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을 하우스 매니저님께
조금 더 일찍 썼다면 좋았을 이 편지를, 이미 그 자리를 떠나 사라져 버린 수신자에게, 아무도 읽지 않을 자리에 쓴다는 점은 유감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써 봅니다.
기억하실까요? 그때 저는 극장이라면 환장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무대는, 똑같은 암전의 순간마다 매번 다른 기대감에 떨게 하는 곳, 조명이 켜지면 환상을 구현한 이상적 공간, 들어가 볼 수 없으나 바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다른 세계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조명기가 달린 배튼이 내려오면 그것대로, 리허설 중 대도구와 세트가 제멋대로 놓이면 또 그것대로 근사했습니다. 마스킹 테이프 자국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이 가면 속까지 뒤집어 삼킨 기분으로, 3층 객석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오르골 속 장면 같아서, 빠짐없이 다 좋았습니다.
그래서 객석 안내원에 지원했던 것입니다. 어떻게든 거기 있고 싶었습니다. 전공도 무관하고 예술 비슷한 경력 하나 없는 제가 내세울만한 건 참으로 초라했어요. 서울에서 가장 큰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이력을 두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고 썼더랬지요. 면접을 보고 매니저님이 연락을 주셨을 때,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을 때, 그때 저는 정말 다 진심이었습니다.
매일 오후 극장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웠는지요. 공연을 마친 후 동료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공연 이야기를 하는 건 또 어떻고요.
물론, 그 겨울 저녁 이후로는,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지만요.
그는 웃는 얼굴이 선해 보이는, 평범한 외모였어요. 키가 커서 눈길이 갔지요. 큰 키에 회색빛이 도는 싱글 코트를 입고 목에는 스카프 같은 것을 동여매고 있었어요. 눈빛이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꼭 닮은 노년의 여성과 손을 잡고 서로 마주 보며 싱긋 웃는데, 아들이라면 참 좋은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12월의 첫날이었습니다. 평일 저녁이지만 객석은 꽤 많이 채워졌습니다. 인기가 좋은 작품이었어요. 음악도 근사해서, 저희 안내원들끼리도 흥얼거렸습니다. 특히 1막 중간쯤 여자 배우가 부르는 솔로곡은 휴게실에서 자주 들렸어요. 수정언니가 정말 비슷하게 따라 부르곤 했으니까요.
평소와 다름없이 하우스 오픈, 공연 시작, 그리고 그 노래가 시작되었어요. 하지만 솔로곡이 다 끝나기도 전이 객석 중간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객석에서 사진 촬영을 하거나 통화를 하는 관객들이 보이면 조용히 다가가 그것을 저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많지는 않지만 주기적으로 있잖아요. 저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소란이 생기는 경우, 인터미션 동안 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항의도 들어오곤 하잖아요.
그 날, 두 명의 관객이 고개를 뒤로 돌려 힐끔대거나 뭐라고 조용히 말을 하기도 하고, 뒤에 앉은 사람 하나는 고개를 조아리는데, 곧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다른 관객들에게도 방해가 되면 안 되니, 일단 주시하고 있었어요. 인터미션이 시작되자마자 그 앞자리에 앉은 두 명의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뒷자리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한 뒤 로비로 나가더군요. 뒤에 앉은 사람이 누군가, 하고 보니, 아까 봤던 그였습니다.
밖으로 나간 두 명의 관객은, 높은 확률로 매니저님을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로비로 나갔을 때는 한참 대화중이셨고요. 이 공연을 너무나 기대하고 온 관객, 아주 먼 곳에서 한 시간 반을 지하철로 온 관객, 특별한 날이라서 돈을 더 내고 좋은 자리를 구매한 관객이었습니다. 이 공연에 필요한 좋은 관객분들이셨고, 저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덩달아 속이 상했어요.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 가운데 짧은 머리를 하고 상하의 모두 까만색으로 깔끔하게 입은 분께서 마지막에 덧붙이셨지요.
ㅡ 저런 사람한테 표를 팔면 어쩌냐. 이렇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한테.
그와 동행인이 그 모습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대화도 혹시 들었을까요? 저는 심장이 피에 젖은 솜처럼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저의 장점이라고 이력서에 썼는데, 그 날 저의 입꼬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매니저님께서는 수정 언니에게 민원을 제기한 관객분들의 안내를 부탁하신 후, 그와 그 동행인을 맞이했습니다.
ㅡ 죄송하지만 혹시 자리를 옮겨줄 수 있으실까요?
그 어머니가 그렇게 먼저 물었습니다.
ㅡ 저희 아들이 폐를 끼쳤어요.
제가 그때 매니저님이 시키는 대로 티켓부스에 다녀왔습니다. 예비석 자리 번호가 찍힌 새로운 표를 두 장 받아서 그 두 사람에게 전하자, 그들은 갖고 있던 1층 R석 B구역 12열 7번과 8번 표를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50% 장애인 할인-R석 40,000원. 티켓 두 장.
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고,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로비 곳곳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층 맨 뒤쪽에 남겨둔 예비석에서 2막을 보기로 했습니다. 잘 마무리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2막이 시작되었을 때, 그 두 사람은 객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1층 출입구 앞에 서서, 그 빈자리를, 오래오래 보았습니다.
환하게 빛나던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도 3개월 정도 더 일했습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종종 슬퍼졌습니다. 저보다 빨리, 매니저님도 퇴사했잖아요. 저는 그게 슬픔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너무 조용히 사라지시는 바람에, 그리고 저 또한 바로 며칠 뒤에 도망치듯 극장을 떠나는 바람에, 짐작만으로 남았지만요.
다만 얼마 후 부매니저님이 하우스 매니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정 언니의 전화를 받고 축하하는 자리에 갔어요. 어쩐지 그렇게라도 가보지 않으면, 종종 찾아오는 슬픔의 출처를 물을 곳이 없어질 것 같았어요.
우리는 오랜만에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하우스팀은 늘 차분하고 친절하고, 또 공연 내내 침묵하고 있다 보니 틈만 나면 더욱 시끄럽게 떠들게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희끼리 공유하는 정서가 있잖아요. 공연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연과 무관한 것도 아닌 하우스팀은 어쩐지 늘 사이에 낀 존재라는 느낌. 그 애매함을 공유하면서 더욱 돈독해지고 시끄러워지곤 합니다. 그렇게 맥주 몇 잔에 모두 새빨개진 얼굴로 구시렁대었어요.
ㅡ 극장은 끝내 망해버릴 거야,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쫓아내잖아.
깔깔대다가, 울다가, 화를 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다른 방식으로 극장의 종말을 상상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극장 앞 광장에 앉아 있던 노숙자를 경찰에 신고했던 날, 박수 타이밍이 아닌데 자꾸 박수를 치다가 눈초리를 받던 관객을 쫓아낸 일, 유모차에 태운 아기를 달래며 로비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젊은 여자, 그리고 그 날 그와 그의 엄마가 객석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일까지 말입니다.
매니저님은 괜찮으신가요? 저는 슬픔의 출처를 확인하고도 계속 슬픕니다. 극장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망할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타이밍이 좋은 핑계였을 뿐입니다. 저는 야속한 극장을 멀리서 보는 일 만으로도 이미 슬퍼집니다.
어떤 관객은 관객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관객 개발'이나 '관객 발굴' 같은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어쩌다보니 저는 지금 SF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도 허락되는 객석을 상상하다 보면, 조금 먼 미래로 가게 됩니다.
저희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안부를 전해주세요.
2021년 1월 23일 도경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