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게 그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loco Jul 02. 2019

할머니를 위한 마음

#1 나의,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라는 글자를 적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어요. 할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하고.



할머니.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지도 시간이 꽤 지났네요. 저번에 갔을 땐 저랑 눈을 마주치는 것도 힘겨워하셨어요. 그렇게 할머니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음번엔 이야기를 들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랑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웃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기에. 찾아뵈면 손을 잡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내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적어서 들려드리려구요. 괜찮죠?



생각해보면 언제가 마지막인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랑 대화를 나눈 게 말이에요. 이렇게 갑자기 할머니가 말을 못 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으니까. 지금도 머릿속에선 할머니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기억이 나는데. 말도, 글도 쓰지 못하는 할머니를 만나면 그래서 속상해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실까. 얼마나 살갑게 인사하고 싶어 하실까. 우리 할머니는 나랑 쫑알쫑알 떠는 거 좋아하셨던 수다쟁이였는데.



한편으로는, 감사하게도 생각해요. 할머니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준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할머니, 저는 늘 되게 걱정하면서 살았거든요. 원래 겁이 많은 손주잖아요.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결석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덜컹거렸어요. 언젠가 나도 그렇게 갑자기 준비 없이 이별을 맞이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에요. 그건 또 할머니의 잘못도 커요. “초등학교 들어가는 건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고 하셨잖아요. 제 결혼식까지 건강하게 보실 거면서 말이에요. 어떻게 해도 힘들 헤어짐이지만 이렇게나마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게 그래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어요.



할머니에게 제일 처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할머니랑 동네를 돌아다닌 기억이었어요. 정릉4동 북한산 아래 살 때. 할머니랑 언덕길을 내려가서 산책을 하던 시간이요. 버스 종점 옆에 아주 작은 김천상회에 들어가 “경사 났네~ 경사 났어~”라고 덩실거리며 춤을 추면, 주인 할머니가 신호등 사탕을 주곤 하셨던 그런 날들이요. 덩실덩실 춤도 추고 개다리춤도 추고, 그러면 공짜로 사탕을 받는 것도 좋았지만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자랑이 되는 게 더 좋았던 거 같아요. 우리 손주가 춤을 얼마나 잘 추는데요. 얼마나 야무진데요. 라는 말을 듣는 게. 그러니까 앞으로도, 할머니의 자랑이 될게요.



이렇게 끼적이기 시작하니 할머니와의 기억이 꽤 많이 떠올라요. 저는, 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나 봐요. 틈틈이 적고 자주 가서 들려드리도록 노력할게요. 사랑해요. 할머니.



2019 07. 02.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