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사람이 질문을 던졌다. 나이가 많아지니까 결혼 하기가 더 힘든 것 같아요. 왜 멋모를 때 얼른 결혼하라는 지 알 것 같다니까요. 죄 다 단점만 보이고... 도대체 남자 볼 때 뭘 봐야 되는 거예요? 여자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오다가다 인사만 하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딱히 친분이랄 것도 없었고, 대화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여자는 난감하기만 했다.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 여자의 입이 더욱 꽉 다물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재치 있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서로 웃으면서 지나가면 참 좋을 텐데... 여자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게다가 여자의 남편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좋은 남편인지 아닌지 여자는 알지 못했다. 여자에게는 세상에 없는 좋은 남편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여자는 대답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네? 질문을 던진 사람은 얼굴에서 웃음을 거두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여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피식’ 하는 웃음을 흘리더니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요... 그러니깐 나한테 묻지 말라니깐... 여자는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이제 가던 길을 가야겠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려는 찰나, 질문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장차 내 새끼 아빠가 될 사람인데... 경제력은 당연히 봐야겠고, 그런데 너무 일만 하는 사람도 별로잖아요. 어때요?
여자는 멋모를 때 얼른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가 서른을 넘기자 엄마는 여자를 볼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쟤를 그냥 고등학교만 졸업시키고 말이야, 얼른 시집을 보내 버렸어야 하는 건데... 나이만 자꾸 먹으니까 생각만 많아져가지고... 시집을 안 간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릴 때는 시집 보 낼 때라도 있지, 저 나이 먹은 걸 누가 데려가. 으이구, 이제는 네가 시집간다고 해도 오라는 사람도 없어... 쯧쯧. 여자에게 그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에는 어떤 부당함 참고 견딜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이 많은 것이길래... 게다가 어린 여자가 더 가치가 있다는 말 같아서 거부감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긴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사람은 미래의 남편을 ‘장차 내 새끼의 아빠가 될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 말 역시 그 사람 자체를 보지 않고 자신이 정한 역할에 맞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뜻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것 역시 오래전부터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들이대던 잣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결혼에 대한 본질 적인 고민 없이 서로에 대항 앙갚음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슬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여자는 더 이상 해 줄말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고 싶어질 거예요. 에이,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이에요. 결혼한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사랑은 금방 식는다고 하던데... 아니, 은근히 낭만적인 데가 있으시네요. 가까스로 쥐어짜 낸 여자의 대답에 상대방은 온몸이 간지러운 듯 자신의 팔로 몸을 안고 긁는 시늉을 했다. ‘낭만적’이라는 말을 유난히 똑똑히 발음하면서. 하하하, 그럼 전 이만... 아 네...
여자는 남편과의 첫 데이트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남편은 여자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더니, 어느 날 같이 ‘경주’를 가자고 했다. 많이 가까워지긴 했어도 친구처럼 격이 없이 지내는 사이는 아니어서 먼 길을 함께 가는 것이 영 어색할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들이를 가본 적이 언제였는지 여자는 기억나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친구들마저 대부분 스물여덟 즈음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그들에게 여자의 존재는 잊혀진지 오래였다. 여자는 마음이 떨렸다. 몇 날 며 며 칠을 고민을 하다 대답했지만, 그런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일 것 같아 깜빡 잊고 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다.
