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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Jul 15. 2018

신혼여행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

이정도면 정말 아주 짧게 풀어낸 이야기.....


   의식의 흐름 같지만 나름 결혼을 준비했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쓰고 있는, 이 시리즈의 순서에 따르면 이번엔 신혼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결혼식을 어디서 할지 정하고 나서 그 다음이 왜 때문에 신혼여행...,,? 이라고 묻는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굳이 대답을 찾자면, 그래도 그나마 그 와중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신혼여행!

   우리에겐 다행히도(?)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없었다. 뭐 어떻게든 잘 하겠지. 그것 말고 중요한 건 바로 신혼여행. 어딜 어떻게 가도 즐겁고 행복할 테지만 그래도 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다녀오고 싶었다. 분명 너무너무 좋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우선 서로가 다녀온 지역을 비교해보았다. 그런데 그게. 하.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 다 해외를 많이 다닌 편도 아니면서 굉장히 어긋나게 갔다 온 거였다. 예를 들어 한 명이 미국 서부를 다녀왔다면 다른 한 명은 미국 동부를 다녀오고 막 이런 식. 둘 다 안 가본 곳 중에 서로 가고 싶었던 곳을 찾자니, 아프리카와 남미가 나오네?

- 언젠가 만나고 말거야 알파카!


   가고 싶었다. 남미도 아프리카도. 특히 페루의 잉카 문명을 보고 싶었다. 둘 다 그랬다. 어디 단 한 군데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안데스 산맥으로 가고 싶다고. 그래서 찾아보니 비행기가 30여시간. 자신이 없었다. 결혼식을 해보진 않았지만 굉장히 피곤하고 그럴 것 같은데 우리가 그 비행시간을 참아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열흘 정도의 시간 동안 왕복 60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내는 게 맞을까. 뭐 이런 고민.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였다. 꽤 매력적인 미지의 세계인데 일단 멀기도 멀고. 흠. 아침에 일어나서 조식을 먹는데 얼룩말이 근처에 와서 응가.......를 과연 참을 수 있을까. 뭐, 그런 거 구경하러 가는 거지만. 그렇긴 하지만.

- 바르셀로나에서 야경. 그때의 기억.


   그래서 결정한 곳이, 두구두구. 스페인이었다. 마요르카와 바르셀로나로. 휴양 절반 관광 절반의 코스! 사실, 나는 대학생 때 바르셀로나에 가보았지만 다시 가도 좋을 것 같아서. 그때의 기억으로는 일반적인 유럽과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이슬람 문화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어서 그런지 건축의 느낌도 달랐고. 배우자님이 마침 축구도 좋아하시니까, 10월에 가면 경기도 볼 수 있고! 마요르카는 독일, 영국 사람이 좋아하는 유럽의 휴양지라고도 하니 솔깃했고!

: 마요르카 팔마. 기대보다 마요르카는 정말 좋았다.


   뭐, 이후의 과정은 그러니까, 순탄치 않았다. 뭔가 그게 또 뭐든 너무 순조롭게 준비가 되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가장 큰 걸림돌이 축구. 축구. 축구!!! 이놈의 축구가 뭐라고. (이 시리즈의 글이 지체된 것도 월드컵 때문입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스페인의 축구 리그는 일단 7월에 일정이 나오는데 우리가 비행기를 예약한건 2월........ 8박 10일 동안 마요르카랑 바르셀로나에 있는 뭐 한 경기는 걸리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 라리가는 일정 변동이 잦고 (특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레일이나 바르셀로나요) 그게 하루 이틀 밀리는 게 아니라 홈경기와 어웨이 경기 순서가 달라지는 정도. 그리하여 7월에 일정을 확인하니 주중도 주말도 바르셀로나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게 빌바오..........오. 오. 오오오오~~ 필승 코리아~~~~ 흑흑.


   그건 약과였다. 비행기를 한 번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하는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축구 경기 보기는 말이다. 마요르카 먼저, 바르셀로나가 나중이었는데 마요르카 숙소가 갑자기! 신혼여행 출발하기 1달 전, 예약을 진행한 프리비아에서 연락이 왔다. 마요르카에 예약한 숙소에서 그 기간에 영화 촬영을 하니 숙박을 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는 거다. 뭐? 지금 한 달 전이라고! 그래서 대안을 알려달라 하니 더 안 좋고 안 좋은 숙소를. 아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한 달 전에 갑자기 못간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더 좋지 않은 숙소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라고? 심지어 거기서 제안한 호텔룸이 트윈이었다. 우리가 황혼여행도 아니고 좀 너무 하잖아! 그래서 시작된 싸움. 이게 말이 되냐. 너 같으면 이렇게 신혼여행을 가겠냐. 트윈룸? 장난치냐. 보상을 해주진 못할망정 좋지 않은 숙소로 보낸다는 게 말이 되냐. 등등 지루하고 지루하며 지루할 수밖에 없는 싸움. 결혼식은 한 달 남았지 마요르카는 숙소가 난리지 멘탈이 붕괴되어 가는 하루하루.

: 그땐 여기에서 이렇게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볼 줄 알았는데.

   그래서 결론은, 좋았다. 신혼여행에 관한 이야기만 따로 길고 길게 풀어서 쓰고 싶을 만큼 좋았다. (듣고 싶지 않다고요? 그래도 쓰고 싶을 거 같은데...) 정말 진짜 좋았다. 바르셀로나 침대에서 아 지금도 정말 시옷비읍지읒니은 좋은데 한국에 돌아가면 정말 진짜 시옷비읍지읒니은 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고 생각하겠지 라고, 말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진짜 정말 지읒니은시옷비읍미쳐버릴정도로 좋았다. 아. 지금 다시 생각해도 좋았다. 왜 눈에 습기가.... 여러분, 신혼여행 정말 좋습니다. 두 번 가도 좋을 정....가 아니라. 하여튼 그만큼 좋을 겁니다. 무척이나.

: 여러분 신혼여행 좋아요. 꼭 좋은 데로 가세요. 두 번 세 번 가세요...는 아닌가?


   이렇게 좋다고 천번 만번 말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동생의 말에 따르면 그렇게나 싸운다고 한다. 입국장에 나오면서 꼭 그렇게 커플티를 입고 싸운단다. 쌍욕에 큰소리도 불사하고 심지어 상대방 캐리어를 날라차기로 차면서까지도 싸운단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지긋지긋하지 않은가. 그렇게 결혼을 하고 왜 시작하자마자 싸우는 것일까. 좋기만 해도 모자란 시간을 보내고 와서.

   그러니까, 결혼은 쉬운 게 아닌 거다. 첫발 내딛는 그 순간부터.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도.



20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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