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오버 / 권영하

by 권영하













스필오버 / 권영하


어느 한 곳에서 투망이 쫘악 펼쳐졌다

그 꼭짓점이 박쥐라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그랬다, DNA를 추적해 보니

놈들은 동물의 몸에 살고 있다가

두꺼운 장벽을 넘어온 것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서 굳게 닫힌 문이 열린 것은 아닐까

놈들은 우릴 마구 덮쳐왔다

우릴 통로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놈들은 설계도만 가지고 와서

우리 몸을 공장으로 자신들을 대량 복제했다

비말도 그들의 증식 수단이었다

우린 놈들을 이어주는 매듭이 되었고

놈들은 모습을 조금씩 바꾸면서 이동했다

도시는 심장이 멈추었고 공장은 시들어갔다 그렇게 시간과 마음은 얼어붙었지만

우린 그물코를 한 가닥씩 풀어나갔다

벼리를 당겨 그물을 올려볼 수는 없지만

그물의 형체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을 것이다

보이진 않지만

끈 떨어진 그물추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모랫바닥에 묻혀

또 다른 숙주를 찾고 있을 것이다


*스필오버 : 종간 감염



- 시 전문 계간지 『사이펀』 (2025)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22411816197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정답이 없을 때... / 권영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