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투어 예약을 하러 갔다. 미리 알아본 정보로는 숙소에서 바로 신청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투어가 있었다.
일정을 미리 세팅할 수 없어서 현장에서 바로 예약을 받았다. 엄마랑 내가 가고 싶었던 것은 바로 드라켄즈버그 트래킹 투어코스다. 그러나 우리의 일정에 맞지 않았다.
매일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일정 인원이 모여야만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레소토 투어를 신청했다.
레소토!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 레소토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시맨의 벽화를 볼 수 있는 투어이기도 했다.
오!!! 드디어 진정한 아프리카의 여정이 시작되는 건가? 마음이 두근거렸다.
다음날 아침 7시 30분에, 투어를 떠나는 사람들은 로비로 집합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우리는 모임 장소에 나가 있었다.
엄마도 투어는 처음인지라 마음이 들뜨신 것 같다. 미리 로비에 도착해서 주변 경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출발 약속시간인 30분이 지나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다. 아프리카 타임인가? 40분쯤 지나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각 개인별로 런치박스를 받았고, 각자 자기의 백 팩에 집어넣고 출발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하니 궁금증이 든다. 나라가 작다고 사람들이 작은 건 아니지만 느낌은 꼭 걸리버가 소인국을 방문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있는 곳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기에 이곳에서 레소토를 가기 위해서는 여권이 꼭 필요했다. 일찍 나온 덕분에 운전석의 옆자리, 가장 뷰가 좋은 곳에 자리를 차지했다. 풍채가 넉넉하고 푸짐한 운전기사님과 레소토 투어 가이드 sim과 함께 출발했다.
가는 곳곳마다 장관이 펼쳐졌다. 어제 오후에 숙소를 구경하다 “자연마저 야생적”이라는 엄마 말이 떠올랐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간에 보는 풍광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나무에서 동물적 감각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아프리카에 왔음을 실감하며,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듯했다.
레소토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지나 비포장 도로를 먼지 속을 가로지르며 달렸다. 국경에 도착해서 여권 심사하고 레소토로 들어갔다. 독특하게도 경계지역에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레소토 시민들을 보았다. 우리처럼 까다롭지 않게 그들은 국경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들어간 레소토의 첫 여행지는 바로 학교였다. 그러나 아프리카라 그런가?? 투어 일정을 만들어 놓았는 데 막상 학교는 홀리데이라고 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학교생활을 볼 수 있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에게 홀리데이라고 말하기엔 괜히 미안했다. 학교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을 만나고 눈인사도 하고, 함께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나름 아프리카의 일상에 들어온 듯하여 신선했다.
다음 코스인 부시맨의 벽화를 보기 위해서 돌산을 오르는 트래킹을 떠났다. 내가 가기에도 너무 힘들고 벅찼다. 나이 든 엄마가 가기엔 더욱 쉽지 않은 길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부시맨 벽화를 보는 게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엄마의 얼굴을 봤는데 이미 엄마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산에 가면 추울 까 봐 입었던 옷들은 돌산을 오르는 내내 짐이 되었다.
할 수 있는 투어가 이거뿐이라 아쉬운 마음에 신청했는데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엄마의 눈치를 내내 살피게 되었다. 겨우겨우 부시맨 벽화를 찾아 올라갔다. 높고도 힘든 곳에 자리 잡은 벽화를 보고 기운이 다 빠졌다. 돌 위에서 둘러앉아 런치박스를 먹으며 SIM의 길고 지루한 설명이 이어졌다.
발음도 듣기 어려웠고 너무 지루한 설명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나도 이런데 엄마는 얼마나 더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도 아마 지금 상황에서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투어를 따라갔다.
아…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명 베스트 뷰를 보기 위해서 더 높은 돌산 바위로 우리는 올라갔다. 결국 올라가다 말고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 00아!!! 내가 65세에 이런 험한 돌 바위산을 올라가야 하니? 너 투어 내용은 제대로 확인한 거야? “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딸이 제대로 된 내용을 확인하고 이 투어를 왔는지 묻고 싶었겠지만 나도 직접 이용해본 걸 선택하는 게 아닌 이상, 후기와 설명만 가지고 선택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눈치는 눈치대로 보고, 와… 이거 진짜 엄마랑 여행 다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힘들지만 찍소리 못하는 내 상황도 답답했다.
더구나 나머지 일정 역시도 나의 주도하여 진행될 텐데 앞으로 40일간의 여행이 너무 괴로워지는 건 아닐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엔 레소토 부족을 만나러 갔다.
아…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레소토 전통 가옥에 우리를 모두 몰아넣고 부족장 같은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근데 집이 움막집처럼 되어 있어서 엄청 어둡고 답답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그 비좁은 공간에 넣어 놓고 춤을 추는데 먼지와 냄새와 답답함의 쓰리콤보 펀치가 날아온다.
이번엔 집에서 만든 BEER를 시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맛은 막걸리 느낌이 난다. 그러나 위생상태는 뒤로 자빠질 지경이다.
또 그들의 전통 방식으로 요리한 BEEF 찜을 내왔는데 (맛은 자장 고기와 흡사) 많이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결국 우리의 가이드 SIM이 폭풍 흡입했다.
이제 좀 투어의 끝을 보이나 하는 데 결정타는 바로 이거였다. 일명 그 마을의 메디테이션 주술사였다.
그분의 길고 긴 연설이 답답한 움막에서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언어와 문장은 공중분해되어 날아가고 나는 심지어 중간에 졸음이 몰려왔다. 멀미가 나서 사진도 찍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엄마는 참다못해 밖으로 나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며 잔소리를 하셨다. 사실 엄마가 불평불만이 많은 스타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었던 듯하다.
아마도 엄마의 기대가 더 높았던 탓이었을 것이다. 이젠 투어에 대한 기대를 거의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레소토 일반 가정집을 방문해서 일명 밥처럼 생긴 떡과 김치 종류의 나물반찬을 손으로 먹는 걸로 우리의 레소토 투어 일정을 마무리했다.
지나고 보니 나름대로 레소토 나라의 주민들의 생활상을 깊숙이(?) 알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투어 일정이었다. 다만 그날의 우리가 기대했던 투어 내용이 아니라 그 기대치에 반한 우리의 반발이 더욱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투어를 끝내고 버스로 가는 길이 나는 더없이 가벼웠다.
반면에 엄마의 불편함과 나의 불편함이 공존했다.
레소토 투어는 그렇게 우리에게 본격적인 아프리카 여행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