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추구미의 차이
이런 걸로 아이와 줄다리기를 할 줄 상상도 못 했다.
한 겨울 샌들을 신고 나가는 게 아니라면 해가 쨍한 날이라도 장화를 신고 나가는 아이를 말리지 않는 편이다.
더 크면 하라고 부추겨도 안 할 선택들이라 빨간 털목도리를 허리춤에 묶고 이순신 장군처럼 꾸미고 나가도 당당한 아이의 걸음에 엄지를 보내주곤 한다.
한 때 헬로카봇 주인공인 차탄에 매료되어 한여름 내내 로봇이 그려진 반팔에 반바지는 허리벨트를 차고 다녔다. 어린이집에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벨트를 푸는 것 때문에 애를 먹어서 그 뒤로는 벨트를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었다. 그때가 아이 인생에서 엄마랑 옷으로 실랑이를 하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기였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입고 나가는 걸 즐긴다. 요즘은 카라티가 좋다며 며칠을 카라티를 입고 다니기도 하고 카디건에 청바지 코디를 즐기기도 한다. 엄마처럼 후드티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원하는 스타일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근데, 우리가 이걸로 힘겨루기를 할 줄이야...
코디도 아니고, 음식도 아니고.. 헤어스타일이다.
아빠를 닮아 곱슬인 아이 머리는 조금만 길어도 더벅머리가 된다.
"어머, 00이 그 새 또 컸네요." 하고 놀라지만 사실 머리가 길면서 붕 뜬 덕분에 몇 센티 더 큰 것 같은 착시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 머리를 길어서..ㅎㅎ 키가 아니라 머리카락 볼륨입니다."
다행히 아빠처럼 강성 곱슬은 아니어서 (엄마의 유전자도 열일을 했다.)
꼬불거리는 머리는 아니지만, 적당히 볼륨펌을 한 듯한 저 머리가 길면 참 지저분해지는 건 시각적으로 참기가 힘들다. 분명 말끔히 씻겼는데 지저분해 보이는 그 한 끗 차이는 머리였다.
곱슬머리를 보고 성격 보통 아니겠다는 둥, 곱슬머리네? 어머나... 하면서 뭔가 말을 잇지 못하는 반응들이 반갑지 않았다. 도대체 이 머릿결을 왜 아이의 인생, 성격, 기질과 연관 지어 함부로 이야기를 하는지...
"어머, 곱슬머리구나? 넌 멋쟁이로 태어났다."
동네 미용실 원장님의 센스 있는 이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적당한 볼륨 덕분에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지만, 조금만 길어지면 답이 안 나오는데..
아이는 이 더벅머리를 좋아한다. (왜?!)
엄마는 깔끔하게 짧게 자른 아이의 머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발이 쉽지 않아 졌다.
"내일은 머리 자르자." 하고 이야기하면 "안 돼요! 싫어요!"
하며 쌩~달아난다. 아니 왜....
"난 이 머리가 좋아요. 멋지잖아요.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싶어요."
아하.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저 더벅머리를 사랑하는 아들을 잘 설득해서 1월이 가기 전에 깔끔한 아들을 만나고 싶다.
머리를 길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구나. 멋쟁이네. 커서 머리를 한 번쯤 길러보겠다고 하면... 예쁜 끈을 사줘야 할 것 같다. 트리트먼트도 같이 준비해줘야 하려나..
근데, 엄마는 깔.끔.한. 짧은 머리를 좋아해.