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란 항상 성에 차게 준비하지 못한다. 더구나 긴 여정의 경우엔 돌발 변수나 변동 일정이 많으므로 진행하면서 수정되는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리포트를 만들어 놓으니 마음은 든든하다. 긴 여행을 떠날 때 나만의 의식 같은 것이다.
출발 전날인데 맘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남편이다.
물론 결혼 전부터 엄마랑 여행 갈 계획은 알고 있었다. 짧은 연예 기간이 맘에 걸려 여행계획을 핑계로 연예를 길게 해보자는 나의 제안에 결혼 후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호기롭게 나에게 약속을 했다. 남편은 그때만 해도 이렇게 착착 진행돼서 여행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을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신혼 1년 차에 강제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결혼 후에는 신랑과 처음 떨어져 있는 일정이라 나 역시도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묘하기도 하고 애틋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신랑도 자기가 먼저 제안한 약속이지만,
막상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에
어라??진짜가네??했다가
막상 하루 전날이 되니까 생각보다 서운하기도 하고 혼자 있을 생각에 암담하고 외롭게 느껴진 것 같다.
신혼 1년 차에 부인이… 아프리카로 떠난다니… 이런 느낌??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를 미리 접한 나와 아프리카에 1도 관심 없는 남자가 떠올리는 아프리카는 완전히 다른 느낌일 것 같다.
NGO 단체의 광고처럼 사막 한가운데 기아에 굶주린 아이들을 떠올리며 나랑 엄마가 그 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오버랩되는 느낌이랄까?
하루 전날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셨다.
짐을 가져오셨는데 많은 옷과 먹거리가 가득한 캐리어였다. 식당 차려도 될 만큼 큼지막한 고추장까지 가방이 한없이 무겁다.
엄마가 가져온 캐리어는 찍지도 못하고 내가 메고 다닐 백팩이다.
그래도 이런 먹거리들이 해외에서는 향수병을 달래주기도 하고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걸 잘 알기에 조금 소분하고 줄여서 가져가기로 했다.
또 엄마가 자기 짐을 싸다 보니 없는 준비물들도 꽤 있어서 준비물도 사러 가야 했다.
엄마가 구매목록으로 적어온 준비물들을 보니 그중 하나는 속옷이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려고 짐을 싸다 보니 변변한 속옷조차 없다는 사실을 아셨다고 한다.
그간 계속 속옷도 사야지, 사야지 했을 텐데 일상에서 바쁘게 살다 보니 내가 입고 먹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엄마의 바쁘고 고단했던 시간이 느껴졌다. 지금 그때의 일기들과 기록들을 보니 그 당시엔 그저 엄마가 속옷을 못 샀구나 하고 말았는데….
내가 결혼 10년 차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의 그 시간을 전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바쁜 업무와 텃밭의 일거리, 남편까지 챙기다 보니 미루고 미뤄진 내 물건은 이런 때가 되어서야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고단했던 엄마의 시간이 오롯이 느껴진다.
또 다음 구매 물품은 영양제였다.
연세가 있어서 여행 가서 체력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여행 시 어른들이 꼭 챙겨야 할 목록이다. 이 영양제도 일상에서는 미뤄두고 못 사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아파서 딸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되어, 꼭 사야 할 품목으로 적어오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고는 싶으나 고민인 기능성 잠바였다.
지금은 흔하고 많은 게 이 기능성 잠바이고 저렴한 가격대도 많아서 부담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이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고어텍스 소재의 기능성 잠바가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엄마가 자기 입자고 선뜻 구매할 품목이 아니라 고민하셨다.
그러나 큰오빠가 여행가라며 준 용돈이 있어서 기능성 잠바를 한번 보러 가자 하신다.
아들이 꼭 구매하라는 품목 중 하나였다. 아들 당부 덕분인지 용돈 덕분인지 백화점으로 향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지금은 일명 등골 브레이커라 불리는 아웃 도어 전문 브랜드에서 엄마 마음에 쏙 드는 파란색 잠바를 보았다. 화사하게 엄마를 더욱 밝혀주는 컬러였다. 엄마도 간만에 맘에 쏙 드신 모양이다.
또 다른 컬러는 나에게 잘 어울렸다. 우리 둘은 입어보다가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는 과감하게 나 에게도 주황색 컬러의 기능성 잠바를 선물해 주셨다. 자기 물건만 사는 거였으면 한 동안을 놓았다 들었다를 반복했을 엄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사냐며 나는 엄마에게 감사하다며 냉큼 선물을 받았다. 역시나 철없는 딸이었다.
엄마와 나는 파랑과 주황색의 기능성 잠바를 입고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신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잠바는 아프리카 가서 요긴하게 잘 쓰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짐을 싸고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의 여정을 기다렸다.
10년 전에는 막상 이 준비물들이 그렇게 큰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준비하지 못한 물건들을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나의 기록들을 다시 되돌아보니
그 당시 준비 못 했던 물건들이조금씩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완벽한 여행을 위한 준비로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신혼은 신혼이었나보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은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있는데 애틋함으로 시선을 좀 옮겨봐야겠다.
엄마의 못다 준비한 물건은 속옷, 영양제, 그리고 기능성 외투였다. 워킹맘으로 바쁜 업무, 그리고 가족들에 우선순위를 내어 주었던 것들이다.
지금은 나도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고 일상의 업무들을 하다 보면 항상 나를 위한 것들이 조금씩 미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