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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Oct 19. 2018

당신의 부모님을 만나고 오는 길

소개팅보다 어려운 상견례


    다행히 차는 안 막히는 거 같아요.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수월하네요. 아침 일찍 내려갈 때도 막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잠도 안 오고 시간이 꽤 길게 걸린다고 느껴졌거든요. 부모님과 수다를 떨어도 왜 그렇게 떨리던지. 진주로 가는 4시간이 그렇게 멀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어요. 당신을 만나러 갔던 날에도 이러진 않았는데. 당신의 부모님을 만나러 갔던 날에도 이러진 않았는데. 나의 부모님을 당신의 부모님과 만나게 해 드리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우리의 부모님은 경기도 일산에 살고 계시죠. 당신의 부모님은 경상남도 하동에 계시구요. 결혼을 하려면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거리가 좀 멀었어요. 그렇죠? 그렇다고 천안이나 대전 즈음에서 보기엔, 서로가 잘 모르는 지역이라 좀 꺼려지고요. 양가 모두 마음 불편하게 낯선 곳에서 만나면 뭐가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는 겸 해서 진주로 내려가기로 정했잖아요. 사실, 결혼을 서울에서 하기로 해서 그런 것도 있고요. 저와 저희 가족의 손님 그리고 당신의 손님을 다 더해도 진주에서 당신의 아버지 손님 부르는 것보다 적잖아요. 그런데도 당신의 아버님이 양보를 해주셨으니까요. 물론, 당신의 속이 좀 썩긴 했지만요. 하하.


이것은 처음 당신의 부모님을 만났던 날. 세상 낯선 곳에 혼자 떨어진 것 같았던 날.



    걱정을 했어요.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부모님의 만남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없잖아요. 처음, 하동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날이 생각나요. 굉장히 떨렸죠. 무엇보다 말을 알아듣기 힘들거라 당신의 주변에서 하도 이야기를 해서요. 당신의 동생까지도 걱정했잖아요. 음, 그래서 실제로 만나 뵈었을 때는, 힘들었죠. 하하. 경상도 사투리에 말씀이 빠르시고 뒤를 흐리시니 정말 귀를 쫑긋해야 하더라구요. 표정과 제스처, 주변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80%도 알아듣기 힘들었을 거예요. 잘 안 마시는 소주를 2병이나 마시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게 마음에 가장 걸렸어요. 우리의 부모님이 당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음식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다행히 그런 건 없었어요. 드라마에서 보면 상견례에서 늘 나오는 거 있잖아요. 우리 자식이 이렇게 잘났네, 우리 자식도 이렇게 잘났네, 아까운데 너네 집에 보내준다, 우리가 더 아까운데 보내준다, 뭐라고? 뭐가요!! 이런 식의 대화 말이에요. 우리가 서로 잘난 게 없어서 그런가요. 하하. 부모님들은 서로 우리가 부족해서 죄송하다고 하시는데 뭔가 좀 더 잘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좀 더 잘 살아야겠다! 의외로 부모님들은 말씀이 잘 통하시더라고요. 하동 아버지의 일산 지역 군대 생활 이야기도 나누고요. 생각보다 결혼식, 결혼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어요. 우리가 알아서 잘 하리라 믿으셔서 그런가. 결혼은 가족과 가족이 만나서 하는 거지만, 누가 중심이 되어서 진행하는지는 그래서 참 중요한 거 같아요.


4년 뒤 이 두 분은 상견례를 하러 진주로 내려갑니다. 생각도 못하셨겠죠? 저도요.


    아버지에게 말씀드렸죠.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구요. 하동 아버지의 말씀을 못 알아들으실까 봐 그게 가장 우려되었다구요. 아버지는, 웃으시더라구요. “야. 내가 그동안 만나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걱정하고 그러냐. 내가 너한텐 그래도 사회에선 사람 좋다는 소리 듣고 살아 인마.” 아. 저한테도 왜 사람 좋으시면 안 되는 거죠? 하하. 그래도,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동안 살아오신 인생의 경험치가 있잖아요. 그게 저랑, ‘레베루’가 다르니까요.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거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당신이 노심초사했던 당신의 아버지도, 실은 그동안 만나본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어떤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텐데. 우리는 너무 우리의 부모님을 아이 다루듯 걱정했던 게 아닐까요.



    그래도, 생각해요. 아무리 좋아도, 좋으신 분이어도 결혼 전에 양가 부모님은 서로 제일 적게 만나는 게 낫다구요. 부모님끼리도. 상대 부모님과 우리도요. 오가는 게 많을수록, 잦을수록 오해가 쌓이고 다툼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하게. 간단하게. 무엇이든 부모님께 말씀은 우리가 같이 가서 한 번에 할 것. 우리가 잘 해야 하는 건, 이거 맞죠?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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