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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Dec 28. 2019

2020년이라니, 정우야

그때 알아두면 좋았었을.


슬프지. 갑자기 이사라니. 전학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줄 알았는데. 걱정 마. 생각보단 잘 적응해. 처음에 좀 낯을 가리긴 하는데 네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게 보내게 될 거야. 오히려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 문제지. 여기는 다 아파트라, 맞벌이라 친구는 가까이에 있고 빈 집이 많거든. 그래서 엄마가 후회해.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좀 더 공부하는 습관을 붙이고 이사 갔어야 했다고. 나중에, 슬프게도 재수라는 걸 하게 될 텐데 엄마는 그게 다 이때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해. 그냥,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뿐인데.

지구는, 멸망하지 않아. 쓸데없이 노스트라다무스 말에 신경 쓰지 마.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없어. 어차피 성격상 믿지도 않을 테지만. 컴퓨터 벌레 같은 것도 없어. 아무것도 고장 나거나 변하지 않았어. 갑자기 버튼이 눌러져서 핵폭탄이 날아가거나 그러지도 않아. 이건 좀 성격상 신경 쓰일 테지만 그럴 리 없어. 아니, 그 정도로 멍청하겠니. 그렇다고 전쟁이 나거나 통일이 되지도 않더라. 김일성 죽으면 막 금방이라도 나라가 하나로 될 거 같았잖아. 김정일이 죽을 때까지도 별 일 없어. 조금 좋아질 것도 같았는데. 잘 안 되더라고. 그냥 어느 설날부터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파주에 가면 돼. 안 그런 척하셨는데 조금 기대를 하셨나 봐.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더라. 되게 신기할 줄 알았던 화상통화도 막상 가능하게 되니까 잘 안 해. 막 맨날 얼굴 보고 통화할 거 같지? 연인이 멀리 있거나 가족이 먼 거리에 있지 않으면 잘 안 쓰더라고. 서로를 마주하긴 커녕 오히려 메신저 때문에 난리지. 시든 때도 없이 연락하는 사람, 숫자 1 하나 안 줄어들어서 연연하는 사람, 읽은 건 맞는데 답이 없다고 전전긍긍하는 사람 같은 다양한 이가 넘쳐나게 돼. 지금은 이해 못하겠지만 조금 이따가 삐삐라는 게 생기거든? 그게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돼.

뭐, 좀 변한 것도 있어. 연애하기 전에 어디 김 씨인가 궁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동성동본이 사라졌거든.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조선시대에 양반과 노비의 비율을 생각하면. 사실, 우리 집도 좀 의심은 가잖아. 경주 김 씨인데 할아버지 고향이 백두산 아래, 압록강 근처인 거 알지? 그 시대에 경주에서 혜산까지 가려면.... 아, 좀 재미있는 변화도 있다. 이제 TV에서 염색한 연예인을 볼 수 있어! 놀랍지! 두건을 두르는 식으로 누가 봐도 어설프게 가리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거지. 근데 문신은 아직도 자유롭게 볼 수 없어. 이건 또 뭐가 다르다고. 그리고 이혼한 연예인도 TV에 자유롭게 나와. 그들이 모여서 노는 프로그램도 생길 정도니까. 이혼이 엄청난 죄처럼 여겨져서 자숙하고 눈치 보던 때가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난 발전이지? 이걸 ‘발전’이라고 이야길 해야 하는 게 이상하지만.

2000도 아니고 2020이야. 무려 20년이 더 지난 거라고. 생각보다 시간이, 엄청 빨리 가. 그렇다고 인조인간이 나타나거나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진 않지만. 이과 애들이 좀 빠진 거 같아. 분명 이 즈음엔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더라고. 고작 이제야 전기차라니. 게으른 녀석들. 근데 그래도 웬만하면 나중에 이과를 선택해. 그게 취직이 잘 되거든. 그게 짱이야. 물론, 그렇게 안 되겠지만. 쓸데없이 문과에 재미를 느껴가지고. 그리고 또 그렇게 네 맘대로 안 되는 게 하나 더 있어. 2020년에는, 할머니가 없어. 처음으로 할머니 없이 해가 넘어가는 밤을 맞이하게 될 거야. 방한 용품이 필요 없는 적당히 추운 날에도 할머니가 떠주신 장갑을 주머니에 넣어두고 괜히, 만지작거리는 겨울을 보내게 될 거야. 살아오며 모든 게 다 낯설고 처음이지만 그중에 가장 어색하고 또 어려운 일일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빼먹지 말고 가족과 함께 31일 밤엔 MBC가요대제전을 보렴.

건강, 하자.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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