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보고 싶어요. 몇 번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삼킨 말이에요. 보고 싶어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절절하게 느낀 적이 있었나 싶어요. 그리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보통의 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깨닫고 있어요. 좀 더 의식적으로 밝은 모습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시간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보통의 저에게는, 할머니에게 배운 것이 많아요.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의식적으로 몸에 남은 기억일 거예요. 존댓말처럼요. 어렸을 땐 존댓말이 존댓말 인지도 모르고 사용했으니까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때, 친구가 넌 왜 엄마한테 존댓말을 하냐고 이야기했을 때 어리둥절했거든요.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많이 들었던 말하기의 방식이 존댓말이었고, 저는 그저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대로 했을 뿐인데요. 그래서 저는 첫 만남부터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존댓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많은 호감을 느껴요.
쓰레기를 함부로 거리에 버리지 않는 것도 할머니 덕분에 생긴 습관이에요.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엔 명백했던 중학생 사춘기 시절에, 그 망나니 같은 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를 듣고서 고쳐먹은 마음이거든요. 아직도 생생해요. 할머니랑 엄마랑 점심을 먹던 어느 날이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학생 무리 몇몇을 봤는데 애들이 길거리에, 공원 잔디밭에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막 버리던 걸 봤다 하시며 우리 애들은 안 그러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셨다고요. 뜨끔했어요. 뭐, 그 전에도 쓰레기를 막 아무렇게 버리는 애는 아니었지만 그걸 그 정도로 신경 쓰진 않았으니까요. 반성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론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요. 주머니에 넣거나 들고 가거나 어떻게든 쓰레기통을 찾아요. 종종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유는 단 한 가지, 할머니에게 부끄러운 손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예요.
노래를, 춤을 좋아하는 것도 다 할머니에게 배운 거예요. 틈이 나면 노래방을 가자하시는 아빠를 보면 그냥 그런 유전자가 있는 것도 같지만요. 어렸을 땐 할머니랑 같이 노래를 불렀잖아요. 현철의 봉선화 연정도 주현미의 짝사랑도 조용필의 선구자도 김흥국의 호랑나비도. 할머니 옆에서 부르고 할머니 앞에서 췄는 걸요. 그러고 보면 밥을 많이 먹는 것도 다 할머니 덕분이네요. 맨날 저보고 입이 짧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래서 제가 정말 밥을 조금 먹는 줄 알았어요. 다 커서 보니까 우리 집 밥그릇이 다른 집 밥그릇보다 훨씬 크고 깊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일반 식당에서 공깃밥을 꼭 2개씩 시켜먹어요. 입이, 짧아서요.
손 잡는 것을, 따뜻한 손을 좋아하는 것 역시도 할머니에게 배웠네요. 날씨가 조금만 추워지면 금방 차가워지는 손을 가진 손주라서, 밖에서 돌아오면 자주 손을 잡아주셨잖아요. 아휴 왜 이렇게 손이 차라고 하시면서, 제 손을 할머니 양손 사이에 넣고 꼭, 한동안 꼬옥 잡고 계셨죠. 덕분에 저는, 손을 잡아주는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아요. 서로의 손과 손으로 체온이 전달되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애틋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손을 잡고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도 배웠어요.
할머니. 그래서 저는 할머니를 닮은,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해요. 손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 사람에게서 늘 위안을 받아요. 할머니께서 제게 주신 사랑 잊지 않고, 배운 그대로 그 사람에게 전할게요. 보고 싶어요 할머니.
2019. 0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