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끝 마천루 정수리에
밧줄을 꽁꽁 묶었다
동아줄 토해내며 낙하하는 몸으로
건물의 창을 닦으며 절벽으로 내려간다
빌딩들 눈부시게 플래시를 터트려도
허공길 유리블록 사뿐히 밟으면서
수족관 물고기처럼
살랑살랑 물호수를 흔들며 헤엄친다
뙤약볕 빨아먹은 유리성이 열을 뿜고
빌딩허리를 돌아온 왜바람이
목숨줄을 무섭게 흔들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내려간다
아이스링크에 정빙기같이
생채기를 지운다
유리벽에 갇힌 사람들에게
푸른 하늘도 열어주고
유리창에 비치는 현수막의 사연도
살포시 보듬어 닦는다
의지할 곳도 없는 허공에서
작업복 물에 젖어 파스내음 진동하고
피로가 줄끝에서 경적처럼 돋아나지만
또다시 하늘에 밧줄을 묶는다
땀 흘린 줄길이만큼 도시는 맑아지고
유리 벽에 그려진 풍경화도
끼끗해지니까
-『부산일보』(2019)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221432498589
▶ 거미 / 권영하 (시 해설 및 낭송) - https://www.youtube.com/watch?v=TlXjBlYDJ2U
▶ 거미 / 권영하 (시 낭송) - https://www.youtube.com/watch?v=Y8csfGA6f6c
<「거미」詩作 노트 >
「거미」는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유리창 청소부의 고마움과 애환을 시로 썼는데, 운이 좋아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이 시를 읽고 유리창 청소부들도 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담인데 끝에 보면 ‘끼끗해지니까’란 말이 있다. ‘끼끗하다’는 ‘생기 있게 깨끗하다’는 표준어인데, 오타가 났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분명 몇 번을 확인하고 ‘끼끗해지니까’로 원고를 보냈는데 ‘깨끗해지니까’로 수정되어왔다. 지금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시를 보면 ‘깨끗해지니까’로 된 것이 많다.
‘끼끗해지니까’ 와 ‘깨끗해지니까’는 어감과 느낌에서 차이가 난다. 「거미」에서는 ‘끼끗해지니까’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