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말입니다
조연출을 구했다. 각 채널 별로 일을 도와줄 수 있는 막내PD가 필요했다. 막내PD라고 해봐야, 위에 한 명밖에 없지만. 모집 공고를 적었다. 회사, 채널, 근무시간, 급여 등등 필요한 정보를 서술했다. 중요한 건, 스포츠나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채널 특성인 것 같기도 한데, 한 종류의 콘텐츠만 집중적으로 하는 업무라서 그런지 PD가 되고 싶었던 사람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더 오래, 잘 즐겁게(라고 쓰면서 버틴다고 읽는다) 일하더라. 실제로, 내가 그랬고. PD를 하고도 싶었지만 스포츠가 그것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하. 기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어떤 누가 지원서를 제출할지,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기다림 말이다. 마치, 소개팅을 앞둔 사람처럼.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보내는 입장에선 설렘은 무슨, 살 떨리고 조마조마하고 간절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각종 회사에서 지원서를 낼 때마다 느끼게 되었던 그 간절함. 가끔은 아오. 될 대로 되어라 하는 심정도 있었지만. 그래서 며칠을 언제 무슨 이메일이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왜 이렇게 뭐가 안 오는 거야. 공고에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근무 요건. 급여. 흠. 뭐지.
사실 조연출이란 말도, 잘 모르겠다. ‘조’라는 말로 한계를 규정하는 건 아닌지. 사진은 KLPGA 선수 프로필 촬영이었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아, 옛날사람!) 이메일이 도착했다. 신나는 마음에 클릭. 방송정보국제교육원 취업담당자가 지원자를 소개해주는 내용이었다. 교육원에서 수업을 수료한 학생 중에 알맞은 사람을 추천해주는 거겠지. 이메일에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첨부하며 여러가지 편집툴을 다룰 수 있는 뛰어난 재원이라 했다. 그리고, 비록 여자이지만 굉장히 털털해 과대를 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덧붙였다. 매우 쓸데없는 말을. 눈을 의심했다.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무슨 말이지. 비록 여자이지만, 이라고?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스포츠, 골프 채널이라는 콘텐츠의 성격이 남성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PD라는 업무가 일도 고되고 몸도 많이 쓰고 밤을 지새우는 경우가 많다 추측했을 것이다. 여자가 하기에 고달픈 직업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개를 해서 교육원의 취업률을 올려야 했을 것이다. 취업을 하면 국가 지원비가 나오는 건지, 아니면 홍보에 한 줄 더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렇다. 이것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비록 여자이지만’ 이라는 그 말로, 당신은 나와 같이 일했던 훌륭한 여자 선배 동료 후배를 모두 무시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좀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두를, 무시한 거다.
부모님의 교육방침에 감사한 게 몇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차이를 두지 않았던 거다. 누나와 나에 대해서. 성별에 대해서. 여잔데, 남잔데 라고 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으셨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이다. 예를 들면, ‘너는 여자애가 왜 이렇게 왈가닥이니’, ‘너는 남자애가 뭘 울고 그러니’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오히려 무엇을 배워도 다 같이 할 수 있게 노력하셨다. 피아노를, 서예를 배울 때도 누나를 따라했고 아빠와 운동을 하거나 바둑 학원을 갈 때도 늘 누나랑 함께했다. 그게 좋았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 그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커서 보니 부모님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쉽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습관처럼 남은 부분이라서.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화가 났다. 이런 생각으로 학생을 어딘가에 추천하는 교육원이라니.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지, 누가 교육이 필요한지 모르겠네. 누군가의 간절함이 당신의 안일함으로 희석되어질 수 있다는 걸, 그는 알아야한다. 혹시나 다시 살펴본 모집 공고엔 역시나 성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마음, 더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필요했다. 언제나 그랬다. 어떤 종목 어떤 선배 어느 동료 동생들과 일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건 그 마음이었다. 취업담당자 때문에 취업을 원하는 사람의 지원서를 읽기가 무척이나 싫어졌다.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긴, 소개팅이라고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그 설렘까지가 더 좋을 수 있으니까. 역시, 주선자는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빠지는 게 진리인가보다.
2018.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