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여자의 엄마는 시집살이를 '글'로 배운 분이셨다. 시댁에 자주 찾아가 뵙고 시부모님께도 잘 해야지... *서방도 잘 챙기고, 결혼을 했으니 니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그런 거란다. 딸 셋 놓고 낳은 막대 아들이 얼마나 귀하겠니. 엄마, 엄마는 시부모님도 안 계시면서 시집 살이가 어떤 건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게다가 엄마는 아들도 없잖아. 딸밖에 없는 사람이 딸도 귀하다고 해야지. 무슨 아들 타령이야. 으이구, 누구네 집 딸인지 입만 살아가지고. 엄마가 얘기하면 네, 알겠습니다 해야지. 시집가기 전에는 안 그러더니 시집가고 나니깐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엄마가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하니깐 그러지, 시집가고 내가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엄마가 앵무새가 된 줄 알았어. 아니면 엄마 혹시 친정엄마 AI 아니야? 요즘엔 기계도 그렇게 똑같은 말말 반복 안 해. 그리고 엄마 얘기는 너무 교과서적이야. 하여튼 실상을 모르고 글로만 배운 사람이 더 무섭다니깐. 며느리는 뭐 감정도 없고 쓸게도 없고 그런 사람인가? 뇌도 없고? 어떻게 덮어놓고 시부모님, 남편 걱정만 하면서 살아? 그게 다 엄마가 며느리 생활을 글로 배워서 그래. 그 애환(?)을 모른다고. 며느리는 내가 선배야. 장난을 섞어가며 엄마를 놀리거나 엄마와 수다를 떨 때 여자는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작과 끝을 '며느리의 도리'로만 이어가는 엄마와의 대화가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 내 인생도 있는 거야. 내 결혼생활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 중에 하나라고.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어. 돈을 많이 못 벌어도, 잘 났지는 못해도 분명 여자에게는 여자를 떠받치는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엄마도 그중에 한 부분이라고.
신혼 초 뻔질나게 시댁을 드나들 때 가 있었다. 12월 여자의 결혼을 시작으로 신행 인사, 친척 어른 인사, 시어머니 생신, 설 명절, 고모네 돌잔치, 시아버지 생신, 어버이날, 여름휴가, 세 번의 복날, 추석 명절, 가족모임 식사, 시부모님 병문안에서 다시 시어머니 생신으로 이어지는 무한 루프를 발견하고서야 여자는 한 걸음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끙끙대며 꾸려나가는 자신의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움직이는 건 자본이 아니라 여자의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해 영혼을 갈아 넣고 있을 때, 여자는 자신의 집에서 모든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당신께서 차린 생일상에 딸이 참석만 하면 기쁜 것이었고, 거리가 가깝지도 않은 어버이날과 생신, 명절을 함께 뭉뚱그려 용돈을 드려도 그저 고마워하셨다. 그것조차 드리지 못할 때도, 엄마 미안해하면 충분했다. 힘들면 엄마가 돈 좀 부쳐 줄까? 힘들게 살아도 딸자식을 위한 주머니는 항상 열어 놓고 사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여자는 영혼을 갈고 있어도 힘이 났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혼 첫해 시아버지, 시어머니 생신이 생각났다. 가족 행사가 잡히면 남편의 누나가 시간과 장소를 통보해 줬다. 시부모님들께서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여자에게 '이제 며느리 밥 좀 먹어보자'라고 하셨지만, 다행히 대부분은 외식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위의 스케줄에 맞춰진 모임 시간은 여자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자유롭던 친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며느리의 일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좀 섭섭했다고 할까. 시간을 맞추자니 번번이 허둥지둥 시부모님을 모시고 식당으로 가야 했다. 그날은 시어머니의 생신 자리로 큰 중식방의 룸이 예약되어 있었다. 시부모님과 여자의 부부, 그리고 고모네 세 식구가 자리를 함께 했다. 각자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식사를 하나씩 주문하자고 하고, 회전판에는 탕수육이 놓여졌다. 어른 여섯 명이 와서 방까지 예약하면 요리가 막 들어갈 거라고 주인이 기대할 텐데, 이거 어쩌냐 허허. 언제나처럼 시아버지의 농담으로 시작한 저녁 식사 자리를 화기애애했다. 여자는 평소 양이 많지 않은 남편과 짬뽕 한 그릇을 나눠 먹곤 했는데 그날도 별생각 없이 둘이서 짬뽕 하나 만 주문했다.
