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이 시작되다.


방콕에 도착했다. 케냐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약 2~3 시간의 여유가 있다. 방콕 공항을 돌아보면서 케냐행 비행기를 탈 준비를 했다.


화장실에서 세안을 마치고 건조해서 당기는 얼굴에 면세점의 명품화장품 샘플들로 보습을 마무리 했다. 내 얼굴이 간만에 명품 화장품으로 호강이다.


예전에, 미국배낭여행을 할 때는 밤새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아침에 그레이하운드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화장실에서 씻고 여행을 시작하던 하루가 오버랩된다.

버스정류장에서 씼었어도 가오(일명 후까시?)가 있었던지 향수를 칙칙 뿌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혼자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아침이 상쾌하면서도 외로웠는데, 엄마와 함께하는 공항에서의 이 시간은 꼭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떠난 것 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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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도착했다.

케냐 항공으로 이동하자 슬슬 아프리카 특유의 모습과 향기가 느껴졌다.

현지인들의 곱슬한 머리카락과 까만 피부가 참 잘 어울렸다.


진짜 아프리카가 가까워지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특히 케냐 항공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는 아프리카 특유의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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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티너!

우리의 아프리카 첫 친구이다.

브룬디에 사는 오거스티너는 크리스천으로 한국의 한동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고향인 브룬디로 가서 결혼 계획이 있었다.

한국말을 하는 아프리카 친구라니 정말 어썸한 일이다.


가는 내내 한국에서의 일상도 학교에서의 다양한 집회와 모임에 대한 대화도 흥미로웠다.

아프리카행 비행기에서 한국말을 하는 친구와의 대화라니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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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는 이야기하다 잠이 들었고 새벽 4시에 기내식이 나왔다.

고단백 피쉬요리였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한그릇을 뚝딱했다.

음식이 안 맞을까 걱정했는데 이건 무슨… 역시나 걱정은 그냥 걱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는 후각에 예민하지 않아서 외국 특유의 냄새에 민감하지 않았다.

젊을 때 축농증으로 고생을 하시며 수술을 제대로 받았어야 했는데 어려운 형편에 쉽지 않아서 임시방편으로 약국에서 구입해서 사용한 약이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축농증은 사라졌지만 후각은 잃으셨다.

맛은 느낄 수 있지만 냄새는 맡지 못하신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잃은 감각이라 더 불편하고 힘드셨을 텐데 엄마는 이 일로 불평불만 한번을 내 앞에서 해본적이 없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탓하지도, 수많은 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장녀의 삶을 고달파 하신 적도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는 나를 되돌아본다. 일상의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로 일상을 다시 돌아보는 시점에서 일상의 매일이 감사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전에 몰랐을 감사함이다.


불만은 있을 수 있지만 불평으로 삶의 많은 시간들을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엄마를 통해서 내 삶을 다시 한번 반추해본다.


엄마랑 비행기에서 수다를 떨다 보니, 엄마가 우리 모녀가 갈수록 더 잘 맞는 것 같은데? 하고 말씀하신다.

예전엔 뭐가 안 맞았어? 하고 엄마에게 물으니 대답을 우물쭈물하신다.

그러기도 그럴 것이 고집은 엄청 세고, 개성은 강하고, 자기 주장도 명확해서 자녀로서 순종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딸이라고는 하나 애교가 있거나 사근사근함과는 거리가 먼 딸이었다. 맞고 말고 할 게 없었을 것 같다.


지인분들에게 아들 셋을 키운다하셨던 엄마의 심정이 이제는 좀 이해가 간다.

나라는 아이가 엄마에게 버거웠을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내 딸을 키우면서도 버겁다 느끼는 것처럼…ㅎㅎㅎ

그래도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하신 것은 엄마나 나에게 실날 같은 믿음이다.


나도 나이를 먹고, 가족이 생기고, 사회 속에서 적응하면서 그리고 아이가 자라서 여자가 되고 이제는 엄마가 되고 보니 우리의 “죽”은 더욱 척척 맞게 된 것 같다. 지나보니 엄마에게 딸 키우는 재미를 충분히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행기에서 엄마의 부은 손을 꼭 잡아본다.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엄마의 손에서 느껴진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방황하는 딸을 항상 지지해 주시던 나의 엄마, 막상 자신이 하고싶은 일은 항상 접어 두셨던 엄마의 모습이 지나간다.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선잠이 들었다.

나지막이 들리는 목소리.

엄마는 못 해 본 게 많은데 너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겠다.
그리고 넌 꼭 그 일들을 했으면 좋겠어.


잠결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아프리카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어릴 적에, 막내였던 나에게 엄마와의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엄마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렇게도 함께 하고 싶은 그녀와의 아프리카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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