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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Jun 12. 2018

‘어디’가 당신의 결혼식을 좌우한다

: 어디부터 정하는 순서가 뭔가 이상한 건 기분 탓이겠지.


   결혼식을 어디에서 할지부터였다. 우리의 시작은. 믿을 순 없겠지만 우리의 결혼을 시간의 흐름으로 쓰고 있는 거라서, 이번엔 결혼식장 이야기를 할 차례다. 의식의 흐름 같지만 그것도 기분 탓일 거다. ‘어디’부터 정하는 이 순서가 뭔가 이상한 게 기분 탓인 것처럼 느껴지듯이. 결혼, 결혼식 준비를 하다보면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란 것과 대치되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나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상견례도 하고 그래서 날짜도 좀 정확히 정하고 그래야 장소도 좀 확실하게 잡고 그래야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싶었는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받은 첫 번째 안내 책자. 그 뒤로 받은 안내, 계약, 보증이 너무 많아서. 휴.



   2017년 1월 1일 일요일, 우리는 여의도 글래드 호텔로 갔다. 언제할지 어떻게 할지의 대략적인 얼개가 나왔기 때문에 장소부터 정하는 게 우선이라서다.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그렇다. 결혼식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야, 10월에 한다고? 너가 원하는 데로 하려면 1년 전에는 잡아야해. 아니, 결혼 준비는 6개월 정도 하라며 결혼식장은 1년 전부터 잡는 거야? 너가 돌아다녀봐라. 그래, 그래서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새해를 맞이해서. 올해는 우리가 결혼을 할 해니까.

   보기보다, 혹은 보기에도 치밀한 성격을 가진 나란 남자는 움직이기 전에 사전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가 생각한 몇 가지의 조건에 부합하는 장소를 찾아, 내는 게 목적이었는데, 근데 이걸 어디서 찾아? 네이버쇼핑처럼 웨딩홀을 검색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나? 그러니까, 정보 자체를 얻어내는 게 일이었다. 레몬테라스, 메이크마이웨딩, 아이웨딩 등을 들어가기 시작한 게 이 즈음이었으려나. 물론, 배우자님이. 내가 자료 조사를 요청하면 배우자님이 찾아내고 다시 내가 취합하는 그런 구조(...)가 굳어진 것도 이 즈음이었을 거다.

   아니, 무슨 여행사야? 뭔놈의 투어가 이렇게 많아. 들어는 봤나 웨딩홀투어. 지역별로 묶어서 몇 군데의 웨딩홀을 도는 걸 뜻한다. 놀라기엔 이르다.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앞으로 수많은 투어를 다녀야하니까. 드레스투어, 예복투어, 뭐 투어 무슨 투어 .... 그래서 이미 여기에서부터 예신, 예랑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고 투어란 투어는 다 거절하고 싶어지는데. 일단, 웨딩홀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을 때 우리가 고려한 조건은 이러했다. 1) 수용인원 300명 내외  2) 교통 및 주차가 편리할 것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오실 거기 때문에) 3) 밥이 맛있을 것 4) 예식 시간이 여유로울 것. 5) 영상을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할 것 6) 공간이 예쁠 것 7) 우리가 생각하는 적정한 규모의 예산.... 아 적고 보니 꽤나 까다로웠구나 우리. 이게 다 작은 결혼식을 실패해서.....

   2번. 교통 및 주차가 편리한 곳을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청담 근처랑은 멀어진다. 둘 중 한명의 집이 서울이 아니라면 특히 양재 근처(터미널, 고속도로 접근성)를 선호하는데, 와 여긴 정말 1월에도 마음에 드는 곳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요즘엔 천안 근처에서 결혼식을 많이 하기도 한단다. 교통 좋은 중간지의 개념이랄까. 용산 근처의 웨딩홀도 그래서 인기가 많다. 3번. 밥이 맛있는 건 정말 중요했다. 결혼식에 다녀오면 사실, 기억에 남는 건 팔할이 식사니까. 그리고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을 때도 그랬지만 맛있는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러나 배우자님의 아버지는 양식을, 빵을 먹으면, 피자 햄버거 그런 거 먹으면 죽는기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라 (....그렇지만 맛있는 치즈케이크는 좋아하셨다) 이것도 좀 고민. 더욱이 결혼식장의 단가 역시 팔할이 식대다. 식사와 음료. 그리고 꽃장식 정도? 4번. 이게 생각보다 중요하다. 주로 주말 장사만 할 수밖에 없는 웨딩홀 대부분은 회전율을 빠르게 가져가려고 한다. 그래서 1시간 혹은 1시간 30분의 텀으로 예식을 진행하고 식사는 대체로 뷔페로 대체하는 거다. 우르르 몰아넣을 수 있으니까. 근데 그렇게 되면, 특히 홀이 여러 개인 결혼식장은 여기가 어디고 저기가 저기며 이 사람이 왜 여기 있고 끝난 사람과 들어가는 사람과 저쪽 사람과 이쪽 사람이 다 엉키는 일이 발생한다. 당연히 주차난은, 필수 옵션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물론, 우리의 고려 대상이 이러했다는 거지 모두 각자의 조건은 각각의 상태에 따라 다르니까. 결국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우선 순위와 포기할 것을 정하면 좀 쉬워진달까. 그리하여 이런 조건에 맞춰 1월 1일에 간 곳이. 와,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말도 안했네.

심플하게. 간단하게. 결혼(식) 어떻게 안 되겠니?


   2017년 1월 20일 토요일, 우리는 글래드 호텔로 다시 갔다. 식장이라고 둘러본 곳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다른 후보군이었던 광화문의 한 곳은 아직 촛불 시위가 한참이었을 때라 가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 딱 20여일 만에 간 글래드 호텔에선, 우리가 생각하는 날짜, 시간이 벌써 예약되었다고 말해줬다. 1월 1일엔 아무 예약도 없었는데! 고민하던 20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부랴부랴 앉은 자리에서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래서 확정. 땅땅땅. 10월 28일. 오후 3시. 식사 시간은 좀 벗어나있었지만 하동에서 올라오는 시간을 고려하면 앞 타임이었던 12시는 너무 이르니까 오히려 잘 되었다 싶었다. 고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우리 진짜 이렇게 결혼하는 거야? 21일이나 28일 즈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날짜도 식장이 잡아주는 거야? 그런 거야?

결혼을 했다. 이렇게 사진을 올리고 나니 글도 곧 끝날 것 같지만 아직 갈길이 구만리.


   ‘어디서’가 언제부터 이렇게 저렇게를 다 정해주는, 이게 뭔가 싶기도 하면서 일단은 정하고 나니 마음은 좀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사실 꽤 무거웠다. 우리는 뭔가 하나를 해결한 거 같으면서도 우리 이제 정말 결혼하는 거야 우왁!! 하면서도 이제부터가 정말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하나 했을 뿐인데 앞으로 더 얼마나 많은 정보와 이야기에 시달려야하는 걸까 답답했다. 까마득하기도 했다. 어디서가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언제는 더욱 더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는. 어떻게에 좀 더 집중하자고. 어떻게 결혼식을 하고, 어떻게 결혼식을 준비할 건지. 어떻게 결혼을 할 건지. 어떻게 살아갈 건지.

   내가 왜 당신과 함께하려고 했는지를 끊임없이 기억하려면, 그게 정답이었으니까.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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