그런데 탕수육이 한쪽에 올려진 회전판이 말이야,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멈추지 않더라고. 아이고, 그걸 어째. 그때 새색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먹는 거 밖에 없는데. 누가 어디 말이라도 걸어주나. 맞아 맞아. 짬뽕 한 젓가락 먹고 할 일이 없어서 멀뚱멀뚱 단무지만 쳐다보고 있었다니깐. 그럴 때는 손을 딱 뻗어서 회전판을 니 앞에 딱 멈췄어야지. 안 돼 안 돼. 조카도 탕수육 좋아하잖아. 그리고 사위가 먹성이 어찌나 좋은지 돌림판이 휙휙 돌아가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멈춰. 사위는 막 먹는데 며느리는 왜 못 먹어? 너도 막 먹지 그랬어? 말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여자의 언니는 꼭 농담처럼 한마디를 던지고 본다.
가족 간의 오고 가는 대화 속에도 마땅히 맞장구라도 칠 구간을 찾지 못한 여자는 행여나 누가 볼세라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결국 철저히 며느리는 배제된 대화의 흐름속에서 시선 둘 곳을 몰라 애꿎은 단무지만 쏘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애당초 탕수육은 고모네 가족 앞에 고정된 지 오래였고, 엄마와 딸 사이의 대화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여자는 쭈뼛쭈뼛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그저 지나가는 짬뽕 면발이라도 좀 휘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는 그래. 먹을 거라도 붙들고 있어야 좀 덜 민망하지. 맞아. 그래서 그때부터 남겨도 내 음식도 꼭 시키게 됐어. 가족 간이라도 일종의 신입이 들어왔는데 말도 좀 걸어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됐어. 조용히 밥이나 먹고 오면 되지. 집에서 하면 상 차려야지, 상 치워야지 그 정도면 아주 감사한 거야. 오랜만에 마주 앉은 여자의 언니는 짬뽕을 보자 떠오른 여자의 기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래도 언니가 엄마처럼 AI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결혼 첫해는 생일상을 차려 드렸어야지. 너도 참... 드디어 친정엄마 등장이오! 옆에서 내내 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만 있던 여자의 엄마는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그다음 시아버지 생신에는 내가 또 ....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과장되게 들썩거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엄마도 생각나지? 나 손 다쳐서 팔 깁스한 거? 정말이야? 응, 일하다가 손 다쳐서 꿰맸는데 병원에서 거의 팔뚝까지 깁스를 해놓은 거 있지. 병원에서도 내가 첫 시아버지 생신 앞둔 며느리인 줄 알았던 거지. 큭큭. 아이고, 너 내 딸 맞아? 내가 이렇게 키운 거야? 엄마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칼 쓰고 가위 쓰면 손 다치기 예사지, 그게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이제 안 들을란다. 엄마한테도 자세히 말 안 했어. 그때도 이렇게 딸 걱정은 안 하고 세상 무너지는 소리를 하면서 얘기하지 말라고 그러셨어. 근데 더 문제는 나 일본 가는 날이 딱 아버님 생신인 거야. 아니 그걸 몰랐어? 여자의 언니의 눈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몰랐지. 계속 *서방한테 물어봤는데 음력이라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서 얘기해 준 날이 틀렸더라고. 그래서 일본 가기 전에 미리 식사라도 모시고가면 어떨까 했더니 무슨무슨 식당으로 오라고 먼저 말씀을 하시는거야. 근데... 식당에 들어가서 방문을 딱 여는데, 형님들께서 다 와 계시데! 에휴... 그때 내 눈에는 시누이들이 아니라 진짜 '형님'들처럼 보였다고. 그 형님 알지 형님? 여자는 양쪽 어깨를 한것 세워 보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식당 안에 큰 방안에 들어갔는데, 형님들이 쫙... 에휴. 형님네 가족들 쪽은... 자매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위들이랑 애들까지 오랜만에 만나서 잔칫집이 따로 없고, 나는 테이블 끝에 매달리듯 앉아서는... 건네편에는 시부모님께서 앉아 계시는 데 절간이 따로 없더라. 시어머니는 돌아앉으셔서 노는 애들 하나씩 데려다가 고기 먹이고 계시고, 아버님도 별말씀도 없으셨어. 너는? 나는 팔에 깁스해가지고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삐걱 거리고 있었지. 뭐