천마총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주는 조용했다. 아니,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경주에는 얼마 전 5.8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고 했다. 대한민국 지진 관측 이래 역대 가장 강력한 지진이었다. 나는 몰랐어. 음...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서 생각도 못했네. 어쩌지? 남편과 여자는 마주 보고 웃고 말았다. 어이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때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뒤 흔드는 강렬한 진동이 서로를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을. 여진이 걱정되어 경주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했다. 여자와 남편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둘러보기로 했다. 천마총을 지나 첨성대 옆을 함께 걸었다. 경주는 가을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조금 어색했지만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웃음이 나왔다. 어색함이 편안함으로 점차 바뀌고 있었다. 반월성을 넘어 안압지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웃고 떠드는 서로를 발견했다. 언제 이렇게 텅 빈 경주를 구경해 보겠어? 그러게. 여자는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아직도 여진이 느껴진다는 그 땅이 남편과 함께 걷는 그 순간 여자에게는 너무나 견고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지진이 흔들고 지나간 텅 빈 경주를 걷던 그 시간을 여자와 남편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결혼에서 사랑 말고 선택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 여자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낭만적’이어서가 아니었다. 여자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서 체화된 체념과 수긍으로 스스로를 구하고자 했는지도 몰랐다. 남은 건 ‘사랑’ 뿐인 것이다.
연애를 거쳐 함께 살고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여자를 당황시킨 건, 삼십 년 넘게 따로 떨어져 살아서 다른 점 투성이라는 ‘남편’이 아니었다. 아니, 왜 치약 짜는 거 때문에 싸우고, 양말 뒤집어 놓는 거 때문에 싸우고 그런다잖아요. 나는 면이 좋은데 남편은 밥이란 국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사람이더라는... 결혼하고 보니깐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어서 사소한 거 때문에 신혼초에 엄청 싸운다고 하잖아요. 여자는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신나게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 말들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혼초에는 으레 많이 싸우는 법이란 이야기가 하고 싶어 억지로 끌어다 놓은 이유인 것만 같았다. TV나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흔하디 한한 말들을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는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처음 남편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여자는 누군가와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그리웠다. 항상 남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신경 쓰는 것이 피곤했고, 불규칙한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했다. 여자는 자신이 게으른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계속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이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니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설레는 단계가 지나자 여자는 연애와 결혼이라는 생경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차분하다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감정이 끌어 오르고 또 식었다. 냉정하게 잘 추스르던 마음은 별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났다.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에 여자 안에 숨어 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튀어나왔던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다가도 문득 사랑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여자는 끊임없이 끌어올려지는 자신의 진짜 모습에 당황하고 또 당황해야 했던 것이다. 여자는 생각했다. 신혼초에 많이 싸우는 건 남편이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 짜서가 아니라 그런 사소한 것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낯설게 느껴져서는 아닐까.
김치를 먼저 볶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나는 김치를 제일 나중에 넣는데... 뭐야? 그래도 내가 요리 경험이 더 많은데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그게 아니라, 내가 진짜 맛있는 김치볶음밥 해줄 테니까 기다려봐. 그동안 못 먹어 본 맛일 거야. 됐어. 나는 그냥 라면 먹을래. 나 원래 김치볶음밥 안 좋아해. 뭐야? 내가 퇴근하자마자 여보 줄려고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때 여자는 남편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이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혹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순간 평생 엄마 말을 무시하던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일까. 자신도 엄마처럼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자기 생각이 없어 보일 만큼 우유부단한 여자가 남편에게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남편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잃은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당황스러워서.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낯설기만 해서.
두려움과 불안함이 많은 여자를 남편은 언제나 잘 다독여 주었다.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자가 그런 남편을 알아본 것이었다. 결혼할 때 사람 그 자체를 봐야 할 이유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잘 모른다면 상대의 어떤 면을 봐야 하는 지도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결혼 전 여자 앞에 펼쳐져 있던 많은 고민과 결정들이 결혼 후에도 똑같이 펼쳐져 있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실망하거나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결혼 생활과 달라 실망하기도 하고, 자신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미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오히려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스스로 더 이상 자신의 손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남편의 격려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데 좀 더 용기를 갖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에도.
여자의 인생을 구원해 준 것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성공이 아니라 남편의 따뜻한 손일 지도 몰랐다. 사랑이 아니라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자신감이 여자에게는 없었다. 여자는 번번이 넘어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남편의 따뜻한 손을 잡고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인생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결국 여자는 결혼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며 자기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걱정에 빠져 남겨진 나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다. 여자에게 결혼은 또 하나의 성장 과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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