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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Dec 03. 2019

노래를 잘한다는 건

#1 노영심 -그리움만 쌓이네


노래방을 좋아한다. 노래 부르는 것을 즐긴다. 술 마시고 말고, 회식으로 말고, 그냥 맨 정신으로 가서 부르고 듣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좋아한다는 것이 잘한다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음. 아주 적확한 예가 있다. 답답한 마음에 노래방을 간다고 하자. 그럴 땐 뭔가 시원하게 고음을 질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뭔가 그러면 속이 확 뚫릴 것 같아서. 그래서 평소 잘 부르지 않던 락발라드를 골라본다. 플라워, 야다, 뱅크 등등 그 뭐랄까, 1980년대 출생의 남자 사람 대부분이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 말이다. 그러고 마이크를 잡아서 절정인 부분에 도달하면, 언제나 그렇듯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답답해진다. 화가 난다. 풀리지 않는 난제. 노래방 분노 해소 뫼비우스의 띠.


사실, 높은음을 잘 올린다고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못 올려서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왜냐하면 못 올리는 거랑 상관없이 노래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노래에 알맞은 ‘맛’을 얼마나 잘 내느냐가 노래를 잘한다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음역대의 ‘맛’을 잘 표현할 수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니까. 각각의 노래엔 알맞은 창법이, 음색이, 호흡이, 감정이, 강약이, 너무도 많은 게 필요한데, 아니 어떻게 고음만이 노래를 잘하는 기준이 될 수 있냐고! 그렇다면 곽진언은 죽을 때까지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먼저다. 음정, 박자 등 노래 잘 부른다 라고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 말이다. 이는 사람마다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복면가왕을 보며 “아오 뭐 노래가 저래!”라고 하는 순간 옆에서 또르르 눈물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거다. 아무리 기교 넘치게 불러도, 아무리 높은음을 질러도, 아무리 발음이 좋고 발성이 좋아도, 듣는 사람이 감흥이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표현해서 듣는 사람에게 적절하게 전달되느냐가 관건인 거다. 그래서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노래를 잘 부르지 않지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들었던, 가장 좋았던 노래는 바로 이 곡이다. 그리움만 쌓이네. 부른 사람은 원곡자 여진도 아니고 노영심도 아닌 우리 엄마. 장소는, 그렇다. 온 가족이 함께 갔던 어느 노래방. 명절이면, 해가 바뀌는 때면, 온 가족이 모이면 자꾸만 노래방에 가자고 조르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다 같이 갔던 어떤 겨울날. 아빠 한 곡 누나 한 곡 나 한 곡의 순서가 암묵적인 룰로 지켜지던 그때. 당신도 한 곡 하라던 아빠의 끈질긴, 조금 질척거리는 권유에 또 못 이겨 불렀던 엄마의 노래.


아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구나. 할머니와는 트로트를 불렀고 아빠는 노래 부르는 걸 즐겨하고 누나는 워낙 잘 부르고 할아버지는 ... 왠지 군가를 부를 거 같은 집에서, 나는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셔서 같이 많이도 들었건만. 엄마의 목소리를 매일매일 들었으면서도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었다. 멜로디를, 박자를 따라 힘겹게 한 음 한 음 쫓아가며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솔직해서. 그동안 모르고 지내왔던 엄마 목소리의 민낯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그게 죄송하면서도 놀라우면서도, 좋았다. 가사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오롯이 집중해서 부르는 엄마가, 그 노래와도 너무 잘 어울려서. 그리움만 쌓이네-라고 할 때에는 왈칵하고 울음이 나올 뻔했으니까.


그래서 종종 들었다. 엄마 몰래 핸드폰에 녹음해서. 헛헛한 마음이 들면,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노래들을 듣다가도 엄마의 노래를 찾았다. 엄마가 알면 기겁했겠지만. 그렇게 나의 가왕은, 나의 어머니가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2019.12.03.


노영심 - 그리움만 쌓이네

https://youtu.be/xeFf7RKUW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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