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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Aug 16. 2019

성장이 멈추고, 아픔이 찾아올 때.

몸도 마음도 쓴 만큼 아픈 거다.


성장이 멈췄다. 이제 퇴화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왼쪽 무릎이 아프다. 화장실 청소를 하려 쭈그려 앉아 있다가도, 그냥 엎드려 어디를 가려고 하다가도, 절을 하다가도. 농구나 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하면 더욱더. 보통은 잠깐 불편한 정도인데 심하면 하루 이틀은 시큰 거려 매우 귀찮다. 그래, 귀찮다. 그러니까 막 아파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고두심 아주머니의 케토톱 힘을 빌려야 할 정도도 아닌, 그럼에도 신경에 거슬리는 아픔.


비염도 잦아졌다. 원래도 비염이 있긴 했지만, 어른들 말로는 이건 머리 숙이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애들이 걸리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학문에 뜻을 접은 이후로 순식간에 사라진 병이었다. 놀기 시작하니 코가 얼마나 뻥뻥 뚫렸었는데. 콧바람이 그래서 부나 보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요새는, 툭하면 코가 막히고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목소리가 이상하니 좀 더 목에 힘을 주게 된다. 안 그래도 코가 막혀 건조한 목 안이 더 힘들어진다. 아프다. 목소리가 안 나온다. 소리를 더 낸다. 악순환의 시작. 코도 막히는데 목도 더 아파진다. 저녁 즈음이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무릎이 언제부터 그랬냐면, 직장인 1년 차 여름휴가 이후로 였다. 그때 나는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잘하고 싶었는데, 잘하는 게 없었고, 잘할 거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갔다. 제주도에. 한라산에 올랐다. 혼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을 스스로의 힘으로 내디뎌 올라보고 싶어서다. 그럼 좀 자신감이 생길 거 같아서. 그리하여 한라산에, 반바지 반팔 기본 운동화 차림으로, 동네 뒷산 가듯 다녀왔다. 아-무 생각 없이. 덕분에 내려올 땐 양쪽 무릎 뒤가 너무 아파 다리를 굽힐 수가 없어 펭귄처럼 걸었다. 한 시간 넘게. 그렇게 무릎이 나갔다. 물론 자신감은, 돌아오지 않았고.


비염이 다시 언제부터 그랬냐면, 지난해 봄부터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업무 변동, 잘 모르는 콘텐츠, 성과를 내야만 하는 일 등의 압박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평창올림픽을 하기 전부터 여러모로. 그렇게 몸이 상했고 마음이 다쳤다. 그 상태에 미세먼지가, 최악이었다. 언제 어느 때부터 우리나라가 이렇게 갑갑한 하늘을 갖게 된 거지. 그만큼 내 코도 답답했다. 거의 뭐, 기상청 수준이었다. 아니다. 내 코가 기상청보다 좀 더 낫다. 거짓말은 안 했으니까. 그 이후로 조금 괜찮아졌다가 컨디션이 떨어지면,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면 여지없이 반복된다.


찾아보면 좀 더 많을 거다. 몸의 아픈 구석이. 여러 가지 이유로 탈이 난 부분이. 그냥 그러고 살만 하니까 두고 지내는 것이. 더 아플까봐 걱정은 하지만, 지금은 더 게으르고 싶어서 버티는 게.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다. 아. 그래. 내가 무릎을 너무 많이 쓰긴 했지. 매일 그렇게 공놀이를 했으니 일찍 탈이 난 거지 뭐. 아. 그래. 코도 매일매일 그렇게 썼으니까. 좀 약하고 안 좋은 부분이었는데 먼저 탈이 난 거지 뭐.


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마음이 아픈 것도. 나의 몸이 30여 년간 고생하고 다친 것처럼. 나의 마음도 그 시간만큼 여러 가지 일을 겪었을 테니까. 아주 깊은 상처도 피하고 싶은 순간도 꽤나 있었으니까. 그게 켜켜이 쌓여서 무겁게 내려앉아서 마음을 누르고 있었을 터다. 그러니 어딘가는 곪았거나 어딘가는 고달파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일이지. 비단 이게 나뿐만은 아니겠지 라고도. 몸보다 마음을 더 많이 사용한 이도 있을 테니 더욱더.


그래서 비뚤어진 말을 하거나, 예쁘지 못한 행동이 자꾸 나오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마음이 아프니까. 다쳤고 상처가 났으니까. 무릎이 올바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원래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올바르다고 생각하던 행동이, 원래 옳다고 믿었던 판단이 자꾸 힘을 잃어서 그르치고 마는 일이 늘어나는 거다. 지난겨울부터 나는, 그랬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 했고 나의 잘못이 아님을 밝혀내고 싶어 했다. 원래도 그러한 성격이었으나 그 정도가 더 해졌고, 나의 방어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스스로도 느낄 만큼. 그러나 꼭, 모두가 비뚤고 삐죽한 것으로 상처를 덮어내려 하지 않는다. 자꾸 웃기만 하는 것, 자꾸 나의 이야기만 하는 것,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전부 그런 일인 거다.


우선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대체로 어느 누군가 역시도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꽤 잘 버티어주었구나 라고 감사해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무릎도 코도 마찬가지로. 뭐. 몸의 이상은 병원에 가고 약국을 찾는 게 당연하면서 마음은 아직도 그렇지가 않아서 좀 고달프다면 고달파지려나. 원래도 몸이 아프면 아 이건 약국 감이구나, 아 이건 동네 병원, 어이고 이건 큰 병원에 가야겠네 라고 자가 진단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그 마음까지도 나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더라도.



2019.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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