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너도 반반결혼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른 다는 거야 ? 응, 그냥 인터넷에서 주워 들었어. 그게 뭐야? 내가 보기에는 남녀가 둘이서 힘 합쳐서 잘 산다는 뜻인거 같더라고. 그래서 너도 반반결혼 했다 이거야? 그렇지. 처음에 *서방이 결혼 얘기 했을 때 내가 물어봤거든. 우리 둘이 중심이 되는 결혼 할 수 있겠냐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뜻인 것 같아. 부부가 주체가 돼서 둘이 힘 합쳐서 사는 거.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여자는 마치 노래라로 부르는 듯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부모님 제쳐두고 둘이 주체가 되는 바람에 네가 시부모님 눈치 엄청 보게 된거잖아. 뭐... 그건 그렇지. 그 말에 여자의 흥얼거림은 멈췄다. 시부모님도 며느리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아들이 집 떠난 모양새가 돼서 황당하셨겠다. 아들은 영원한 아들이지. 떠나길 어딜 떠나? 다만 아들한테 가족이 생긴 거지. 근데 하루종일 부부가 뭐든 반반 나눌려면 어지간히 피곤하겠네. 니가 시댁에 가서 부엌에서 일하고 그러면 *서방도 우리집 가서 일하고 그래야 하는 거야? 그건 생각만 해도 좀 웃긴다. 여자는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남편을 떠올리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니, 그게 아니지. 둘이 하루종이 니가 뭘 했니, 내가 뭘 했니 나누는 게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며느리가 시댁에 가서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지. 부부가 중심이 되니까 부모님으로 부터 독립하는 거야. 아이고, 그건 무슨 영화네 영화. 니가 아무리 반반타령을 해도 그런 날은 안 올거다. 며느리가 그럼 시댁에 가서 손님입네하고 쇼파에 앉아서 차라도 마실래?
언니의 말대로 여자에게 실제로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주는 밥을 챙겨먹고 때때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시누이의 남편에게도 여자는 거의 반사적으로 간식까지 챙기고 있었다. 사위라는 위치가 너무 편해 보여서 시댁식구인 줄 착각했다고나 할까. 아니 그저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여자는 스스로에게 둘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위는 집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여자는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정말 여자가 생각했던 것들은 영화속에나 펼쳐 질 일이었을까. 여자는 결혼을 하고 ‘며느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새 이름을 얻은 건 시부모님이나 남편, 가족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름에 지워지는 무거운 역할까지 받은 사람은 여자 자신 밖에 없었다.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결혼 전 당당히 제몫을 해내는 사람이었던 여자는, 시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저 네, 네 대답하고 할 일을 찾아 헤메는 사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자는 저절로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집안일을 잘 해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얻어내는 존재감이란 사실 안쓰러운 것이 아닐까.
이런 여자에게 누군가는 말했다. 그래도 며느리가 할 도리는 다해야 나중에 할 말도 있는 거라고요...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상대는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마치 어른이 된 듯 여자에게 이런 충고를 해 주었다. 여자는 친정엄마에게 자주 듣던 그 말을 그 사람에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결국 우리는 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자는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시댁의 경제적 지원으로 결혼 전 보다 삶의 수준이 높아진 많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또래의 남편들 능력이라는 것도 결국 시부모님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부정 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적 지원과 함께 따라오는 속박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이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자는 그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정말로 높아졌는지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 시댁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여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시댁 역시 결혼으로 인해 아들을 독립시킬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오히려 며느리가 들어왔으니 이제 진짜 가족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함께 여행도 가고 싶다고 했고, 가족끼리 시간도 가주 갖자고 했다. 여자는 궁금했다. 왜 그동안 여행도 가지 않고, 가족끼리 시간도 자주 갖지 않았는지... 그런 건 아들을 결혼 시키기 전에 실컷 하셨어야지요, 이제는 아들이 스스로의 인생을 살도록 격려해 줄 때라고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노력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자는 실제로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여자는 시댁을 생각 할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실제로 두 사람의 언쟁은 대부분 시댁을 다녀온 다음에 벌어졌다.
자립이 필요한 것은 여자와 남편의 관계 만이 아니었다. 진짜 자립이 필요한 사람은 어쩌면 부모님들인지도 몰랐다. 내 배아파 낳아서 불면 날아갈 듯 소중하게 키운 내 자식이라 해도 결국 품에서 떠나 보낼 때가 오는 것이다. 자식의 인생을 응원해주고 돌아서서 부모님의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식이 걱정되어 바른길로 끌어주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지켜봐 주고 자식의 결정을 믿어 주는 것도 그에 못지 않는 큰 사랑이 아닐까 여자는 생각했다.
너는 뭘 몰라. 결혼이 그렇게 불합리 하다면서 왜 다들 결혼하겠니? 가족은 공동체야. 결혼을 하면 돈도 더 빨리 모을 수 있고, 집도 빨리 살 수 있고, 빨리 안정 될 수 있어... 결국 다들 원하는 건 그런거라고. 공동체에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핵심은 효율성이다. 효율성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달성하려고 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여자는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 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자는 공동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으로 남고 싶었다. 그저 자신도 행복하고 싶었다.
며느리 도리라는 건 어쩌면 허상인지도 몰라. 엄마 한테 물어 봐도 그냥 며느리는 원래 그런 거고 시댁도 원래 그런거다... 이 말 뿐이야. 옛날에 한복입고 앞집도 뒷집도 다 벼농사 짓고 살 때는 말이야, 일손이 부족하니까 며느리는 일꾼이고, 자식도 일꾼이라 많이 낳고 그랬잖아. 장남은 대를 잇고 뭐 그런 시대 알지? 드라마에서나 보던 시대 말이야. 그때는 가족 공동체가 엄청 중요했을 것 같아. 사방을 둘러봐도 논, 밭 밖에 없는 그때는 가족의 노동력으로 서로를 돌보고, 서로를 먹여 살리는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많이 변했어. 초가집도 기와집도 다 사라졌는데 그 허울만 남아서 시댁이니 며느리니 따지며 서로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보면 이제 며느리 도리를 해야하는 명확한 이유도, 근거도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희망이 생겼어.
여자는 인간적인 예의로 서로를 대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영화같은 시댁의 명절 분위기를 상상하며 혼자 웃고 있었다. 언니는 그런 여자를 보며 피식 웃고 있었다. 알지? 그건 영화야, 영화. 이번 설에 가서 어디 한 번 해봐라. 아주 칭찬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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