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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Oct 19. 2019

할머니를 위한 마음

마지막 마음


#1

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 제사를 치르고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진짜, 빨리 가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러셨잖아요. 아휴. 우리 손주 학교 가는 건 보고 죽어야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고서 30여년을 더 사셨어요. 제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까지 다 보셨어요. 건강하게, 또렷하게. 근데 그것도 지나서 할머니를 볼 수 없게 된지 두 달도 지났거든요. 할머니가 없는, 지금이 적응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안 되고 그래요.


#2

할머니를 왜 그렇게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누가 보면 할머니 손에 큰 사람인 줄 알 거요. 우리 엄마는 전업 주부여서 집에만 계셨는데. 뭐, 할머니가 애틋하고 너무 좋은 손주가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나일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무엇보다 저는, 그게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세상에 나를 온전히, 나의 모든 걸 사랑해주고 예뻐해주는 사람. 무조건적으로 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 절대적으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라졌다는 게 힘들었어요. 왜, 할아버지는 안 그럴 거 같은데 할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하하. 그런 사람이 지구상에, 내가 태어나서 살아오며 옆에 얼마나 있겠어요. 내 한 손, 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이제 없어졌다는 것. 그 상실감.


#3

생각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아빠는 아빠의 엄마를 잃어서 힘들었을 테고, 엄마는 엄마의 시어머니를, 30년이 넘는 시간을 모신 어머니를 잃어서 힘들었을 테지만. 저는 또 제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게, 출퇴근 시간에 생각이 유독 그렇게 나더라고요. 아마도 할머니와 따로 산 이후엔 안부 전화를 출근길에 많이 드려서 그랬나봐요. 일을 하기 싫은 어느 날, 출근길에 전화를 걸면 할머니는 늘 그러셨잖아요. “아휴. 우리 손주들은 세상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데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해서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다른 할머니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래 그래도 오늘 하루 할머니의 자랑이 되어야지 하고 가서 일을 했거든요. 근데, 할머니 그거 알아요? 할머니 손주들 이제 다 회사를 그만뒀어요.


#4

그래서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가슴 한 켠에. 할머니한테 말 못한 게 있어서. 늘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하며 응석을 부렸는데, 정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꺼내지도 못했거든요. 해서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하니 오히려 신경쓰실까봐 매년 회사에서 보내던 쌀도 따로 사드렸을 정도니까. 그렇게 노력한다고 했는데, 할머니를 못 본다 생각하니 더 말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차라리 말할 걸 그랬지 라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한테 솔직하지 못한 손주가 되었다는 게, 그렇게 할머니의 자랑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니까. 어쩌면 그냥 내가 속 시원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할머니의 마지막 제사를 할쯤에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회사를 그만둔지도. 그게 그렇게 울컥 울컥 하더라고요. 출근길에. 퇴근길에.


#5

할머니. 지금은 다른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곳에서 일하진 않아요. 매년 쌀을 보내주는 회사도 아니고요. 하하.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해요. 최선을 다해요. 힘들 때도 있는데 더 행복하고 더 좋은 시간이 많아요. 좌충우돌 하겠지만 적당히 흔들리고 단단하게 지켜갈게요. 앞으로 더 좋은 회사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할머니랑, 보낸 시간 동안 배운 게 많으니까. 제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람에 대한 애정은 다, 할머니에게 처음 배운 거니까요.


얼굴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나는 늘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선을 다한 손주였는데, 그렇게 보내드리지 못해 그게 마음에 너무 걸렸어요. 지난 1년 동안은. 지난 9월에는 더, 그랬어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게요.

할머니, 잘 부탁해요. 사랑해요.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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