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장난감 사는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내 아이가 원한다면 뭐든 해주고 싶은 것도 역시 부모의 마음이다.
또한 내 아이가 바르게 자라서 사회에서 제삶을 잘 살도록 잘 키우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무한한 사랑을 물심양면으로 표현해주고 싶으면서도 아이가 곁가지 없이 반듯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태어나 내 품에서 곤히 자고 있는 이 작고 소중한 아기를 보며 "엄마가 우리 아가를 위해 뭐든 다 해줄 거야!"를 외치지만 조금 더 크고 나면 안다. 뭐든 다 해줄 수는 있지만 뭐든 다 해주면 안 된다는 걸..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출산 후 양육에 대한 방향성과 고민을 좀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외부 활동이 제한되면서부터 아이가 만나야 할 새로운 상황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적었기 때문이다.
가족 친지를 만나는 것부터 친구들과의 왕래도 모두 멈춘 상황이 되니 아이의 공급원은 오롯이 부모가 되었다. 그 상황에 또 독점 육아를 하다 보니 공급의 기회와 양을 내가 조절할 수 있었다.
약국의 5천 원짜리 장난감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매번 약국에 갈 때마다 손에 쥐고 나오는 일은 허용하지 않았다. 약국=장난감 얻는 곳이라는 개념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
백화점과 마트 장난감 코너는 구경을 하는 곳이지 갈 때마다 손에 하나씩 쥐고 오는 곳으로 만들지 않았다.
원하는 장난감을 바로 사주지 않아서 길바닥을 금침 삼아 편안히 누워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아이들을 적잖이 봤던 터라 그런 사태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처음 태어나서 3살까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받는 날은 설날, 어린이날, 생일, 추석, 성탄절로 정했다.
날짜와 시간에 대한 개념은 없지만, 아이에게 장난감 받는 날을 정확히 알려주고 딱 그날만 장난감을 근사하게 포장해서 선물했다.
덕분에 약국에 가서 처방전 약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구경을 하지 손에 장난감 하나를 집어와서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응, 오늘은 장난감 사는 날이 아니지? 구경하자~재미있게 구경해." 하며 구경하는 시간을 얼마든지 기다려줬다. 옆에서 다른 아이가 장난감을 안 사준다고 울고불고하는 걸 볼 때면 놀란 표정으로 내 품에 달려와서 그 광경을 심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그런 광경을 종종 목격하면서 어느 날은 떼를 써보겠노라 시동을 걸려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병원에 갈 때부터 이야기를 미리 해줬다.
"우리 00 이가 선물 받는 날은 설날, 어린이날, 생일, 추석, 성탄절이지? 오늘 약국에 가면 구경만 하는 거야. 알았지?"
4살부터 장난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살짝 규칙을 바꿨다. 장난감 받는 날은 '어린이날, 생일, 성탄절' 3번으로 줄였다. 다행히 전에 선물 받던 날이 시간 개념으로 세워지지 않아서였는지, 아이는 일 년 중 3번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전에는 엄마가 아이의 흥미를 살펴서 골라서 사줬다면 4살부터는 본인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콕! 집어서 정해서 받기를 원했다. 적절한 변경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꼭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한 번에 두세 개 받게 됐고, 아이는 예전부터 해준 말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기는 거야. 그렇지 엄마?"
정해진 날에는 확실한 보상을 지켜주자 아이는 장난감 받는 날을 잘 기다렸다.
그 작은 아이가 갖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을까. 장난감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고 있으면 엄마 마음에도 '아, 그냥 사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엄마가 약속을 어기면 아이는 절제와 조절하는 마음을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 같아서 마음을 얼른 바꿨다. 하지만 알고 있다, 정말 많이 참고 있다는 걸.
그래서 우리 아이는 주말 장난감 구경하는 시간이 제법 길기도 하다. 하지만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는 그 시간 동안 장난감을 찬찬히 살피고, 정말 갖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연습도 하고 있으니까.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미리 당겨서 먼저 사주는 건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족지연을 실패하는 가장 큰 요인은 미리, 먼저 , 당겨서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미리 사주고, 결국 당일에는 미리 사준 걸 기억 못 하고 한바탕 소동이 나는 걸 주변에서 봐왔기 때문에 그 선택은 아이에게 전혀 유익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대하고 기다린 것을 약속한 날 받을 때 아이가 느끼는 만족감은 정말 크다.
아이는 약속 한 날 감사할 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기다린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해할 줄 안다.
그리고 무엇이 가장 갖고 싶은지 스스로 고민하고 오랫동안 살펴왔기 때문에 정확히 결정할 수 있다.
7살이 된 지금도 아이는 자신의 장난감 사는 날을 지키고 있다.
기다리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도 여전히 알고 있다.
그리고 선물을 받고 나면 선물을 품에 안고 앞에 의젓하게 서서 공손히 인사한다.
"엄마,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놀게요."
예쁜 미소는 엄마가 받는 선물이 된다.
한 번도 갖고 싶은 걸 안 사준다고 드러누워 본 적도, 한 시간 넘게 울면서 진을 뺀 적도 없다.
고맙고 대견하다.
아이는 오늘도 생떼 부리지 않고 난리 치지 않고 자신의 것을 즐겁게 얻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