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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의 다온 Aug 13. 2023

성인 ADHD 약물치료 1개월 경과

ADHD도 ‘갓생’을 살 수 있을까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내가 처방받은 약은 '콘서타정(메틸페니데이트)'이다. 첫 주에는 가장 적은 용량으로 시작해서 매주 조금씩 증량하다가 4주 차부터는 잠시 고정된 상태이다. 4주 차부터는 진료도 2주에 한 번씩 받게 되었다.


첫 진료 때 약물이 치료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체감되는 효과가 정말 크다. 물론 사람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고, 본인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참고만 하길 바란다. 의사 선생님께 복용하며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약 효과가 맞다는 답변을 받은 부분만 정리해 보았다.


1. 식욕, 정확히는 불필요한 식탐이 줄었다.


나는 원체 몸집도 위도 작아서 먹는 양도 적은 편이다. 하지만 유독 무언가를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다. 그날 당기는 음식이 있으면 어떻게든 먹어야 하고, 배가 부른데도 야식을 찾는 습관이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 마라탕, 엽떡, 닭발 등 자극적인 음식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서부터 끼니 외에 먹고 싶은 욕구도 잘 느끼지 않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빈도가 현저하게 줄었다.

 

뿐만 아니라 술도 잘 당기지 않는다. 원래 집에서도 일주일에 2~3번 이상 맥주를 마시곤 했는데, 지난 한 달간은 약속이 있을 때 외에 술을 마신 횟수가 한 손에 꼽힌다. 가끔 마시더라도 확실히 자제력이 생긴 게 느껴진다. 세계맥주 네 캔을 참지 못하고 다 마셔버리던 내가 한 캔으로 멈출 수 있게 된 것이다.


2. 집중력의 지속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약을 먹는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갓생'을 사는 건 아니다. 갓생에는 체력과 습관 형성 등 필요한 요건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집중이 잘 되고, 꽤 오래 지속한다. 전에는 별별 잡생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자주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머릿속을 비워버리는 중독적 행위, 이를테면 콘텐츠 소비나 술 등으로의 회피를 반복했던 것이다.


이는 도파민 중독과도 관련이 있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운동 기능과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쉽게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도파민을 분비시킬 자극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ADHD 약인 메틸페니데이트는 도파민의 작용을 강화하는 성분이다. 이처럼 중독적 행위에 빠지는 빈도가 줄고, 일상의 집행 기능이 높아진 데에는 약물의 도움이 주요하다.


3. 외출 시 물건을 빠뜨리는 실수가 줄었다.


사실 아직도 해야 할 일을 깜빡하거나, 외출할 때 챙겨야 할 물건을 빠뜨릴 때가 있다. 하지만 전에는 거의 매일 집에 다시 들어왔다 나가곤 했는데, 최근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줄었다. 가히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 또한 결국 도파민의 작용으로 인지 기능이 높아진 덕분이다.




그러나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ADHD가 다 나은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것이 벅차다. 또한 ADHD 약은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 증상을 조절할 뿐 근본적인 치료제로 보긴 어렵다. 1~2개월 약을 먹는다고 금방 낫는 건 아닌 것이다.


특히 뇌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아동기에 조기 개입한다면 완치될 가능성이 높지만, 성인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ADHD의 뇌를 가지지 않은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약의 도움을 받아 행동과 습관을 변화시켜서, 약을 중단하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치료의 핵심이다.


사실 조금은 힘이 빠지는 이야기였다. 결국 약 없이도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나아지기까지 얼마 큼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충동적인 기질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른다. 그래도 별 수 있나. 그렇게라도 개선하려면 꾸준히 치료에 임하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 오늘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약을 먹고, 글을 쓰고 있다.


ADHD를 끌어안은 채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온 것 같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이미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당장 갓생을 살아도 모자랄 판에 약을 먹어야만 겨우 한 두 가지 일을 집중해서 처리하고, 실수를 조금 덜한 정도이니까.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과연 이런 나도 각종 중독으로부터 빠져나와 ‘일상의 루틴을 지키며 알차고 성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ADHD도 갓생이라는 게 가능할까? 약물치료를 진행하는 첫 1개월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치료에 임해야 할지, 어떤 방향을 목표로 ADHD를 다뤄야 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질문이 곧 고민의 결론이다. ADHD를 가지고도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고, 동시에 나만의 답을 만들어나가기로 한 것이다.


이 천덕꾸러기 같은 ADHD와 건강하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치료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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