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게 그거

할머니를 위한 마음

마지막 마음

by kimloco


#1

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 제사를 치르고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진짜, 빨리 가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러셨잖아요. 아휴. 우리 손주 학교 가는 건 보고 죽어야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고서 30여년을 더 사셨어요. 제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까지 다 보셨어요. 건강하게, 또렷하게. 근데 그것도 지나서 할머니를 볼 수 없게 된지 두 달도 지났거든요. 할머니가 없는, 지금이 적응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안 되고 그래요.


#2

할머니를 왜 그렇게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 누가 보면 할머니 손에 큰 사람인 줄 알 거예요. 우리 엄마는 전업 주부여서 집에만 계셨는데. 뭐, 할머니가 애틋하고 너무 좋은 손주가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나일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무엇보다 저는, 그게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세상에 나를 온전히, 나의 모든 걸 사랑해주고 예뻐해주는 사람. 무조건적으로 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 절대적으로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라졌다는 게 힘들었어요. 왜, 할아버지는 안 그럴 거 같은데 할머니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하하. 그런 사람이 지구상에, 내가 태어나서 살아오며 옆에 얼마나 있겠어요. 내 한 손, 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 그 사람이 이제 없어졌다는 것. 그 상실감.


#3

생각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아빠는 아빠의 엄마를 잃어서 힘들었을 테고, 엄마는 엄마의 시어머니를, 30년이 넘는 시간을 모신 어머니를 잃어서 힘들었을 테지만. 저는 또 제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게, 출퇴근 시간에 생각이 유독 그렇게 나더라고요. 아마도 할머니와 따로 산 이후엔 안부 전화를 출근길에 많이 드려서 그랬나봐요. 일을 하기 싫은 어느 날, 출근길에 전화를 걸면 할머니는 늘 그러셨잖아요. “아휴. 우리 손주들은 세상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는데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해서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 다른 할머니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는데.” 그러면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래 그래도 오늘 하루 할머니의 자랑이 되어야지 하고 가서 일을 했거든요. 근데, 할머니 그거 알아요? 할머니 손주들 이제 다 회사를 그만뒀어요.


#4

그래서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가슴 한 켠에. 할머니한테 말 못한 게 있어서. 늘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하며 응석을 부렸는데, 정작 가장 힘들었던 일은 꺼내지도 못했거든요. 해서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하니 오히려 신경쓰실까봐 매년 회사에서 보내던 쌀도 따로 사드렸을 정도니까. 그렇게 노력한다고 했는데, 할머니를 못 본다 생각하니 더 말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차라리 말할 걸 그랬지 라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한테 솔직하지 못한 손주가 되었다는 게, 그렇게 할머니의 자랑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니까. 어쩌면 그냥 내가 속 시원하려고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할머니의 마지막 제사를 할쯤에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회사를 그만둔지도. 그게 그렇게 울컥 울컥 하더라고요. 출근길에. 퇴근길에.


#5

할머니. 지금은 다른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곳에서 일하진 않아요. 매년 쌀을 보내주는 회사도 아니고요. 하하.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해요. 최선을 다해요. 힘들 때도 있는데 더 행복하고 더 좋은 시간이 많아요. 좌충우돌 하겠지만 적당히 흔들리고 단단하게 지켜갈게요. 앞으로 더 좋은 회사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할머니랑, 보낸 시간 동안 배운 게 많으니까. 제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람에 대한 애정은 다, 할머니에게 처음 배운 거니까요.


얼굴을 마주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나는 할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선을 다한 손주였는데, 그렇게 보내드리지 못해 그게 마음에 너무 걸렸어요. 지난 1년 동안은. 지난 9월에는 더, 그랬어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게요.

할머니, 잘 부탁해요. 사랑해요.



201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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