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43. 나는 손맛이 좋잖아!

by Aloha J

불안도가 높은 엄마는 독점육아 시절 아기를 한 손에 안고 집안일을 했다. 불을 사용하는 식사 준비 시간에만, 아기 식탁 의자에 앉히고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생중계하면서 아이와 함께 주방에 있었다. 뒤에서 옹알대는 소리에 열심히 대답해 주며, 아이를 살피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었다.


아이가 버둥대며 식탁 의자를 거부하면서부터 불을 쓰거나 칼을 쓰는 경우만 빼고 아이를 한 팔에 안고 주방일을 했다. 사과가 깨끗하게 닦이고, 쌀이 춤을 추며 물속에서 휘도는 모습을 보며 제 손을 뻗어 그것들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나무로 된 소꿉놀이 칼과 냄비를 갖고 와서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음식 만드는 놀이를 즐기며 함께 식사를 준비했다.


작은 제 소꿉놀이에 흥미를 잃고는 수납장에 있는 냄비를 꺼내달라고 했다. 그래? 그럼 우리 제대로 놀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집에서 안 쓰는 야외용 휴대 버너를 꺼내고 냄비와 국자를 꺼내줬다.

아이는 신이 나서 그 안에 펠트로 만든 놀잇감 과일과 샌드위치 재료를 한가득 넣고, 나무로 만든 야채와 과일을 듬뿍 넣었다.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달라고 하고는 국자로 휘휘 저으며 엄마 입에도 한 입 넣어주는 시늉을 했다. 냄비에 프라이팬에... 깨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주방기기가 모두 아이의 놀잇감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 없어진 국자나 밀대를 아이의 놀이 상자에서 찾기도 했다.


조용하면 사고 치는 거라 했던가. 조금 더 자라자 화장실에서 물을 떠 와서 냄비에 붓고, 나무 과일에, 팰트 채소에, 떡뻥도 와르르 넣고, 물감도 부으며 놀고 있었다. 집중하는 오므려진 입을 하고는 마법의 수프를 만드는 거 마냥 열심히 물을 바닥에 흘리며 소리 없이 엄마의 집안일을 더해주는 날도 더러 있었다.


4살이 되면서 케이크 살 때 받는 플라스틱 빵칼로 두부 썰기를 시작했다. 오랜 수련(?) 기간을 거쳤으니 이제 실전으로!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썰기를 시작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혼자서 두부 자르는 것쯤은 쉽게 해냈다. 덕분에 그런 날은 두부를 듬뿍 먹었다.


어느 날, 계란찜을 준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깨진 알 안에서 뭉클한 액체가 나오고 노란색 덩어리가 으깨지고 퍼지며 색이 달라지는 걸 집중하며 보더니, "내가 할래요!" 하며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손을 잡고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자신만만하게 혼자 하겠다며 힘차게 돌리는 바람에 바닥부터 벽, 창문, 싱크대 전부... 세제와 락스로 주방 대청소를 했다.


애호박이나 가지, 두부 자르기가 익숙해지자, 아이는 쌀 씻기에 도전했다. 거품기로 쌀을 씻는데, 속도와 힘을 조절하며 하는 법을 잘 배우고 해냈다. 그리고 다시 계란 휘젓기에 오랜만에 도전.

아이가 잘 섞어준 계란물에 야채를 다져 넣고, 간을 해서 근사한 계란찜을 완성했다.

"우와! 우리 00이 손맛이 정말 좋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계란찜이야!" 엄마의 호들갑에 아이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그 뒤로 계란찜을 하는 날은 자주 아이가 주방으로 달려온다.

"엄마! 내가 손맛이 좋잖아요! 내가 할게요!"

비린 날계란이 상판에 튀고, 바닥이 쌀 씻는 물로 홍수를 이뤄도 아이가 즐기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함께 만든 계란찜, 함께 만든 밥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으니까.

아이는 그렇게 열심히 주방에서 자신의 손맛을 뽐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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