
조리원에서 너의 별명은 “잠자는 조리원의 미녀”.유난히 잠이 많아 젖 먹다가도 자버리는 너를 깨우는 게 엄마와 조리원 선생님의 중요한 일상일 정도로 넌 처음 태어났을 때 잠이 많았어.너무 심하게 많이 자서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마음 졸일 정도였지(아마도 그땐 청각이 많이 발달하지 않아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듯하다)
둘째는 다들 발로 키운다고, 대부분 순하더라, 카더라 통신에 많은 무게를 두었던 엄마는 백일을 지내면서 남들이 맞는 백일의 기적과는 완전 다른 딴판의 기적을 만나야 했단다.
발로 키우기는커녕 발도 못 씻는 엄마가 되었고, 순하다는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어. 고집은 세고 눈치는 빤해서 혼날 때는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라)’를 능수능란하게 본능적으로 알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선 어떤 고집도 꺾지 않는 불굴의 투지를, 뺀질대는 건 7세 이상의 뻔뻔함으로 무장했지.
“예쁜데 버겁다”가 엄마 친구들 사이에서 타이틀일 정도로 유난스럽고 흥도 많은 너를 마주 대할 때마다 누굴 닮았나? 하는 물음을 던져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집불통은.... 자기주장이 강한 나의 성격을 닮은 것 같다. 무서움이나 조심성이라고는 1도 없는 너는, 나의 어린 시절 깁스를 수시로 하던 내 모습과 또 오버랩된다. 낯가림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 한 너의 행보는 역시나 거침없는 나의 성향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의 미니미. 하하하... 누굴 탓하나 싶은 결론으로 끝을 맺곤 한다.
딸랑구, 이제 와서 고백하는데 엄마가 우리 딸에게 너무 미안해. 사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왜 둘째가 다들 예쁘다고 하지? 나만 모성애가 부족한가? 나만 이상한 건가? 나 너무 힘든데, 둘째 낳고의 힘듦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말해주지 않았던 걸까? 고민하며 힘들어하던 시간들도 있었고, 이제 무언가 해보고 싶은데 너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속상했던 시간들도 있었어. 나의 힘듦이 더 커서 우리 딸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받아주지 못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미안해.
딸~, 우리 예쁜 딸! 사랑하는 내 딸아, 엄마가 너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어.
아직 엄마도 세상을 다 살아보지 않아서 무엇이 답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엄마가 훗날에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도 나이가 들고 너의 안녕과 편안함을 기원하니,
너에게 가장 안정적인 무언가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겠지?
근데 그때 너의 마음속의 소리를 꼭 들어보길 바란다.
네가 자라다 보면 세상에 많은 기준과 잣대 속에서 너를 재단하거나 버려야 할 순간들이 올 때가 있다. 또한 사회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런데 딸아 세상의 잣대로 보지 말고 너만의 잣대를 스스로 만들고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길 바라다.
너는 그냥 너대로 자라나렴.
세상의 기준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너를 잃어가는 때가 많아진단다. 너를 잃지 않는 삶을 살렴. 어떤 선택을 해도 엄마는 너를 지지할 거야. 다만 그 선택에 있어서 네가 최선을 다하길 바랄게. 우리에게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당장 급한 것에 마음 졸이지 말고 너의 인생을 살아가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새 너와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언젠가 네가 성인이 되어 나와 함께 이 거리를 같이 걸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쇼핑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그때는 나누고 있을까? 아직 오지 않은 사춘기를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극복할 수 있을까를 미리 고민해보기도 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가운데 너와 내가 친구처럼 지내면서 우리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자꾸나.
다시 한번 사랑한다.
- 세살이 된 그해 9월 21일-
미세먼지 없이 맑고 화창하고 예쁜 날
엄마가 나의 미니미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