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잔다는 것
아주 어렸을 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잤다. 할머니 양 옆에 누나와 내가 누워 서로 자기 쪽을 보고 자라며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그럼 늘 공평하게 천장을 보고 주무신다고 했다. 그래도 좀 덕분에 편하게 주무실 수 있었겠지. 그다음엔, 누나와 둘이 잤다. 각자의 요에 누워 낄낄 깔깔 장난치다 잠들곤 했다. 간지럼 왕국의 여왕이라며 나를 괴롭힐 때마다 반항하고 싶었지만 그땐 누나가 힘이 더 강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혼자 잠을 자기 시작했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내 방으로 만들어달라고 우겨서 얻게 된, 지금의 내가 두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 없는 곳에서 사실, 매일 밤 좀 무서워하면서 잤던 거 같다. 으다다다다 하는 소린 1층과 2층 사이 공간에 쥐가 돌아다녔던 것도 같고, 거미가 집일 짓고 내 얼굴로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혼자 잤다. 결혼을 하기 전까지. 어디에 놀러 가면 모를까 대부분의 날은 혼자 눕고 혼자 뒹굴거리다 혼자 잠이 들었다. 각자의 방을 갖고 자란 이면 대체로 이러한 삶을 살겠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아니라 몇십 년을 혼자서 자고, 각자의 습관을 만들고. 그러고선 세상 남이었던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해서, 같이 잔다.
신혼여행 땐 모른다. 이르케 쇼핑하고 기절해서 잠드니까. 누가 보면 운동 선순줄.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에 하루 이틀 여행을 다니면서 같이 잠들었던 밤과는 너무도 달랐다. 다른 누구와 ‘매일’ 함께 잔다는 건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사람이 좋고 너무 좋고 무척 정말 좋다는 사실과는 또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우선, 시간이 달랐다. 보통 한 두시에 잠들었던 나와 달리 배우자님은 12시 이전에 잠드는 걸 즐겼다. 옆에 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했다.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더욱이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와 치대고 잠들었던 걸 즐겼던 나는, 배우자님께 매일 치덕 거리며 잠들고자 했는데 나의 옆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은 무언가가 닿고, 자신의 몸 위에 뭐가 올라와있거나 하는 걸 답답해하는 성격이었다. 새벽에 이불은 차고 자는지, 자주 뒤척이진 않는지 아. 팔을 휘적거리거나 뻗어서 때리진 않는지 이런 것도 다르고. 잠버릇은, 그래 뭐. 피곤하면 코 골고 가끔은 이도 딱딱 거리고 하는 건, 그래 그건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잠들고 난 후에 일어나는 일은 본인도 다 모르는 일인데 뭐. 빨리 잠들면, 피곤해서 기절하면 사실 상대가 뭐 어떻게 하면서 자는지 모르니까.
내 옆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워 잠든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으면서 그렇게 적응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잠의 질은 삶의 질과 연결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6시간 정도의 적정한 수면시간을 갖지 않으면 몸의 배터리가 방전된 기분이 든다. 눈을 감고 좋은 잠을 자야 충전을 하는 거다. 결혼을 하기 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왜 아빠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서로 반대로 잤을까. 어느 부부는 왜 서로 각자의 침대를 두고 잘까. 왜 각자의 방에서 자는 걸까. 부부는 싸우든 뭘 하든 어쩌든 한 침대에서 같이 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고리타분해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아주 빠르게 인정했다. 그리고 나만큼 배우자님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했다.
사이좋게 자자, 우리.
그래서 결국, 우리는 V모양으로 잠을 청하게 되었다. 치대는 걸 좋아하는 나와 답답해하는 배우자님의 합의점이랄까. 우리 그러니까 이런 모양으로 자자! 라고 한 건 아니다. 서로 애틋하게 안아주고 하루 종일 고생했다 토닥토닥하고 이제 잠을 자야겠다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자연스레 손만 잡고 발 한쪽씩만 대고 있는 우릴 발견할 수 있었다. 거추장스럽게 치대는 거 말고, 서로 등 돌리고 자는 것도 말고. 이 정도까지만. 그렇게 천장에서 우리가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면 꼭 브이-자 모양으로 자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일어날 때까지 그러고 있는 건 아니고. 자다 보면 여전히 코 고는 소리에 깨고 이 딱딱하는 소리에 깨고 등 돌린다고 서운해하고(주로 내가) 뻗은 팔에 맞아서 깨고 (이것도 내가) 하는 거엔 깜짝깜짝 놀란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어떤 부부가 어느 방식으로 어떻게 잠을 청한다 하더라도. 결혼을 어렵게 결심하고 힘들게 준비해서 행복하게 시작해도 당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서로가 달랐던 미처 몰랐던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밥을 먹는 과정이라든지, 청소를 하는 부분이라든지, 생활 전반 어느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오게 되는데 사실, 잠은 정말 매일 자야 하는 것이라서 무조건 맞춰 가야 하는 부분이 된다. 그러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면 가능한 많은 밤을 함께 하시라. 행복이 충만한 밤을 보내고 오랜 잠을 주무시라. 사랑하는 상대방이 어떠한 모습으로 자는지 지켜보시라. 그러고 나면 아- 내가 침대를 두 개 사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도..... 가 아니라.
그렇게 불편한 잠을 자다 보면, 어느새 상대가 없을 때 시린 밤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불편함에 적응해 편안함이 낯설어지는 때가 찾아온다. 그러면, 그래서 또 잠이 오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오늘 나를 두고 놀러 가서 쓰는 글은 아니다.
2019. 0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