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55. 앨범을 만들었다.

by Aloha J

어릴 적 앨범은 친정에 있다. 빨간 벨벳커버로 된 앨범 안에는 나의 첫 모습, 유년시절이 담겨 있다. 친정에 갈 때마다 아이는 그 앨범을 꺼내서 엄마의 아기 때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스마트폰에 3만 장이 넘는 아이 사진으로 꽉 채우는 시절을 살고 있지만, 필름 사진의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진을 보려면 스마트폰이라는 매체를 통해 봐야 하는 것이 불편해서 때로는 수시로 꺼내볼 수 있는 앨범이 집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얼굴을 경찰, 꽃, 소방관등등 어린이집 행사 때마다 재미있는 캐릭터에 오려 붙인 사진들도 내 아이의 모습이 담긴 거라 버릴 수 없어서 파일 하나에 채워뒀는데, 이왕이면 앨범에 잘 보관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결혼 전 내 사진들과 아이와 매년 찍은 가족사진, 그리고 남편의 결혼 전 사진들이 모이니 신발 상자 한 박스 정도 되는 양이었다. 세 식구의 앨범을 사서 아빠앨범, 엄마앨범, 아이앨범으로 사진 정리를 시작했다. 아이에게 우리 집의 첫 앨범을 보여줬더니, 엄마의 10년 전 사진을 즐겁게 봐준다. 아빠의 20년도 더 된 사진들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신생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모습을 잘 정리된 앨범에 모아주니 아이가 정말 좋아한다.

내가 볼 때는 사회에 찌든 직장인의 모습인데, 아이는 엄마 사진을 보면서 예쁘다, 귀엽다 해준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로 인상이 정말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눈은 엄마의 모습을 예쁘게 봐주는 필터가 장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찌들고, 지치고,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어두운 암흑기가 아니었나 싶었던 그 시절을 아이는 예쁘게 보듬어주고 있었다.

보기 싫어서 버리고 싶었던 표정들인데, 아이는 엄마의 과거를 소중히 여겨줬다.

그리고 며칠 전, 잠자리에서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 사진을 보면 옛날 사진은 아빠 안 같아요."

깔깔깔 깔깔깔.....(아빠, 정말 지금이 더 인상이 좋아, 이건 정말 사실이야. 하지만 아이의 그 한 마디에 둘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근데, 엄마 사진은 엄마 같아요." :D


아이는 나를 더 힘껏 안고 이렇게 속삭여줬다.

"엄마, 사진 속의 그 시간들을 지나 나를 낳아줘서 고맙습니다."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더니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런 말을 생각했을꼬...

아이의 한 마디에 내 지나온 인생들에 의미가 생겼다.

사진 속 그 모든 시간들은 건조하고, 차가운 시간들이었는데, 내가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신은 그 시간들을 버티게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00 이를 만나기 위해 엄마가 살아온 거구나. 엄마도 00 이를 만나서 정말 행복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보잘것없이 평범한 엄마의 삶에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자책하며 후회하던 시간들 속에 반짝이던 것들이 이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가 나를 자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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