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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May 30. 2018

합의하에 결혼합시다, 우리.

 : 민주주의 사회의 만장일치제 결혼,식


   결혼을 결심한 당신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단계까지 해결했다고 치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지 엄청 너무도 스펙타클한 과정을 거쳤을 테지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럼 결혼이라도 조금 마음대로......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오산이다. 결혼의 첫 단추인 결혼식부터 아주 많이 무척 진짜 크게 박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의견 교환, 토론, 합의, 다수결 뭐 이런 과정이 아주 깔-끔하게(조세호st) 무시되어서다. 설마, 아직도 결혼(식)이 둘만의 아름다운 .... 뭐 그런 거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익히 여러 풍문을 들어 알겠지만 결혼(식)에는 꽤 많은,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들어간다. 근데 그게 민주적 절차보단 수령식 민주주의(가부장 혹은 가모장 원톱 시스템) 또는 큰소리 민주주의에서 만장일치제 느낌으로 흘러흘러흘러가아아아..


- 청첩장 하나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 (노력) 의견이 들어가는지 모른다. 아니, 안다.


  지난해 결혼을 한 김모씨(만 32, PD)의 사례를 들어보면, 그러하다. 그와, 다음을 약속한 그녀에게 결혼식은 막 휘황찬란한 로망이 투영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냥 적당 적당히. 굳이 따지자면 작은 결혼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초대해 함께 같이 축복을 나누고 맛있는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걸로. 인터넷에 작은 결혼식이라고 치면 나오는 100-150명 정도의 작지 않은 결혼식 말고 정말 50-60여명 정도로만. 왜냐하면 김모씨의 누나가 40여명의 하객과 결혼식을 올렸고 그게 썩- 괜찮아보였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없는 해의 5월이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때면 맡아서 하고 있던 영국 축구의 시즌이 끝났을 테니까. 결혼을 약속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며 우리는(....) 그렇게 결혼식을 그려가고 있었다. 찬찬히 차근차근히.


-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 봉투를 받을 때 즈음 모든 게 시작되ㅇ....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처가에 처음 갔을 때부터 박살난다. 일단 5월은, 결혼식에 적합한 계절이 아니었다. 하동에서 농약사를 하시면서 산에 일도 보시는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봄은 너무도 바쁜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방송국놈 최초 농번기로 인해 결혼식이 뒤로 밀리는.... 괜찮았다. 결혼을 한다는 게 중요하지 결혼식이 뭐가 대수라고. 다음은 인원. 그 때 알았다. 그녀의 일가 친척을 다 모시면 그것만으로도 50-60여명이 훌쩍 넘어간다는 걸. 그리하여 인원 조정도 실패. 그리하여 작디 작은 결혼식이 점점 빅이벤트가 되어가는데.
   
   다음 문제인 장소 선정 역시 꽤나 난제였다. 그의 생활 근거지는 서울이었다. 그의 가족 대부분 역시 서울이었다. 그녀 또한 대부분의 친구, 주변 사람이 서울이었다. 근데 뭐가 왜 무엇이 난제냐고? 하객수의 부등호가 “남자 하객 + 남자 가족 하객 + 여자 하객 <<<< 여자 가족 하객”이 되어서다. 다수결로는 3:1인데 숫자상으로는 1이 더 많아버리는 그런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래서 진주 개최와 서울 개최를 두고 저울질....은 결국, 큰소리 민주주의로 수렴하기 마련이다. “나 서울에서 아니면 안 할거야!!!”는 그녀의 일갈. 아니야, 안 하면 안돼........ 만장일치로 서울. 땅땅땅.


- 사이 좋게 결혼 준비하기로 합의한 날이다. 정말 밥먹다 합의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식이 어떻게 되었냐고? 2017년 10월, 서울에서 아주 행복하게 잘 치러졌다. 하객은 대략 400여명. 뭐, 작은 결혼식? 놀라지 마시라. 결혼식 일주일 전엔 하동에서 마을 피로연도 했다. 그곳의 참석인원은 대략 600여명. 50-60여명의 결혼식을 꿈꾸던 그와 그녀는 하객 총합 1000여명의 결혼식을 1주일 간격으로 치르고 난 뒤에야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다. 그땐 정말 인사를 어찌나 많이 했던지 태어나 처음으로, 선거철 정치인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아는 작은 결혼식 하고 싶다고 했던 사람 중에 가장 큰 결혼식을 한 사람이 되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깨지지 않을 예정이다.)


- 결혼식 피로연 한다고 지역 신문에 광고도 했.. 물론, 우리(가족)의 의지가 아니라 아시는 분이.......아. 작은 결혼식.........



   딱 세 가지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결혼식의 날짜와 크기와 장소.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나의,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말이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당신이 누군가와 앞으로 50여년을 더 살기 위해선 당장 50가지 보다 훨씬 더 많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근데 또 거기다 과정이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있으나 그렇지도 않다. 행복하려면 아마도 대체적으론 만장일치제에 가까워야 편하다. 근데,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선택할 게 그렇게 많고, 그렇게 선택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민주주의도 아니고, 만장일치제라고? 이런 왓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리의 가족은 결혼과 결혼식에 대해 각자의 주장이 강한 편이 아니어서 대체로 우리의 스스로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돈의 지출은 물론 결혼식, 결혼 준비 기타 등등의 부분 모두 다. 그래서 그 과정이 어렵지 않았고 선택의 책임만 온전히 지면되는 행운 아닌 행운을 누렸다. 사실, 나는 이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하지 못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사례를 너무도 많이 봤기 때문에 행운이라는 말을 한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이라는 말이 너무도 안 어울리는 과정. 다수결도 만장일치제도 아닌 그런 과정. 당신이 배우고 나도 배우고 모두가 배운 것에 위배되는데 그게 옳다고 믿어지는 그런 과정, 말이다.


- 그래서 선택이 더욱 더 중요하고, 그 선택 만큼의 노력도 더 필요하다고 하면, 너무 교과서적입니까?



   그리하여, 당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적이지 않은 결혼,식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김모씨가 결혼식의 날짜와 장소, 하객으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다가올 난관을 걱정하며 몇 번이고 다짐했던,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을.

    “결혼식 말고, 결혼을 훨씬 더 많이 준비하자. 우리.”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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