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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Oct 25. 2018

아, 진짜요? 같은 거 말고

뭔가 다른 신박한 리액션 없을까요?

           

        인턴은 사람을 쭈구리로 만든다. 그게 너무 싫다. 특히 취업이 걸린 인턴이면 훨씬 더하다.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붙는다는 사실이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 있던 자신감, 없던 자존감도 다 뭉개진다. 잘해서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도 좋은데 무엇보다 잘못해서 찍히지 않게 노력한다. 그 말은 즉, 나의 생사를 쥐고 있는 이들의 눈치를 (좋게 말해서) 비위를 (나쁘게 말해서) 맞추게 한다는 거다. 3개월이면 3개월 동안 쭉. 이것은 그들이 잘해주고 못해주고와 상관이 없다. 거의 없다.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그냥, 인턴 사원을 그렇게 만든다.



          인턴은 신입사원도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힘든 기간을 거쳐서 직원이 되었다고 치자. 그럼 마냥 기쁠 것만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인턴 기간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이 되어도 쭈굴쭈굴 모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함께한 혹은 지켜본 대부분의 이가 그러했다. 누군가의 라인을 타고 어쩌고의 일도 아니다. 그냥 모든 이의 눈치를 여전히 보면서 생활한다. 그게 인턴 후 신입사원의 모습이다. 2012년의 우리만 해도 그랬다. 9명의 인턴 중에 5명이 PD가 되었는데 합격하고서도 점심시간마다 5층 편집실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11층 사무실의 선배가 연락할 때까지. 미리 연락을 드리면 예의에 어긋난 것 같고, 우리끼리 먼저 먹으면 그러다 욕먹을 거 같고. 그냥 뭘 해도 한소리 들을 것 같으니까. 하. 이 애처로운 기억이여.


부조정실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던 시절. 아 진짜요?



            그때였다. 나한테 없었던 언어 습관이 생긴 것도. 일명, ‘아, 진짜요?’ 병. 선배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아니 거의 자동적으로 나왔던 리액션. 야 오늘 점심 맛있다. 아 진짜요? 난 야구 좋아하는데 너넨 무슨 종목 좋아하냐? 아 진짜요? 이거까지 하고 커피 마시러 갈까? 아 진짜요? 내가 신입사원 때는~ 아 진짜요? 중계에 나가면 이래. 아 진짜요? 어제 메시 골 넣는 거 봤니? 기가 막혔는데. 아 진짜요? 이게 엘리베이터란 거야. 아 진짜요? 이건 숟가락이란 거다. 아 진짜요? 내가 전생엔 이순신이었어. 아 진짜요? …………… 무슨 이야길 해도 마법처럼 붙는 그 말, 아 진짜요?



          그냥 그날도 그런 평범한 날이었을 거다. 기억도 잘 안 나는, 아까 이야기했던 인턴사원을 통과한 신입사원의 쭈구리 모드로 하루를 보내던 날. 편집실을 나와 5층 복도에서 선배랑 이야기를 하는데 또 하고 말았다. 아, 진짜요? 라고. 무슨 이야긴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그 장면만 머릿속에서 선명하다. 왜냐하면 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에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지도 않는 담배, 옆에 멀뚱멀뚱 서서 그 연기를 맡으러 가면서 아 진짜요 아 진짜요 아 진짜요를 말하고 다니는 내가. 문득, 뭐하는 건가 싶었다. 아. 이러지 말아야지. 진짜는 내가 진짜가 되어야지. 내가 나일 수 있게 단단해져야지. 이 말부터 하지 말아야지.


내가 너무 쭈구리인게 싫어서 그해 여름 휴가로 혼자 한라산을 올랐다. 할 수 있다는 걸 느끼려고. 그리고 그 후로 무릎이 계속 아프......



          “야,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ㅋㅋㅋ” 1년 뒤에 인턴 사원이 들어왔다. 그들도 역시나,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진짜요? 병에 걸려있었다. 그게 너무 불편했다. 나도, 그랬겠지. 그럼 진짜지 가짜냐고 하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위에 했던 이야기를 다 들려줬다. 어떤 마음인지 다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굳이 꼭 그렇게 말 안해도 된다고. 그게 ‘마’가 뜨는 게 싫어서, 어제 한 번 밥 먹어요 같은 뜻없는 표현이란 거 알지만. 하고 싶은 대답,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내가 나일 수 있는 말이,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뒤로도 회사에서 마주하게 되는 동생들 마다 “아 진짜요?”라는 말을 듣게 되면 꼭 하지않아도 괜찮다 대답해줬다. 사실 그것도 듣는 입장에선 “아 실수했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진짜요?”라고 말하는,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거 말고 뭔가 다른 리액션은 없는 걸까. 물론 회사엔, 허언증도 있고 거짓말쟁이도 많아서 모든 이야기가 다 ‘진짜’가 아니란 걸 나중에 깨달았지만. “아, 진짜요?”는 사실, 그럴 때 필요했는데.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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