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중앙에 앉아 보는 것처럼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앵글이 기본. 내려다보는 것 같은 다소 높은 각도도, 측면에서 바라본 각도도 있었다. 어떤 카메라는 무대 위에 있는 듯 줌을 당겼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처럼 화려한 카메라 워크는 아니지만, 객석에 앉아 있다고 생각해보면 여러 명이 되어 보는 경험이다. 카메라는 객석을 비추지 않았다. 여기저기 분주하게 자기 일을 하는 스태프들과 카메라가 객석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은 모습이 머릿속에만 잠시 그려졌다.
나는 거실 소파에 등을 대고 앉아, 낮은 스툴 위에 올려둔 아이패드 모니터와 그 옆에 앉아 떡뻥을 먹는 7개월 아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이가 아이패드로 손을 뻗으면 잠깐 소파 위로 극장의 자리를 옮겼다. 영상 한쪽에는 사람들의 짧은 댓글들이 등장했다가 위로 위로 밀려 사라졌다가 했다.
실제로 보면 더 대박 일 듯.
빨리 코로나가 없어지면 좋겠어요.
와 최고네. 다시 극장에 가고 싶다
이걸 이렇게 봐야 하다니ㅠㅠ 슬퍼요.
상찬과 아쉬움을 오가는 말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들은 극장을 그리워했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그런가? 나는 아닌 것 같다. 작품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무작정 극장이 그립지는 않다. 나는 어째서 그들의 그리움의 반대편에 섰나. 곰곰이 생각한다.
초유의 전염병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런 영상 중계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함께 존재하는 시공간이 곧 공연이므로. 현존의 감각을 빼면 시체라고 했다. 나는 그 시체에 대해서 생각한다.
눈앞에서 살아 있는 배우의 무대를 보는 것, 그 와중에 무대와 객석 사이를 채우는 감각은 공연예술만의 특유한 지점을 키웠다. 극장 밖으로, 그러니까 살롱으로, 광장으로, 갤러리로 연극이 옮겨가더라도 어떤 점에서 다르지 않다. 공연의 영상화는 기록이나 기념을 위한 것 이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아니다.
공연이 영상이 되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영국 국립극장 네셔널 시어터에서 제작한 연극 실황 생중계 프로젝트인 NT Live.
뉴스 인터뷰에서 국립극장 담당자는 “촬영할 때는 가장 좋은 컷을 잡아내고 있으므로 시야가 안 좋은 좌석에서 보시는 것보다 NT Live 스크린으로 보시는 것이 놓치는 것 없이 시야에 가리는 것 없이 보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야에 가릴 것 없는 시체.
10년이 넘은 NT Live는 본래 극장에 올 수 없는 관객들이 공연 실황을 즐길 수 있도록 위성을 통해 전 세계 영화관으로 실시간 생중계한다. 국내에서는 '국립극장'의 '레퍼토리 시즌 라인업'에 포함되어 '극장'에서 상영된다.(기사)
영국에서의 영화관과 한국에서의 극장. 극장에 가서 봐야하는 시체.
나는 극장에서 거절당한 유모차를 끌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던 날을 떠올린다. 나는 휠체어석에 유모차를 두고 잠든 아이를 살피며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는 극장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특별히, 관객이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계산해야 했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다가, 좋은 자리의 표를 사기 위해 예매 경쟁하다가, 아이를 맡길 곳을 찾아 전화를 걸다가, 시간당 1만 원씩 적어도 6만 원 정도인 돌봄 비용과 푯값을 생각했다. 돌봄 선생님이 오자마자 낯을 가리느라 울고 또 우는 아이를 두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공연이 대체 뭐라고, 라고 혼잣말을 했다. 돈과 시간과 아이까지 연결해 본전을 챙기느라 기대치는 한없이 높아지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로 시작하는 나쁜 후기를 말하게 되는 일이 두렵다. 실제로 몇 번이나 그랬던 것을 기억해낸다. 영상 중계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것을 못 봤을 것이다. 포스터만 겨우 기억했을 것이다. 리뷰만 겨우 검색해봤을 것이다.
작은 모니터를 통과해야 겨우 만날 수 있게 된 무대가, 나는 반가웠다. 그러니까 그 시체를 찬찬히, 반갑게 보았다.
그즈음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는
작은그림하나가떠돌았다.
네모난 컴퓨터 모니터 안에고풍스러운 붉은 막이 쳐있다. 아마도 무대일 것이다. 그 아래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글자가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다. 파이프란 단어를 극장으로 바꾼 문장.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