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거야.
아이가 계절을 오롯이 마주하기를 바란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산다는 건 얼마나 큰 감사인지.
여름마다 아이는 땀으로 흠뻑 젖도록 뛰어다녔다. 땀범벅인 매일 오후를 위해 면손수건 두 세장은 엄마의 가방에 필수로 넣어 다녔다. 어떤 날은 면티 하나를 더 넣어 다니기도...
대학생 시절, 여름이 무서웠다. 집 밖을 나서면 시작되는 땀이 등을 다 적시면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윗 옷을 갈아입고 가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의 여름은 가방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니 필요이상으로 긴장하고, 어설펐던 이십 대여서 그랬던 것 같다.
바람이 유난히 시원하게 부는 날이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아이는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활시위를 당기며 노는 중에도 이마에서 땀이 줄줄, 관자놀이에서 땀이 뿜어져도 한 팔로 쓱 닦는 걸로 끝났다. "헉, 괜찮아? 더우면 말하지. 땀이 이렇게 난 줄 몰랐네..." 하면 "괜찮아요~" 하고 씩 웃었다.
나갈까? 하는 말 한마디에 아이와 함께 걷고 뛰며 땀 흘렸다. 동물원에 갔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다.
너무 더운 날에는 시원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한여름 땡볕을 피해 부지런히 나가 놀았다. 산책길에는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과 바람이 있었고 양재천과 한강은 물기운에 조금 더위가 식는 기분이었다. 뜨거워진 볼은 편의점에서 사 먹는 시원한 생수 한 병으로 충분히 식혔다.
땀을 흘리고 나면 개운한 기분, 땀이 식어가며 시원해지는 기분으로 남산을 오르고 거리를 걸었다.
아이와 함께하니 내 등에 흐르는 땀이 부끄럽지 않았다. 여름이니까. 누구나 더운 때니까.
그리고 올해 처음, 아이에게 등목을 알려줬다. 개구리 의자에 손을 짚고 엎드린 채로 미온수를 등에 끼얹어주니 아이가 깔깔깔 웃었다. "이게 등목이야, 여름에 등목이 얼마나 시원한데~" 하며 아이에게 여름을 나는 방법을 소개했다. 냉수로 하기엔 우리 아기가 너무 어리고 소중해서.. 우선 미온수로.
삼림욕 하러 가자는 말에 진저리를 치는 지인은 "이 여름에 어딜 돌아다녀!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시원하게 있어야지!" 했다. 여름 태양의 열기를 온몸에 듬뿍 받고, 온몸의 신경세포가 더위를 견디는 힘을 갖게 되면 추운 겨울에는 또 그 추위를 잘 견뎌내지 않을까? 이건 단순히 내 생각. ㅎㅎ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있어서 아랫목이 더 따뜻한 법. 겨울에도 우리는 밖으로 나간다. 아이가 한참 어릴 때는 코에 차가운 바람이 조금만 들어가도 콧물과 열, 기침으로 고생해서 사실 겨울은 용기내기 힘든 계절이었다.
창밖으로 추운 날에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도 저렇게 뛰면 좋겠는데.... 워낙 허약한 아이라 생각으로만 그쳤었다. 뛸수록 몸이 건강해지는 걸 알면서도 당장 오늘 밤에 훌쩍이고 기침하는 모습이 여간 딱한 게 아니어서 도전하기 힘들었다.
아이가 자라고 영글면서 엄마의 용기도 커졌다. 작년 겨울,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아이가 부쩍 단단해졌다. 축구 후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신나게 뛰노는 모습이 날이 갈수록 감사했다. 아이는 눈에 띄게 튼튼해져 갔다.
황소바람이 온 산을 에워싸는 추운 날에도 동물원을 씩씩하게 거닐 만큼 아이는 부쩍 자랐다.
덕분에 올 겨울도 아이와 신나게 밖으로 뛰어나갈 작정이다. 차가운 공기 중에 겨울이 냄새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계절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안다. "엄마 이제 가을이 다 가나 봐요."
우리의 추운 날은 또 추운 날을 만끽할 많은 즐거움으로 차곡차곡 채워야지.
땀이 나는 여름에도, 내복을 두껍게 껴입어야 하는 겨울에도 항상 아이에게 이야기해 준다.
"원래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거야. 더운걸 잘 느껴야 추운 날에 건강해지는 법이거든."
*지난여름 방학 사촌들과 노는데, 모두 땀이 나서 힘들다고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우리 아이가 던진 한 마디.
"원래, 여름은 더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