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loco Jan 18. 2019

결혼 준비를 누가 하면 되냐면요

누군가 해야할 일이면, 너가 하자!


    결혼 준비는, 서로가 같이 힘을 합쳐 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주제, 이런 글이면 이런 내용으로 끝나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라고 뭐 다르겠어요? 결혼 뭐 두 세번 해본 것도 아니고. 사이 좋게 서로의 힘든 부분을 잘 채워가면서, 5:5로 비중을 나눠가지고 그렇게 이 글은 마무리되었다고 합니다……가 아니라! 그럴 거면 뭐하러 쓰겠습니까. 어차피 결혼에 정답은 없고,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해야하니까요.


이제부터 힘든 길 시작 될 거야아아~



    그래서 결혼 준비는, 더 하고 싶은 사람이 합니다. 결혼식에, 결혼에 좀 더 로망이 있는 사람. 하고 싶은 게 더 많은 사람. 원래 모든 일이 다 그런 거 아닌가요. 바라는 게 많으면 그만큼 의지를 갖고 움직여야죠. 내가 하고싶은 걸 남이 해주길 바라는 건 놀부심보니까요. 자발적으로 능동적으로 해야 만족도도 올라가죠. 압니다. 결혼 준비라는 게 하자고 하면 끝도 없이 해야하는 거. 안 하려면 안 할 수 있는데 하고자 하면 결혼 전날까지도 해야하는 그런 거. 혼자서 하기 벅찬 일이라는 거. 그래서, 다른 한 사람은 뭐하냐구요. 주로 결제……….돈을 지불하…………. 그러면 만족도가 높아지…………..



    아닙니다. 결혼 준비는,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합니다. 결혼식을, 결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분명 조건과 상황, 의지 등등의 이유로 좀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둘 중에 하나는요. 저의 결혼을 되돌아봅니다. 어차피 들 수 있는 예라곤 저의 결혼뿐이니까요. 결혼과 결혼식에 로망따위 없는 둘이 만나서 준비란 걸 해야하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 건 저였습니다. 네, 신랑이요. 그래서 조금 의아한 시선도 많이 느꼈어요. 보통은 ‘신부’가 좀 더 주도적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근데 뭐, 그러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다. 요즘 같은 남녀평등 시대에.


술을 부르는 결혼 준비...........


    저는 서울에, 배우자님은 울산에 있었습니다. 결혼식은, 앞으로의 생활은 다 서울에서 할 예정이었구요. 우리는 인터넷이 무척 발달한 세상에 살고있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게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결혼식이라는 거, 정보의 비대칭 만큼 지역 편중도 심해요. 살면서 청담-압구정에 그렇게 많이 가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주말마다 가고 있더라구요. 어지간한 매장이 그 근처에 다 몰려있기 때문이었죠. 그게 옷이든 메이크업이든 물건을 구매하는 거든. 그걸 실제로 하든 알아보기만 하든. 그래서 지역적 이점도 갖고 있으며, 조금 더 규칙적으로 일을 했던 제가 좀 더 주도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성격이 보다 더 치밀하단 것도 이유로 칠까요. 에헴. 그래서 우리의 과정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적고 주로 내가)이 찾아보고 알아보고 선택지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리고 최종 선택을 함께 한다 였어요. 거의 대부분이 늘.



    둘이 반반 나눠서 사이좋게, 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얼마나 된다구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어느 부분을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 돈을 사용하는 것, 결혼식을 준비하는 여러가지, 집을 알아보는 것, 직접 찾아가는 것, 전화하는 것, 인터넷으로 조사하는 것, 어디선가 정보를 구하는 것 기타 등등의 부분에 적합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무엇이라도 더 나은 게 있는 둘 중에 한 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 그 사람이 당첨! 까지 가려면 그것 조차 고민해야한다는 거죠. 누가 어느 부분을 하는 게 더 낫느냐는 고민. 결혼을 하고 같이 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마주해야하는 걸까요.


결혼해도 고민에 끝이 없는 건 안 비밀. 집안일도....


    그러니까, 어느 누가 해야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굳이 결론을 내리자면 잘할 수 있는 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자, 정도랄까요. 그리고 사실, 중요한 건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얼마나 전폭적으로 믿어주느냐. 얼마나 힘이 되어주느냐. 힘들어 내려놓고 싶을 때 어떻게 잘 구슬려서(?) 다시 일어서게 하느냐 같은 거 말이죠. 내가 잘할 자신이 없다면, 상대를 잘 으쌰으샤하게 만들어서 움직이게 만드는 게 최상의 방법 아니겠습니까! 그것이야 말로 손 안 대고 코푸… 얼레, 나 그렇게 당한 거니?




2019. 01. 18.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하라. 마법의 한 문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