시누이 형님들. 어, 며느리는 어서오고
여자는 그때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생신을 일주일 앞 둔 식사 자리였으니 당연히 시부모님만 뵙게 될 줄 알았는데, 방에 들어섰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다음 해 생신에는 다른 지역에 계신 형님들께서 안 오신 걸 보면 그날은 아마 여자를 벌 주기 위한 자리였던 것 같다. 내내 여자에게 내려지던 침묵과 여자를 본체만체하는 시댁 식구들 태도는 그 어떤 꾸지람보다 여자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결국 한구석에서 질긴 고기마저 차마 삼키지 못하고 있던 여자와 남편에게 시어머니는 먼저 집으로 가라고 하셨다. 밥을 다 먹고 시댁에 가서는 어떡해야 할지 내내 걱정하던 여자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시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니에요. 저희도 집에 가야죠. 아버님 생신인데 밥만 먹고 어떻게 가나요? 해야 하는 것이 며느리의 모범 답안인지 아닌지 여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사실 그 때 형님들과 함게 시댁에 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고 하면 그건 너무 오버였던 걸까.
그 길로 후다닥 도망치듯이 집에 왔지 뭐... 어쩔 때는 시부모님보다 시누이들이 더 무서워. 요즘 시누이들은 옛날하고 달라. 엄마 친구들도 얘기 들어 보면 다 우애 있게 잘 지낸다고 하더라. *서방 누나들인데 뭐 그렇게 그러려고?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너희들만 잘 살면 되지. *서방 누나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너도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 살다 보면 제대로 못 챙길 수도 있고, 그러면 다음에 더 신경 쓰면 되는 거야.
모범생처럼 또박또박 내뱉어지던 친정엄마의 '며느리 도리 론'도 처음과 다르게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연년생으로 딸 셋을 내리 낳고 얻은 아들이니 며느리에 대한 기대도 크셨겠지. 니가 더 잘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그런지 형님들까지 내가 얼마나 잘 하나 다 감시하고 있는 것 같단말이야. 시댁에서 보면 사위들은 앉아서 tv만 보고, 상 들어오면 밥도 엄청 먹고 그러고 또 잔다. 그런데 나만 부엌에서 시어머니 뒤만 따라다니면서 종종 거리고 있어. 그건 좀 잘 못 된 거 아니야? 며느리도 사위들처럼 남의 식구인 건 맞잖아. 딸들 먹여 살리는 사위가 그럼 어렵지 안 어려워? 엄마, 그건 아니다. 우리 각자 먹고살잖아. *서방이 나 안 먹여 살려도 엄마는 *서방 어려워하잖아. 누가 너더러 그렇게 살래? 지가 시집 가놓고 이제 와서 누구한테 불만이야? 엄마는 왜 또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 여자는 엄마 앞에서 꽥꽥 소리도 지르고 발도 동동 구르며 까불지만 그럴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신혼여행 갔다 온 날 시어머니가 부엌에서 나한테 그러셨어. 딸 같은 며느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잘 지내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더라. 나쁜 뜻은 아니셨겠지. 그건 세 딸을 시집보낸 친정엄마의 통찰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건데... 시부모님과 며느리는 서로 각자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 우리의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힘은 애정이 아니라 의무의 이행 여부인 거지. 그런데 나는 철 없이 계속 애정을 바란 것 같아. 나를 좀 봐주기를, 내 입장도 좀 이해해 주기를... 마치 엄마처럼 말이야. 그런 건 애당초 안되는 건데... 나는 어리석고 멍청한 며느리야. 차리라 우리 시부모님이 COOL하시다니깐.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말이야... 시부모님 생신은 꼭 며느리가 나서서 상차리고 축하 난리법석을 떨어야 하는 거야? 며느리가 아들따라가서 조촐하게 박수 쳐드리는 건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거냐고? 엄마, 나는 어찌된게 결혼하고 맨날 벌받는 기분이야. 그거 이해돼?
나는 여전히 엄마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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