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위한 마음
#3 할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밤
할머니와 언제, 마지막으로 함께 잤을까요?
다 크고 나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랑 가끔 자곤 했잖아요. 아직 함께 살았을 때니까.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랬던 거 같은데.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걸 포기하기 쉽지 않아서 자주는 못했지만. 대뜸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요를 깔고 누워서 잔다고 하면 귀찮게 뭐하러 자냐고 하면서도 할머니는 좋아했으니까요. 새벽에 화장실도 가고 그래서 자다 깰 테니 편하게 못 잔다고 네 방 가서 자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한 손은 꼭 쥔 채로 옛날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셨으니까 분명 좋아하셨던 게 맞았을 거예요. 물론 할아버지는 그러든가 말든가 9시 뉴스가 끝날 때 즈음이면 쿨하게 꿈나라로 가셨지만요.
2016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거예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1일이나 2일이나 3일이나 아무튼 그 언저리 즈음. 그때가 아마 마지막인 거 같아요. 할머니와 함께 잠을 청한 게. 왜냐하면 아빠랑 싸우고 집을 나갔으니까요. 2015년 12월 31일 밤에. 아니, 정확히는 누나랑 싸웠는데 그걸 보던 아빠가 나중에 저를 보고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걸 듣고서 집에서 나갔으니까요. 내가 치사해서 나간다고. 그러고선 숙박업소에서 하루, 할머니집에서 하루, 회사 동생 집에서 하루 정도 잤던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게 할머니와 함께 잤던 마지막 밤이었던 거죠. 아빠 덕분에.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요. 뭐, 아마 또 일산시장의 순댓국이나 사들고 갔겠죠. 그러고선 야구나 보다가 뉴스나 보다가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방에서 주무시고. 저는 할머니랑 둘이서 잔 거 같은데. 아빠랑 싸우고서 여기서 잤다고 말씀을 드린 것도 같아요. 그래서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한소리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따로 나가서 살게 된 이후로 제가 그 집에서 잔 적은 없으니까 할머니는 같이 잠을 자게 되어 좋기도 하면서, 걱정이 되기도 하니 어서 아빠한테 잘못했다고 하고 들어가라고 하셨을 거예요. 아빠랑 저랑 성격이 비슷해서 한 번 엇나가면 계속 그러고 있을까봐. 그게 다 할아버지 닮아서 그런 거잖아요. 뭐, 그래서 며칠 뒤에 집으로 들어가긴 했어요. 할머니 말을 듣고 돌아간 건 아니지만. 집이 이사를 가서, 그 집이 전세길래, 이제 아빠 집이 아니니까, 들어가도 되겠다 싶어서요.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게 소용이 없잖아요?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잠을 잤던 게 싫지 않았어요.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특별하게 싫지 않았거든요. 아니, 좋아했죠. 할머니를 사이에 두고 누나랑 매번 투닥거렸으니까요. 서로 자기 쪽을 보고 자라고, 할머니 얼굴이랑 목이랑 가슴이랑 만지면서 할머니 내꺼라고 하면서 싸우다 잠들었던 기억이 나요. 할머니도 자주 말씀하셨잖아요. 누나가 잠에서 깨 “할머니 목 어디 있어. 할머니 어디 있어”하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고. 할머니 이야기보따리의 주요 에피소드였는데. 또 다른 기억도 많아요. 크리스마스이브에 누나랑 내가 먼저 잠들면 성당에 다녀오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찬 기운을 내뿜으며 선물을 두고 가셨던 거, 그래서 ‘벤허’를 보면서 선물을 풀어보다 다시 잠들었던 거. 처음으로 악몽을 꿨던 밤에 옆에서 놀라서 깬 할머니가 땀을 닦아주시며 괜찮다고 말해주셨던 거. 그런 거 다요.
그래서 다 커서도 베개를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갔나 봐요. 위로받고 싶어서. 엄마한테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 기분 좋으시라고 가서 잔다고 했는데 사실은. 뭔가 고단하고 힘들 때 그냥 무조건 적인 사랑을 받고 싶어서. 어렸을 때의 기억이, 할머니의 온기가 위안이 되어서요. 이젠 등치가 산만해져서 함께 자면 서로 좁고 불편한 걸 알면서도, 일어나면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는 잠자리를 다 정리하고 나가서 아침을 드시고 계시단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 제가 좋으려고 가서 잔 거예요. 알고 계셨죠?
촛불도 향도 꺼지는 게 싫어서 밤새 지키겠다고 하고선, 꾸벅꾸벅 졸다 하나씩 향을 피우면서, 그렇게 할머니 사진을 바라보다가 언제가 마지막인지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할머니와 보낸 밤을.
할머니 고맙습니다.
2019. 08.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